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가족의 이름으로 그려낸 우리 시대 가장 외로운 서사 저널리스트, 에세이스트, 언어학자로서 여러 방면을 통해 유려한 글쓰기에 매진해온 소설가 고종석의 세번째 장편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장편소설 『독고준』 이후 삼 년 만에 펴내는 『해피 패밀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가장 친근하고 가깝다 여겨온 ‘가족’이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 회의를 날카롭고 서늘하게 그려냈다. 겉으로 보면 아무 문제 없이 평온해 보이지만 비극적인 역사를 지나온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당연하다 믿고 있는 핏줄에 대한 끈끈한 애정과 탄탄한 연대의식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얼마나 허망하고 위선적인 것인지 이야기한다. 소설은 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한민형의 목소리부터 시작해, 아들이 일하는 출판사의 사장인 아버지 한진규, 고등학교 역사교사이자 어머니인 민경화, 한민형의 처이자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서현주, 한민형의 동생인 한영미와 한민주, 대학 후배인 이정석, 장모인 강희숙, 딸 한지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금은 세상을 떠난 한민형의 누나 한민희까지 모두 화자로 나서 각자의 사연과 감정 들을 토로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세상에 금지된 것은 없습니다, 느닷없이 이 문장이 내 입 밖으로 중얼중얼 흘러나왔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이란 어떤 의미일까? 파편화된 개인들이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고 데면데면하게 피상적으로 소통하는 요즘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가족이라는 명사에서 느끼는 것들, 최소한 느끼기 원하는 것들은 대개 따스하고 편안한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부유하거나 가난하거나, 그 방식이 온전하거나 뒤틀려 있거나를 떠나 우리 서사에서 ‘가족’이라는 말은 ‘외롭다’는 말과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해피 패밀리』의 가족들은 철저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가슴에 맺힌 커다란 상처를 허무주의로 메우고 있는 한민형의 모습이나, 직접 입양해온 한영미를 철저히 필요에 의해서 물건처럼 대하고 심지어 그런 태도를 아무렇지 않게 정당화시키는 어머니 민경화의 모습은 이들을 정말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되묻게 한다. 나는 사람보다 책이 좋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유년기를 되돌아보면, 책 읽는 나보다 동무들과 뛰노는 내가 더 선명히 기억된다. 아마 십대의 어느 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책을 사람보다 더 좋아하게 된 것이. 책보다는 아닐지라도, 내가 사람을 좋아하긴 하는 것일까? 선뜻 그렇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것일까? (한민형, 12쪽) 내가 영미에게 늘 따뜻한 엄마는 아니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러나 민희나 민주도 나한테 싫은 소리를 많이 들으며 자랐다. 나는 영미에게 은혜를 베푼 것뿐이다. 그 아이의 엄마가 됨으로써. 올데갈데없던 애를 내 딸로 삼음으로써. 영미는 집안일을 통해 그 은혜를 아주 조금 갚은 것뿐이고. 영미에 관한 한, 나는 세상에 부끄러울 게 없다. (민경화, 64쪽) 이런 살풍경한 이야기는 다만 소설에 국한되지 않는다. 현실로 돌아와 살펴보아도 이처럼 남남처럼 살아가는 가족들을 우리는 쉬이 발견할 수 있다. 늙고 힘없는 부모들이 거리에 나앉고, 형제들은 돈 때문에 싸우고, 무수한 아이들이 학대받고 버려진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성(父性)과 모성(母性), 한 핏줄에 대한 경이와 존중을 신문기사 속에서 발견하기 어려워진 지 오래다. “그들을 지금까지 함께 살게 한 것은 그저 관성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해피 패밀리』의 주인공들이 가족에 대해 익숙하게 생각해오던 관념이나 생각 들에 대해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들을 단순히 악하거나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 위선은 지혜로운 위선이다. 가족들 사이에 평화를 만들어내는 위선. 가족들 사이에 사랑을 만들어내는 위선. 비록 그 평화가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위태위태한 것이고, 그 사랑이 보기에만 아름다운 치장일 뿐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서현주, 82쪽) 죽은 친구의 남동생인 한민형과 결혼한 서현주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며느리, 과분한 아내, 친밀한 엄마로서 가족 구성원들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조차 사실 이런 생각으로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말하는 위선을 진짜 위선으로 받아들이기는 다소 어려운 감이 있다. 어쨌든 그녀는 진실로 남편을 사랑하고 시부모들을 위하며,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관계에 항상 방관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아버지 한진규도 사실 자식들에게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애정을 쏟고 있었다. 나는 민형이를 아낀다고 생각해왔지만, 자식들 가운데서도 가장 아낀다고 생각해왔지만, 그건 나 좋을 대로 해온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나는 분명히 이 아이를 아꼈다. 이 아이가 나를 실망시킨 뒤에도 말이다. 그리고 내 정이 이 아이에게 자연스레 전달되리라 여겼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못했다. (한진규, 39쪽) 그들을 지금까지 함께 살게 한 것이 말 그대로 관성 때문이었을까?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을 뿐, 어쩌면 이 가족들도 때때로 아끼고 위하며 살아오지 않았을까? 생활 곳곳에서 생겨난 작은 균열들, 상처를 주는 아픈 말이나 무심한 행동 들이 결국 커다란 구멍이 되어 서로를 갈라놓았을 것이다. 이들을 나쁘다고 질책하며 모든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조금 부당한 일이다. 우연이든 운명이든 너무 커다란 비극을 겪게 된 이 가족으로선 이러한 삶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 가운데 우리 가족 가운데 미친 사람 아무도 없어. 그냥 특별한 일을 겪었을 뿐이고, 다 많이 놀랐을 뿐이야.” 이 우주에서 이런 일쯤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재벌이나 왕가의 일원이었다면 이 ‘별남’은 오히려 권위가 됐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알겠다. 내가 뭇사람의 하나일 뿐이라는 것을. 아니 이제 나는 뭇사람조차 아니다. 아빠의 여신이었던 내가! (한민희, 198쪽) 한민희의 죽음이 가족에게 가져온 충격과 슬픔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녀는 그녀의 방식대로 태어난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온전한 최선을 다했다. 한민희의 불행은 그녀 혼자서 감당하고 안고 가야 할 일이 아니었다. 가족 모두의 책임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그녀의 선택을 인정하고, 그 뜻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었다. 남겨진 가족들은 커다란 상처가 아물 때까지 견디고 인내했으며, 서현주를 새 가족으로 받아들여 가까스로 평온해 보이는 일상에 다시금 안착할 수 있었다.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상흔을 간직한 채, 이 가족은 오늘도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다.” 고종석은 소설 연재를 시작하는 글에서 『해피 패밀리』라는 소설의 표제가 반드시 역설적인 의미만을 뜻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며, ‘우리는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그의 말대로 소설에 등장하는 가족들 중 누군가는 소설의 제목대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며, 누군가는 행여 불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두들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쯤에서 우리는 가족이란 게 대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린 한지현도 아빠와 엄마, 그리고 외할머니에게 가족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응, 그렇구나. 사람들은 모두 식구구나. 그럼 저기 경비 할아버지도 식구고 만둣집 아줌마도 식구고 응, 응, 다 식구네?” “그렇지.” “유치원 선생님도 식구고 은미도 식구고 봄이도 율이도 식구네?” 나는 신이 나서 소리쳤다. “그렇지, 그렇지. 그런데 사람들만이 아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