20세기 후반 분석 철학계를 대표하는 철학자, 도널드 데이빗슨
도널드 데이빗슨(Donald Herbert Davidson, 1917~2003)은 심리철학과 언어철학에서 두각을 나타낸 철학자다. 심리철학에서는 ‘부법칙적 일원론’, 언어철학에서는 ‘진리조건적 의미론’과 ‘원초적 해석론’으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교 학부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특히 고전을 공부하게 된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고전을 연구한다는 조건으로 하버드대학교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게 된다. 여기서 처음으로 논리학 수업을 접한 그는 다른 학자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40대 후반인 1963년에 「행위, 이유, 원인」이 명성을 높였고, 1967년에는 「참과 의미」(Truth and Meaning)를 발표하며 의미론 분야에 한 획을 긋는다. 1970년에 발표한 「정신적 사건」은 행위이론 분야에 독보적인 위상을 부여했다.
오랜 세월 동안 숙성한 그의 분석철학은 몸과 마음, 과학과 철학, 행위, 의도, 언어, 의미, 해석 등의 문제를 통일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제공한다.
심리학의 세례를 받은 철학자
내가 생각하는 뭔가를 나는 할 수 있다는 판단, 그리고 나에게 탄탄대로가 열렸다고 생각하는 판단, 그러한 행위가 단지 어느 한 이유에서만이 아니라 나의 모든 이유에 비추어서 괜찮다는 판단; 이 같은 판단은 단지 희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의도다.(본문 192쪽)
도널드 데이빗슨은 ‘믿음과 태도의 철학자’로 불린다. 그가 성과를 남긴 행위이론과 언어철학에서 그의 성과를 아우르는 것이 ‘믿음과 태도’이기 때문이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과학의 세례를 받았고, 데이빗슨의 스승인 콰인이 논리학과 수학의 세례를 받았다면 그는 심리학의 세례를 받은 셈이다. 데이빗슨에 따르면 믿음과 태도는 행위의 이유를 이루는 것인 동시에, 정신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을 구분하는 근거가 된다. 또한 의미론에서 원초적 해석을 위한 바탕을 이룬다.
행위의 원인은 이유다!
도널드 데이빗슨이 1963년에 발표한 「행위, 이유, 원인」은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다. 당대 학자들이 ‘이유는 행위의 원일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에 반해 그는 “행위는 이유를 원인으로 갖는 몸의 운동이다”라고 한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을 받은 당대 학자들은, 이유 설명은 너무 무르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엄격하고 불변적인 인과 법칙을 수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유가 행위를 인과적으로 설명한다면 그 행위를 설명하는 어떤 법칙이 있어야 하지만, 이유에 의한 설명은 그런 법칙을 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데이빗슨은 이유에 의한 행위 설명이 인과적 설명과 다른 종류의 설명이 아니며, 오히려 인과적 설명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이유는 그것이 행위의 원인인 한에서만 행위를 설명한다는 것이다. 데이빗슨에 따르면 믿음과 바람은 내 몸의 움직임을 합리화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믿음과 바람은 내 몸의 움직임의 원인이어야 한다. 믿음과 바람 ‘때문에’ 내가 움직였다고 하려면 그 믿음과 바람은 또한 원인이어야 한다. 한 행위자가 여러 이유 중에서 어느 한 이유로 행위했을 때, 그 한 이유가 다른 이유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가 그 행위의 원인이 되었다’고.
이렇게 원함을 하나의 유로 보면 어떤 행위가 의도적이라는 것을 알 때 우리는 “너 그거 왜 했니?”라는 질문에 “아무 이유 없어”라고 쉽게 대답할 수 있게 된다. 이 말은 어떤 이유도 없다는 뜻이 아니라, 더 이상의 이유가 없다, 즉 그 행위가 의도적으로 행해졌다는 사실로부터 추론될 수 있는 이유 빼고는 어떤 것도 없다; 다른 말로 그것을 하기를 원했다는 것 외에는 어떤 이유도 없다는 뜻이다.(본문 54쪽)
행위를 이해하는 것은 사건을 이해하는 것이다
데이빗슨은 행위는 이유에 의해 설명되고 이유가 원인이 되어 행위가 일어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행위도, 행위의 원인인 이유도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유는 믿음과 바람(과 같은 긍정적 태도)이므로 행위의 원인은 믿음과 바람을 갖게 된다.
데이빗슨에 따르면 사건에는 정신적 사건과 물리적 사건이 있는데 두 사건은 일원론적이다. 똑같은 한 사건을 어떻게 기술하냐에 따라 정신적 사건이 될 수도 있고 물리적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둘을 나누는 기준 중 하나가 인과의 법칙성이 성립하느냐에 대한 여부다. 행위는 정신적 사건들 중에서도 의도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그리고 행위 중 언어 행위는 의미와 연관된다. 즉 행위를 이해하는 것은 사건에 대한 기술을 이해하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존스는 느리게, 신중하게, 욕실에서, 나이프를 가지고, 한밤중에 그것을 했다. 그가 한 것은 토스트에 버터를 바르는(butter a piece of toast) 것이었다. 우리는 행위의 언어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처음 봐서는 뭐가 이상한지를 잘 모른다.(본문 197쪽)
행위 이론, 사건 이론을 거쳐 무법칙적 일원론까지
데이빗슨은 이 책에 자신의 논문 15편을 모았다. 행위와 사건에 대한 이론을 정립하여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인 무법칙적 일원론에 이르는 과정을 자신의 논문을 통해 보여준다. 번역자인 성신여대 배식한 교수에 따르면 이 책은 마치 싸움 바둑을 보는 것 같다고 한다. 논문마다 끝없는 지적인 국지전이 이어지고 적과 아(我)의 구분도 잘 되지 않는다. 데이빗슨은 정신적 사건이 그런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의 믿음과 태도, 언어 행위, 앎이 그런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극복한다면 우리는 몸과 마음, 과학과 철학, 행위, 의도, 언어, 의미, 해석 등의 문제를 통일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