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매매론 vs 성노동론, 강제 vs 자발, 폭력 vs 노동 ……
매춘을 둘러싼 이분법을 넘어,
누군가의 삶, 구체적 현실, 구조적 분석에서 출발하는 새로운 논의의 시작!
“이 책의 가장 고마운 점은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지금 우리가 더 실질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를 매우 구체적으로 짚어주고 있다는 부분이다. 그러면서도 각각의 문제마다 교차적인 분석을 놓치지 않는다. …… 모쪼록 이 책이 한국에서도 새로운 논의의 장을 활짝 열어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_나영,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대표
“이 책은 분명 성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며 왜 그래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설득력 있게 상세하고 충분히 짚어주고 있고 그것으로서 이미 너무나 충분하다. 독자로서, 또한 연구자로서 이 책의 저자들, 옮긴이, 출판을 결정해준 출판사 모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진지하고 진심인 페미니스트들이라면 이 소중한 책을 모두 필독서로 삼아주면 좋겠다.”_박이은실, 여성학자·《월경의 정치학》 저자
“성노동을 비난하거나 찬미하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두 선택지를 모두 거부하고, 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사회정의를 향한 모든 운동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책이다.”_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저자
“성노동에 종사하는 페미니스트, 성노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필독서다.”_케이시 윅스,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 저자
페미니즘에 대한 새로운 사유, 치안과 법률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 성노동에 대한 비판적인 평가를 제공하는 이 책은 성노동자 권리를 위한 투쟁의 동력이 될 것이다._멀리자 지라 그랜트, 《Sex Work: 성노동의 정치경제학》 저자
정작 성노동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양극단 사이에서 지워지는 현실
“형법으로 성판매를 막기는 매우 어렵다. 범죄화는 성판매를 위험하게 만들 뿐이며, 국가는 성판매 및 성매매에 필요한 인간 역량을 물리적으로 억제할 방법이 없다. …… 생계를 위한 성노동은 아마도 위험하고 춥고 무섭겠지만, 굶주리고 집 없고 약물에 빠져 다른 선택지가 없는 이들에게 이것은 최후의 수단이 될 수 있다. 곤궁에 빠진 사람들이 택할 수 있는 일종의 ‘안전망’인 셈이다. 성노동이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112쪽)
그동안 매춘을 둘러싼 논의는 같은 자리를 맴돌아왔다. 소위 ‘반성매매론’ 대 ‘성노동론’이라 불리는 입장의 각축전일뿐이었고, 둘 중 어떤 입장을 지지하는지를 묻는 일이 반복되어왔다. 성매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논할 때는 완전 범죄화 모델, 합법화 모델, 노르딕 모델, 비범죄화 모델 등 특정 법제화 모델을 선택하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처럼 다루어지기도 했다.
특히 한국에서는 이 이항대립적 논의가 매춘을 노동으로 인정하느냐 아니냐에 매몰되어 진행되어왔으며, 매춘은 ‘성을 사고파는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 ‘대가를 받는 강간(페이 강간)’이며 따라서 매춘은 정당화될 수 없고 특히 ‘노동’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즉 매춘 자체가 범죄라는 ‘반성매매론’은 페미니즘 내 매춘을 둘러싼 주류의 목소리로 자리 잡아왔다. ‘성노동(sex work)’이라는 단어는 성노동자 당사자이자 활동가인 캐럴 리에 의해 고안된 말에도 불구하고, 성노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포주의 입장을 대변하는 행위처럼 치부되기도 한다. 매춘이 곧 강간이라는 시각하에서는 폭력으로서의 성 접촉과 그렇지 않은 것 사이의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성노동자가 강간문화에 공모하는 이로 취급되고 그들이 당하는 폭력은 당해도 싼 것이라고 인식되기도 한다. 이런 맥락 속에서 매춘부는 피해자로서 인정되어야만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지거나, 성매매 범죄화에 찬성하는 생존자로서의 ‘탈성매매 여성’만이 매춘에 대한 발언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곤 했다. 또한 매춘을 자발적으로 했는지 강제적으로 했는지 따져 물으며 그에 따라 매춘 여성을 달리 여기는 태도 역시 존재해왔다.
다른 한편에서는 성산업 현장에 성차별과 여성혐오가 없다며 성산업의 문제를 과소평가하면서 성노동을 찬미하거나, 성노동이 성노동자의 권능을 강화한다는 식으로 ‘행복한 창녀’ 신화를 앞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태도 역시 성노동자의 실제 삶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다. 특히나 섹스 긍정주의 정치는 성노동자의 이익과 고객의 이익이 일치한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실제로 성노동의 현장에서 겪는 성노동자의 폭력과 부당함을 도리어 부정하게 만든다. 이 역시 페미니즘의 지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다. 매춘 비범죄화를 옹호하는 성노동자는 반성매매 페미니스트들에게 부인되고, 성노동을 하며 폭력과 착취를 경험하고 있는 성노동자는 섹스 긍정주의자들에게도, 탈성매매자나 탈성매매를 할 사람들만이 유일하고 정당한 생존자라고 여기는 감금 페미니즘(carceral feminism, 여성 정의를 세우기 위해 치안 유지와 범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경찰력을 환영하는 페미니즘) 지지자들에게도 부인된다.
하지만 현실은 양극단 사이에 놓여 있게 마련이다. 이 책은 이런 논의 속에 ‘정작 매춘부의 삶, 성노동자 당사자의 목소리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정작 매춘부들의 구체적인 삶과 안전, 성노동자 당사자의 요구는 뒷전이 된 채 현재 성노동자가 아닌 탈성매매자, 성노동 경험이 없는 비매춘부 페미니스트들이 주도해온 ‘매춘부 없는 매춘부 담론’, 즉 추상적 논의만이 난무해왔다는 비판이다. “매춘부와 비매춘부, 그리고 현직 성노동자와 전직 성노동자 사이에는 단지 정체성이 아니라 성을 판매하고 거래하는 것을 둘러싼 ‘물질적 조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91쪽)라는 가장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지금 성산업의 노동조건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현직 성노동자일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매춘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탈성매매 여성이나 비매춘부 페미니스트의 시각이 중심이 되어 성노동자의 목소리는 부속품처럼 취급되어왔으며, 당사자인 현직 성노동자들의 목소리가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가로막혀온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은 성노동자이자 성노동자 권리 운동 활동가인 저자들이 쓴 책으로, 비매춘부들의 추상화된 언어에 가려져 왔던 현직 성노동자들의 생생한 발언들에 기대, 매춘을 둘러싼 이분법에 반대한다. 매춘이 폭력인지 노동인지, 그것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자발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따지는 추상적 논의 속에서 성노동의 현장, 구체적이고 다양한 성노동자의 삶과 목소리는 지워지기 때문이다. 지금 매춘을 통해 삶을 이어가는 이들은 ‘행복한 창녀’도 아니고 ‘탈성매매 여성’도 아니다. 오늘 밤이나 내일,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위험이 닥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한 유일한 수단으로서 매춘을 해야 하는 이들이다. 따라서 저자들은 매춘이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성산업의 분석은 이제 추상적 논의에서 벗어나 성노동자의 복잡다단한 경험에 기반해 물질적으로, 실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성노동자를 성산업에서 구출되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방식, 성노동을 찬미하고 성산업의 문제를 과소평가하는 양극단에서 벗어나 실제로 성노동자의 삶을 위험하게 만드는 물질적 조건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렇기에 바로 성노동자들의 구체적인 삶과 물질적 조건에 영향을 주는 핵심적 구조인 섹스, 노동, 국경의 문제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를 다루고, 이어서 성노동자와 성산업을 규율하는 법제화 모델들의 사례들이 매춘부들의 삶에 구체적으로 어떤 경제적 영향을 주는지 면밀히 살펴본다.
“누구의 삶도 ‘불법’이어서는 안 된다”: 섹스, 노동, 국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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