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수첩

필리프 자코테 · 시/에세이
2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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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테는 ‘시집’이라는 용어보다 그 대안으로 ‘수첩’이라는 단어를 선호하며 여기에 파편적인 시와 산문들을 수록했다. 글에는 벚나무, 모과나무, 작약, 접시꽃, 비를 흠뻑 맞은 나무와 풀들이 나오는가 하면, 천공을 뚫을 듯 비상하는 종달새와 말벌도 나온다. 세계의 온갖 사물과 현상들 앞에서 자코테는 확정적인 언어를 경계한다. 그것들에 빗대어 자신의 서정을 간편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냥 거기 있는” 자연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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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목차

벚나무 ─ 9 초록 수첩 장밋빛, 추운 계절에 ─ 25 녹색과 흰색 문장 紋章 ─ 29 비가 잎사귀 위로 돌아왔다 ─ 45 상승하는 단계들에 관하여 ─ 47 여름 아침, 역광이 비치는 산들 ─ 55 8월의 섬광 ─ 57 산들이 보라색을 띠는 이 미지근한 ─ 63 바람에 흩날리는 파편들 ─ 67 겨울 저녁의 색들, 마치 ─ 78 꽃들의 출현 ─ 83 얼핏 보인 가는 조각달 ─ 96 수많은 세월이 흘러 호수 전망 ─ 101 작약들 ─ 111 소브강 물, 레즈강 물 ─ 123 밤의 노트 ─ 135 화관 ─ 145 촌락 ─ 159 박물관 ─ 171 빈 발코니 ─ 179 두 초안 ─ 189 라르슈 고개에서 ─ 193 수많은 세월이 흘러 ─ 209 옮긴이의 말 ─ 221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빛에 대한 분명한 사랑’ 필리프 자코테 초록빛을 머금은 자연에 대한 아득한 시선 20세기 가장 중요한 프랑스 시인 필리프 자코테의 시와 산문을 수록한 『초록 수첩』이 출간되었다. 여러 형식의 글을 담은 이 작품에는 벚나무, 모과나무, 작약, 접시꽃, 비를 흠뻑 맞은 나무와 풀들이 나오는가 하면, 천공을 뚫을 듯 비상하는 종달새와 말벌도 나온다. 세계의 온갖 사물과 현상들 앞에서 자코테는 확정적인 언어를 경계한다. 그것들에 빗대어 자신의 서정을 간편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그냥 거기 있는” 자연을 그린다. 그저 그 자체로 태어나고 사라지는 자연, 동시에 그 모든 것을 “고요히 응축”한 채 머무는 자연을 그린다. ‘수첩’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다양한 모습으로 흩뿌려진 대상을 고스란히 담은 그의 글을 통해 신비로움을 머금은 자연이 드러난다. * 필리프 자코테는 이 시집을 ‘초록 수첩’이라 명명한다(프랑스에서는 자코테의 책 대부분을 시집으로 분류한다. 이는 산문과 시가 혼재되어 있는 『초록 수첩』뿐만 아니라 비교적 산문성이 강한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시에서 시작하여 시 밖으로 나아가려는 모든 움직임, 그리하여 종국에 시 자체를 확장하고 살아 있게 하는 모든 움직임을 시집은 포함한다). 이 ‘수첩’에는 시인의 산책에서 파생된 파편적인 단상이 비교적 정형적인 시와 교차한다, 하나의 시에는 그 시가 태어나던 과정을 재추적하는 글이 뒤따른다. 시와 시 아닌 것, 그 무엇보다 시에 가까운 것들을 한데 모으며 자코테는 시적 경험의 원류에 다시 가닿으려고 한다. 시적 경험, 그것은 곧 언어 너머에 있는 경험인 동시에 그것을 언어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를 포함하는 경험일 것이다. 그저 하나의 명칭에 불과한 ‘시’가 아닌, 고착화가 되고 규범화되어 앙상해진 ‘시’가 아닌 언제나 미완의 진행형인 글쓰기를 통해 자코테는 시의 이 고유한 경험을 포착한다. 나 역시 이제 천사들을 소환하길 삼가려 한다. 이 고지대에서는 이 단어가 너무 빨리 내 입술을 찾아온다. 아니면 그것은 그저 하나의 추억에 불과할 뿐이다. 축제를 꾸미기 위해, 연극의 장면 하나를 꾸미기 위해 다락방에서 가지고 내려오는 오래된 촛대 같은 것, 시 한 편을 별 힘들이지 않고 간편하게 고양하려고 쓰는 연회용 단어 같은 것. 아니 설령, 그 단어에 조금이라도 진실된 것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그것에 대한 경험은 너무나도 강렬하고 내적이어서 그것을 보이는 데에는 극도의 신중함이 필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201쪽) * 장 스타로뱅스키는 자코테의 글에 서려 있는 ‘빛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한 바 있다(“빛에 대한 분명한 사랑. 자신의 손으로 써내려가는 단어들 속에 빛이 흐르길 바랄 정도로 커다란 사랑, 독자에게 밝음으로 향하는 길이 되지 않을 어떠한 문장도 쓰지 않고자 늘 주의하는 사랑”).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에 이어 『초록 수첩』에서도 시인의 빛에 대한 사랑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다만 그 빛의 양상이 달라진다. 『부재하는 형상들이 있는 풍경』에서 빛은 “흰색” “겨울의 색” “텅 빈 색”으로 그려지며 분명 여기 존재하지 않지만 감각되는 어떤 본질적인 대상―곧 그 자체로 시적 경험의 대상, 다시 말해 ‘부재하는 형상’―의 징후로서 드러난다. 이렇게 존재의 경계에 머물던 빛은 『초록 수첩』에서 보다 선명하고 감각적인 색채를 입는다. 버찌 열매의 붉은색, 개쑥갓 꽃의 파란색, 어수리 꽃의 노란색, 치커리 꽃의 하얀색…… 자코테는 사물의 형체보다는 그 색채에 주목하고 색채를 통해 그 내부에서 발산되는 빛에 주목한다. 이때 색은 사물의 껍질이 아닌 존재의 깊은 중심에서 솟아나는 현상이자 본질적인 것의 감각적인 출현이 된다. 「벚나무」에서 자코테는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시간, 밀밭 가장자리 어두운 나무들 사이에서 벚나무에 매달린 버찌 열매들을 발견한다. “어두운 초록 속에 붉은 것이 흐르는, 붉고 기다란 송이”. 이 아름다운 색채의 조합은 자코테를 몽상으로 이끈다. 몇 가지 미덥지 않은 연상(‘피를 흘리는 나무’ ‘살해당한 나뭇가지’)을 지나 버찌 열매는 마침내 불길로 현현한다. 그러나 이 불길은 요란하게 타닥타닥 소리를 내지 않으며 결코 타오르지도 않는다. 아무것도 태우지 않는다. 어두운 초록 아래 단지 길게 늘어진 채, 그렇게 멈춘 채 매달려 있을 뿐이다, 마치 시간 그 자체가 열매 안에 농축되어 잠시 멈춘 것처럼. 그날 저녁, 아마도, 분명하게 인식한 건 아니지만, 나는 시간이, 그러니까 내가 살았던 그 시간들이, 낮이면서 밤인 시간들이 천천히 이 열매들 속으로 스며들어가 그 열매들을 동그랗게 만들고, 궁극에 붉어지게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열매들은 모든 것을 품어 공중에 유예하고 있었고, 열매 자체도 초록빛 날개 품속 알처럼 잎사귀 은신처에 멈춘 채 매달려 있었다. 하지만 잎사귀들은 곧 검어질 것이다. 저 아래 하늘보다 훨씬 더 검어질 것이다. 하늘 아래 잎사귀들은 겨우 잠들었나 싶은데, 자면서도 가볍게 몸을 떤다…… (18쪽) * 벚나무, 작약, 접시꽃, 모과나무, 종달새와 박새…… 자연의 온갖 찬란한 순간을 포착하는 시인의 시선에는 뜻밖에도 소멸에 대한 감각이 깊게 스며들어 있다. 아무렇지 않게 피어 있는 개쑥갓, 어수리, 치커리의 꽃에 경탄했던 경험은 사실 병들어 서서히 죽어가는 친구의 집으로 가던 길에서 이루어진다.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친구가 남긴 엽서 그림 속 발코니를 가득 채우는 푸른 하늘을 보며 그곳을 날아오를 새를 상상한다. 다만 이 자연들이 간편한 ‘위로’가 되어주는 것은 아니다. “꽃들은 우리 친구를 구해주지 않았다. 우릴 위로해주지도 않았다. 꽃들은 아무도 구해줄 줄도, 위로할 줄도 모른다.”(92쪽) 그것들은 그저 피고 질 뿐이다. 단순하고 밋밋한, 거의 아무 의미도 없는 이 꽃들은 어떤 것도 닮지 않은 채, 어떤 인간적인 메시지도 전하지 않은 채 그저 그렇게 핀다(그리고 진다). 그리고 그 본성의 단순한 현현이 시인을 감동케 한다. 위로 없이 위로한다. 어떤 환시 속에서도 누구도 쇠락을 면치 못한다. 성자들도 우리들처럼 썩는다. 적어도 그건 확실하다. 하지만…… (92쪽) 인간의 운명은 여전히 유한성의 수레바퀴에 매여 있다. 꽃은 계속해서 피고 지고 인간도 서서히 쇠락해간다. 하지만 시간의 덫에서 약간 비껴난 틈새들, 빛으로 밝아진 순간들이 이곳에서 시인에게 언뜻 비쳐 보인다. 다음으로는 그 빛을 머금은 언어. 시인은 그리하여 자신의 책무를 기꺼이 실행한다. “분명한 사랑”을 가지고 빛을 머금은 자신의 단어들을 통해 밝음으로 향하는 길을 그려낸다. 시가 잠시라도 무쇠 같은 운명을 구부려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그 나머지는 다변가들에게.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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