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전략을 수정하라!
크고 작은 독재 상황에 맞서는 ‘창의적인’ 실전 가이드북
왜 시민들은 정치에 대한 열패감과 냉소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왜 집회와 시위는 늘 ‘폭도들의 불법 행위’로만 묘사될까
1960년 4.19혁명, 1979년 부마항쟁, 1987년 6.10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민주화 운동은 대통령 직선제로 이어졌고, 더 나은 정치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우리 스스로 담보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에서 광장은 크고 작은 정치적 승리를 상징하는 공간이었고, ‘우리가 이뤄냈다’는 민주화 세대의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87년 이후 약 30년이 흐른 지금, 용산 참사와 세월호 참사, 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와 한일 위안부 협상 반대를 기치로 한 일련의 가두시위와 집회는 더이상 승리와 환호가 아닌 시민의 힘의 무력함과 열패감,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자조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이제 한국 사회에서 집회와 시위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폭력으로 물든 시위 현장’ ‘차벽과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 ‘불법 집회 시위자 검거’ 등의 진부한 수사修辭로만 묘사되고 있다.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한 크고 작은 승리가 한 사회의 자부심을 이루는 것이라면, 반면에 ‘이길 수 없는’ 싸움에는 아무도 함께하려 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기도 하다. 또한 개인적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 시위에 참가한다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감히 흉내낼 수 없는’ 행동처럼 여겨진다. 불의와 부조리를 시민의 적극적 정치 참여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들이 그저 패배주의적 냉소로 이어지는 이유다.
그러나 만일 집회나 시위가 사람들 사이에서 유쾌하고 창의적인 행위로 인식된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면?
1990년대 중반, ‘인종 청소’라는 말로 유명한 독재자 밀로셰비치의 폭압하에 있던 세르비아의 한 기타리스트는 새로운 전략을 제안한다. 바로 ‘비폭력 행동주의’였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하는 ‘비폭력주의’는 간디나 마틴 루서 킹 목사에게 없었던 한 가지, ‘유머’를 핵심전략으로 삼았다. 포포비치는 상투적이고 반복적이어서 그 누구의 관심도 더이상 쉽게 끌어내지 못하는 집회 방식에서 벗어나, 록 콘서트처럼 역동적이고, 누구나 원할 만큼 ‘힙’하며, 재미있는 아이디어로 넘치는 시위 방법을 제안한다. 너무나 잔혹해서 아무도 그를 쓰러뜨릴 수 없다고 여겨졌던 세르비아의 독재자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그를 권좌에서 끌어내린 오트포르! 운동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2000년 세르비아의 밀로셰비치 정권 퇴진을 시작으로, 우크라니아, 튀니지, 몰디브, 이집트 레바논, 브라질, 수단, 이란,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비롯해 뉴욕의 오큐파이 운동과 홍콩의 우산 시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는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서부터 크고 작은 반자본 운동에 이르기까지 ‘비폭력 행동주의’를 새로운 저항의 방식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2015년 4월 스페인에서는 공공시설 근처에서 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에 반대해 ‘홀로그램 포 프리덤’이라는 세계 최초의 홀로그램 시위가 진행되었으며, 2015년 파리 테러로 집회와 시위가 금지된 파리에서는 2만 2000여 켤레의 신발이 기후총회의 지구온난화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며 광장을 가득 메웠다. 이제 전 세계의 저항이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들의 목표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힘있는 자, 약자를 괴롭히는 자, 악랄한 자, 대개는 냉혹한 권력집단인 그들이 도저히 꺾일 수 없는 상대로 보일지라도 알고 보면 유쾌한 활동만으로도 그들을 충분히 무너뜨릴 수 있다는 확신을. _「들어가며」에서
농담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독재자에게는, 농담을 선사하라!
_유머가 핵심 전략이다
공포의 시절, 우리 세르비아인들은 두려움의 가장 큰 적수가 웃음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내 말이믿기지 않는다면 큰 수술을 받으러 수술실로 들어가는 친구를 안심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언지 생각해보라. 당신이 심각하게 굴면서 걱정하면 친구는 더 불안해할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농담을 건네면 친구는 여유를 찾을 것이고, 미소도 지을 것이다. 같은 원리가 운동에도 적용된다.
_본문 26쪽
독재권력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는다. 감시에 대한 두려움,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 체포에 대한 두려움. 하지만 “인류에게는 의문의 여지없이 정말 효과적인 무기가 하나 있다. 바로 웃음이다. 웃음 공격은 아무도 막아내지 못한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웃음과 재미는 언제나 마음속 깊이 새겨진 두려움을 몰아내고 사람들을 거리로, 광장으로 이끈다.
세르비아에서는 매일 머리에 조화造花를 꽂는 밀로셰비치의 아내를 풍자하기 위해 수십 마리 칠면조의 머리에 하얀 꽃을 꽂아 거리에 풀어놓았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을 반대하는 집회를 당국의 불허하자 반反푸틴 구호를 든 ‘장난감 인형’이 시위를 주도하고, 시리아에서는 ‘자유’와 ‘이제 그만’ 등이 적힌 탁구공 수천 개가 도시 골목과 거리로 쏟아져나왔으며, 반反정부 가요가 담긴 USB스피커를 더러운 쓰레기통에 넣어 도시 곳곳에서 하루종일 노래가 흐르도록 했다. 농담을 받아들일 줄 모르는 권력자들은 공권력을 이용해 ‘칠면조를 잡으러 뛰어다니거나’ ‘장난감을 비롯한 무생물에 의한 시위 금지’를 공포하거나(최근 우리 경찰도 홀로그램 시위도 처벌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탁구공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시민들 중 누구도 다치거나 피해를 입지 않았지만 공권력은 더이상 두려운 존재가 아니었고, 유머에 진지함으로 대하는 권력자들은 조롱거리가 되었다.
이것은 ‘나의 문제’다
_움직일 수 없는 사람, 움직일 수 있는 사람, 움직이는 사람
포포비치는 인권이나 자유 같은 커다란 가치를 위한 싸움부터 시작할 것이 아니라, 뭔가 사소한 것, 적절한 것, 그러면서도 성공적일 수 있는 것, 그것 때문에 죽거나 심한 폭력을 당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직장생활과 가족 문제, 놓치지 말아야 할 TV드라마와 반송해야 할 물품들을 신경쓰기에도 하루가 빠듯하다. 게다가 현실 정치는 염증이 날 만큼 진부하고, 불의에 맞서는 싸움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싸움’인 듯하다. 그럼에도 진보진영은 정말 쉽지 않은 목표, 예컨대 정의나 평등, 대안적 경제체제 구축 같은 커다란 이슈부터 내세운다. 소수의 각성한 시민들은 그러한 대의에 선뜻 동의할 것이나, 대부분은 그런 추상적 개념에는 관심을 갖기 어렵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동성애자 인권 운동가 하비 밀크 역시 사람들의 관심을 얻는 데 실패를 거듭한 끝에, 샌프란시스코 주민들 대다수가 골칫거리로 생각하는 ‘개똥 치우기’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미국 최초의 동성애자 시의원이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시민들의 말에 귀기울인 덕에, 밀크는 주민들이 가장 관심을 갖는 삶의 질 문제가 그들의 영혼이 아니라 신발 밑창과 더 밀접하다는 것을 알아냈다. 거의 모든 주민들이 전염병처럼 번지며 도시의 공원을 더럽히는 수거되지 않은 개똥을 최악의 골칫거리로 꼽았다. 공공의 적 일순위였다. (...) 밀크는 이기는 싸움을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냉담한 이성애자 도시에서 동성애자의 인권을 위해 투쟁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개똥을 치우는 것은 쉬운 일이다. 필요한 것은 비닐봉지가 다였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는 공약을 결과로 증명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비춰질 것이고, 약속을 지키는 사람의 말에는 모두가 귀기울일 것이었다._본문 65쪽
미국 정치가 벤저민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인류는 세 부류로 나뉜다.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들.” (…) 그러므로 평범한 사람들이 이길 수 있는 전투를 찾아내야 한다. 배트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