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에 넣을 것인가, 보자기로 쌀 것인가!
상처난 지구까지도 한국의 보자기로 감싼다.
“보자기는 어떤 형태로 어떤 내용물을 쌀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예상 불가능한 것, 결정 불가능한 것, 불확실한 것을 모두 쌀 준비가 되어 있다.”
지금까지 누구도 하지 못한 절묘한 문화 읽기와 놀라운 구조 분석
일생에 걸쳐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 산업사회와 정보사회를 가로질러 사유해 온 이어령이 이번엔 일상의 소재들 가운데 보자기를 꺼내들었다. 그는 비합리적이고 비기능적이라 치부되어 그동안 등한시되던 전통 문화 속의 보자기를 오늘날 시대적 모순을 감쌀 수 있는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시킨다. 이 외에도 근대의 자아 개념, 서양의 가구와 생활문화를 동양 문화와 비교 분석하며 현대의 양극적 사고 체계와 사회 시스템을 극복할 생활 속 포스트모던 문화를 제시한다.
1. ‘싸다’와 ‘넣다’를 통해 본 동·서양의 문화!
의미가 없기에 의미를 만들 수 있는 한국의 보자기
대한민국 대표 석학 이어령은 인간의 문화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두 동사를 ‘싸다’와 ‘넣다’라고 말한다. 한국인은 ‘싸는’ 민족으로 ‘보자기형’ 문화다. 어린 시절 책보로 사용하던 보자기와 네모난 책가방을 비교한다. 보자기는 것은 물체의 모양이나 크기와 상관없이 자유자재로 변할 수 있는 반면, 각이 잡혀 있는 책가방은 미리 칸이 정해져 있는 시스템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옷이 사람을 ‘싸는’ 한복과 모양이 잡혀있는 ‘양복’의 차이에서 융통적이고 포용적인 우리 문화와 제도와 틀을 중요시하는 서양 문화의 차이점을 읽어낸다.
2. ‘버려둬’의 창조성
버리지 않고 ‘버려 둔’ 것으로부터 창조는 시작된다.
한국인은 다른 나라에서는 당연히 버려질, 형태도 색도 다른 작은 조각 천들을 쓰레기통에 그냥 버리지 않고 반짇고리에 ‘버려 둔’ 민족이었다. 이것이 어느 날 전부 모여 색색이 배합되고 오묘하게 융합되어 하나로 꿰매어진다. 우리는 버려 둔 조각 천으로,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었던 것이다. ‘버려 둔’ 것으로부터 창조는 시작된다. 생각지도 않았던 색과 형태의 우연한 조합에서 몬드리안의 그림 같은 아름다운 기하학적 모양이 만들어진다. 형태도 크기도 색도 모두 가지각색이다. 색깔과 모양이 다른 한 사람 한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한 장의 조각보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3. 한국의 ‘보자기 형’ 사회를 만들어라!
관료주의(bureaucracy)에서 애드호크러시(adhocracy)로
‘싸다’와 ‘넣다’는 더 나아가 현재와 미래 사회의 모습을 나타낸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는 정보가 넘쳐나는 불확실성의 시대이자, 21세기의 산업주의는 트렁크의 시대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애드호크러시(adhocracy)처럼 유연성과 융통성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아가 앞으로 오는 생명주의 시대에는 아이를 요람과 같은 상자가 아니라 포대기로 감싸 업어주는 한국의 보자기형 문화를 통해 싸고 통합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생명도시를 만들어 구간과 획이 나눠져 있는 도시가 아닌, 합쳐지고 모든 것을 감싸는 도시가 미래 모습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자기 인문학을 통해 ‘감싸는 사회’, 우리의 미래 문명 도시까지도 그려볼 수 있다.
[작가 인터뷰]
1. 보자기에서 가방으로... 가장 원초적인 근대체험, 가방은 융통성이 없는 견구조의 대표적 상징물
지금 생각해보면 교과서에서 근대를 배운 것보다는 그 교과서를 들고 다니는 방법을 통해서 더 많은 근대의 의미를 배우게 된 것 같습니다.(웃음) 무명 책보를 버리고 가방을 등에 메었을 때 아이들은 편리성 기능성 그리고 상품성이라는 근대의 마력을 몸에 익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책보에서는 볼 수 없는 가방의 비극이라는 것도 차차 눈치 채게 된 것입니다. 책보는 푸르면 그만이지요. 책이나 공책을 책상 안에 넣으면 한 장의 보자기만이 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데나 구겨서 넣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방은 그렇지가 않아요. 책이나 도시락을 꺼내도 여전히 가방은 가방 그대로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책을 넣을 때나 꺼낼 때나 아무 관계없이 그 부피 그 형체 그대로입니다. 정말 눈치도 모르는 멍청한 놈이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책가방은 미리 용도에 따라 설계된 공간이므로 얇은 공책을 넣는 데와 두꺼운 책을 넣는 데가 다르고 필통과 도시락을 넣는 데가 따로 칸막이가 되어 있습니다. 책보는 모든 물건을 한꺼번에 두루뭉술하게 싸버리면 그만이지만 책가방은 분류하고 구분하고 그 크기를 가려서 정해진 곳에 넣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어쩌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참외밭에서 일하던 동리 아저씨가 참외를 따주면 그것을 넣어가지고 올 데가 없지요.(웃음) 그러나 책보 같으면 문제가 없습니다. 어떤 우연의 행운이 생기더라도 가방과는 달리 보자기는 둥그런 것도 네모난 것도 그리고 수박이나 술병이나 어떤 형태이든 관계없이 모두 포용할 수가 있습니다. 보자기는 가방처럼 칸막이가 없습니다. 딱딱한 그리고 입체적인 자기 부피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용성과 융통성 그리고 가변성으로 이루어진 보자기 특유의 유구조이지요.
2.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가방을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보자기는 소프트웨어 쪽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요. 어떻게 쓰느냐. 보자기는 쓰기에 따라 여러 가지 기능을 갖게 됩니다. 가방은 물건을 넣는 용기로서 고정되어 있지만 보자기는 상황과 쓰는 사람의 욕망에 따라 수시로 그 기능과 목적이 달라집니다. 들어 올 때에는 쓰고 나갈 때에는 싸가지고 가는 것이 바로 도둑의 보자기입니다.(웃음) 이렇게 얼굴에 쓰기도 하고 싸기도 하고 가리고 덮고 깔고 매고 펴고 온갖 경우에 복합적으로 쓰입니다. 시쳇말로 하면 “멀티” 기능이지요.
3. 그렇다면 한국의 문화적 원형은 보자기적인 것이고 서양의 그것은 가방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계신지요.
맞습니다. 보자기와 가방의 비교는 서구문화와 동양문화(한국 일본)의 차이와 그 특성을 유효하게 설명해주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상징적 모델만이 아니라 실제로 서양의 근대화는 가방의 발명과 사용에서 비롯되었고 한국 일본의 전통문화는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보자기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어느 나라나 보자기 형태의 도구는 있지만 한국처럼 다양하고 다채롭게 보자기를 개발한 민족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4. 한(韓)·양(洋)복 기능의 차이 - 그러나 단순히 보자기라는 물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펼치고 있는 상상력이나 상징성이나 구조적인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물론입니다. 문화의 비교에서 ‘촉매어(동사)’처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보자기에 걸리는 기본적인 술어는 ‘싸다(포)’입니다. 그리고 가방에 걸리는 그것은 ‘넣다’입니다. 어떤 물건을 싸느냐 넣느냐의 선택에 따라서 아주 다른 문화가 형성됩니다. 가령 사람의 몸을 두고 생각해 봅시다. 옷을 몸을 싸는 것으로 생각했느냐 그렇지 않으면 몸을 넣는 것으로 생각했느냐에 따라 의상의 개념이 근본적으로도 달라집니다. 양복과 한복의 근본적인 차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양복이 인체를 넣는 가방이라고 한다면 한복은 인간의 몸을 싸는 보자기라고 할 수 있지요. 한쪽 옷은 넣으려 하였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만들어져 사람이 입지 않아도 자기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양복은 걸어놓아야 하지요. 그러나 한복은 보자기처럼 싸는 것이기 때문에 벗어놓으면 마치 보따리를 푼 보자기처럼 평면성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한복은 거는 옷이 아니라 개켜두는 옷이지요.
5. 갑주(갑주·갑옷과 투구)같은 것이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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