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 소설
16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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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두번째 장편소설. 2005년 등단한 이후 지난 팔 년간 두 권의 소설집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세상에 내보낸 황정은. 적합한 수식어를 찾기 어려워 그저 '황정은풍'이라고만 이야기될 수 있을 뿐인, 그 누구보다도 개성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해온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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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內 007 外 083 再, 外 158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재작년 가을에 오사카를 방문했다가 한신백화점 지하보도에서 여장을 한 노숙인을 보았다. 짧은 스커트 정장을 입고 스타킹을 신고 발에 맞지 않는 하이힐을 구겨신은 채로 고통스럽게 걷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그는 혼자 비탈을 오르는 것처럼 평지를 걷고 있었다. 워낙 오가는 사람이 많아 짧은 순간 그의 뒷모습을 보았을 뿐이었는데 압도되었다. 체류기간 내내 겪고 본 일 가운데 오로지 그 모습만 기억하게 되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뒷모습이 등장하는 단편을 써보자고 앉았다. 초반을 단숨에 써두고 단편이 될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대로 접어두었던 이야기를 이제 쓴다. 실패할 것이 틀림없지만 실패나마 할 수 있을 때 해보자, 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보다 낫게 실패하고 싶다. _“연재를 시작하며” 중에서(『문학동네』 2012년 봄호) 황정은의 두번째 장편소설, 여장 노숙인으로부터 올해의 문제작이 탄생하다 여장 노숙인의 모습이 작가에게 얼마나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던 것일까. 우리는 지난해 2012년 봄과 여름 두 차례에 걸쳐 계간지 『문학동네』에 연재되었던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첫 장면을 기억한다. 걸을 때마다 정장을 차려입은 굵은 골격이 움찔거리고 숨 막히는 불쾌한 체취를 뿜어내던 앨리시어. 하지만 “그대의 재미와 안녕, 평안함”에는 관심이 없어서 “불쾌하고 지루하더라도” “계속 그렇게” 할 뿐이라던 앨리시어. 황정은은 이 불쾌하고 사랑스러운 여장 노숙인 앨리시어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이제까지 그의 소설에서 만나보기 어려웠던 황폐하고 처절한 폭력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2005년 등단한 이후 지난 팔 년간 두 권의 소설집(『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파씨의 입문』)과 한 권의 장편소설 (『百의 그림자』)을 세상에 내보낸 그다. 적합한 수식어를 찾기 어려워 그저 “황정은풍”이라고만 이야기될 수 있을 뿐인, 그 누구보다도 개성적인 소설세계를 구축해온 그다. 두번째 장편소설 『야만적인 앨리스씨』 역시 그렇다. 하지만 마땅한 수식어를 찾기 어려워 그저 “황정은풍”이라고만 간신히 언급할 수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만 그러하다. 책의 문을 여는 순간 우리는 그간 들어본 적이 없는 낯선 목소리가 조금의 여지도 주지 않고 쉴 새 없이 쏟아져나오는 듯한 환상에 빠져든다. 마치 앨리시어의 목소리를 소설 속으로 그대로 옮겨놓기라도 한 듯 말이다. 문장으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게, 그리하여 결국 읽는 이의 귀에 들리도록 만드는 불가능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무엇보다 이 음성이 우리의 귓가를 떠나지 않는 이유는 작가가 진정한 현실 안쪽으로 우리를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을 면밀하게 들여다볼수록 우리는 실제의 현실과 사람들이 현실에 대해 품고 있는 생각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작가의 집요한 응시 덕분에 현실은 점점 (우리의 게으름이 만들어낸 편견과 오해로부터 멀어진다는 의미에서)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변모한다. 바로 이 순간 우리는 현실의 본질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이 사회에 대한 그럴듯한 묘사, 어떤 주장에 대한 옹호로 이해되어서는 곤란하다. 황정은의 관심사는 단순히 고발 대상으로서의 현실이 아니라 그녀가 응시하기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을 어떤 가능성들 쪽으로 열려 있기에. 떨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한없이 떨어질 때…… 그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앨리시어는 재개발을 앞둔 ‘고모리’에 살고 있다(작가는 이 고모리를 소설 속의 그 어떤 것들보다 공들여 만들어낸 것처럼 보인다). ‘무덤’이라는 어원을 가진 이곳은 식용을 목적으로 길러지는 개들을 가둔 개장, 그 개들의 뼈와 내장과 가죽을 먹고 큰 은행나무, 너클크레인과 폐지더미로 둘러싸인 고물상, 모래언덕으로 이루어진 공사장과 악취가 풍기는 하수처리장, 폐쇄된 단추공장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엇보다 이곳을 황무지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것은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단단히 한몫을 챙겨 떠나기 위해 남은 마을 사람들 때문이다. 앨리시어와 그의 어린 동생은 어머니에게 무지막지한 구타를 당하며 살아간다. 그것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수시로 벌어지는 이들 모자의 일상 자체다. 내가 세라고 했지? 세라고 했는데 왜 세지 않냐 몇 대까지 맞았는지 세지도 못하냐 잊어버렸냐 너는 그 정도 머리도 없는 짐승이고 잊어버렸으니까 다시 하면 되겠네? 잊어버린 네가 순전하게 잘못했으므로 처음부터 다시 하면 되겠다 세라 머리부터 꼬리뼈까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십 씨발 십이 십삼 사 오 육 칠 팔 다음이 뭐냐 응? 다음이 뭐야? 앨리시어의 아버지는 이러한 폭력적인 상황에 한없이 무심할 뿐이며 마을 사람들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이들은 한 몸처럼 오로지 재개발 이후 치솟을 땅값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앨리시어 형제는 폭력과 그 폭력보다 더욱 폭력적인 무심을 통과하며 성장한다. 마치 성장의 유일한 조건이 폭력이라도 되는 것처럼(그런데 이 형제가 폭력을 통과해가는 모습을 두고 “성장한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은 걸까? 이들이 자라는 데 가해지는 것이 오로지 폭력뿐이라서 우리는 달리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한다). 쏟아지는 폭력에 온몸을 맡긴 채 버틸 수밖에 없었던 앨리시어는 길어진 자신의 팔다리와 그 안을 채우는 강한 힘을 느끼면서 어머니의 폭력에 맞설 수 있는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다. 앨리시어는 이제 그녀가 자신보다 크지 않으며 어쩌면 작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어깨를 대고 나란히 설 일이 없으므로 확실하게 알아낼 방법은 없지만 그녀가 문간을 지날 때, 현관에서 구두를 신으려고 서 있을 때, 부엌에서 등을 보이고 서 있을 때, 머리의 높이와 위치를 기억해두고 나중에 그 자리에 서 보는 방법으로 비교하고 관찰해서 그것을 알아내고 깨닫는다. 놀랍다. 그건 아주 놀랍다. 어쩌면 앨리시어가 그녀를 이길 수 있다. 앨리시어는 그녀를 단번에, 그리고 지속적으로 이길 수는 없는 것일까? 그 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앨리시어는 유일한 친구인 고미와 구청의 상담센터를 찾아가보지만 직원으로부터 무책임하고 무력한 조언을 들을 뿐이다. 가로등 한 점 없이 캄캄한 고모리의 밤처럼 출구의 빛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이 폭력의 세계에서 앨리시어는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앨리시어와 그의 동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직도 떨어지고, 여태 떨어지고 있는 거다. 상당히 어둡고 긴 굴속을 떨어지면서 앨리스 소년이 생각하기를,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상당히 오래 전에 토끼 한 마리를 쫓다가 굴속으로 떨어졌는데… 아무리 떨어져도 바닥에 닿지를 않고 있네… 나는 다만, 떨어지고 있네…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계속, 계속… 더는 토끼도 보이지 않는데 줄곧… 하고 생각하며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 언제고 바닥에 닿겠지, 이제 끝나겠지, 생각하는데도 끝나지 않아서, 이게 안 끝나네, 골똘하게 생각하며 떨어지고 있었던 거다. … … 그래서 어떻게 되냐. 뭐? 앨리스 새끼는 어떻게 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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