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가 죽고 철학이 살다
플라톤 철학의 출발점 『소크라테스의 변명』
서양 철학이 플라톤 대화편의 주석이라면, 플라톤 대화편은 『변명』의 주석
플라톤의 대화편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이자 플라톤 철학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이 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으로 새롭게 나왔다. 『변명』은 플라톤 작품 가운데 소크라테스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 있는 유일한 작품이며 소크라테스의 연설을 생생하게 직접 화법으로 전달하는 중량감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와 관행이 확립되는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토양 위에서 공동체의 행복을 어떻게 성취할 수 있는지를 사유한 소크라테스. 그러한 영광의 세기가 퇴색하자 희생양으로 재판정에 선 소크라테스를 당대의 지식인들은 지나쳐 버리지 않았다. 그의 재판뿐만 아니라 일련의 행적과 대화 내용까지 주목을 받으며 사실상 플라톤의 모든 대화편이 속하는 ‘소크라테스적 이야기’라는 장르가 유행하기에 이른다. 2000년의 서양 철학은 플라톤 대화편들의 주석에 불과했다는 영국 철학자 화이트헤드의 표현에 빗대자면, 플라톤 대화편들은 『변명』의 주석이라고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재판정에 선 소크라테스, 무죄의 ‘변론’ 대신 철학적 삶을 ‘변명’하다
『변명』은 기원전 399년 민주정하 아테네에서 열린 재판에서 불경죄와 젊은이를 타락시킨 죄로 고발당한 소크라테스가 행한 연설을 재현하는 플라톤의 작품이다.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고발된 혐의 내용을 반박하여 무죄 판결을 받아내려고 ‘변론’하기보다, 고발이 함축하는 자기 삶 전체를 향한 물음과 도전에 대해 ‘항변’한다. 소크라테스로 대변되는 삶의 방식, 그러니까 철학과 철학적 삶 자체에 대한 ‘변명’인 셈이다. 옮긴이 강철웅 교수는 목전에 죽음을 앞둔 재판에서도 자신의 기본 신념과 태도를 견지하면서 다른 믿음을 가진 이의 의견을 경청하고 유연하게 소통하는 소크라테스의 면모를 강조한다. 소크라테스가 자기 삶 속에서 일관되게 보여준 진지한 유희의 아곤(콘테스트) 정신과 균형감이다. 2000년이 훌쩍 넘은 고전 텍스트를 읽는다는 것이 지금 우리의 삶과 방향을 물을 수 있는 거울이 되어주는 것은 이러한 작품에 깃든 위대한 정신 때문이다.
새롭게 펴내는 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 『소크라테스의 변명』
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으로 선보이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은 기존 판의 오류를 바로잡고 새롭게 정선한 전집의 체계에 맞춰 편집되었다. 공동 독회를 통한 철저한 연구 번역과 풍부한 주석이라는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멋스러운 디자인과 가독성을 십분 살렸다는 평이다. 향후 1, 2년 앞으로 다가온 전집 완간을 앞두고 정암학당과 출판사 아카넷은 『카르미데스』, 『정치가』, 『파르메니데스』, 『국가』 등 새로운 플라톤 작품 번역에 힘을 쏟는 한편, 기존의 플라톤 번역을 새롭게 펴내는 작업도 꾸준히 병행할 계획이다. 이번에 플라톤 철학의 출발점이라 불리는 『소크라테스의 변명』과 『향연』이 동시에 출간되면서 플라톤 전집 완간이라는 출간 목표에 새로운 이정표를 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