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천재로 추앙되었다가 처참하게 공격받고 사라진 작가, 그의 자취를 쫓는 또 한 명의 젊은 작가 2008년, 문학에 끌려 시인이 되겠다는 꿈을 품은 세네갈 청년 디에간 라티르 파이는 『흑인 문학 개설』에서 한 낯선 세네갈 작가의 이름을 발견한다. 그 작가는 풀네임조차 알려져 있지 않은 T.C. 엘리만이라는 수수께끼의 인물로, 파리로 가 공부를 하다가 1938년에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라는 단 한 권의 저서를 출간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인물이다. 프랑스 문학계는 엘리만에게 “흑인 랭보”라는 수식어를 붙여주며 그의 책을 “아프리카 흑인의 걸작”이자 “프랑스에서 본 적 없는 책”이라 격찬하고 열광하지만, 이내 엘리만은 엄청난 표절 논쟁에 휘말린다. 어느 프랑스인 교수가 그의 책이 아프리카 바세르족의 우주 생성 신화를 그대로 가져와 베껴 썼을 뿐인, 독창성도 윤리도 없는 작품이라는 주장을 제기한 것이다. 이로 인해 프랑스 문학계에는 전면적인 스캔들이 일고, 대규모 소송에 휘말린 출판사는 결국 문을 닫고, 책은 회수되지만 작가는 끝까지 어떤 대응도 하지 않은 채 침묵을 택한다. 디에간은 이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T.C. 엘리만에게 강렬한 매혹과 호기심을 느끼고 그를 추적하기 시작하지만, 이미 엘리만은 세네갈인들을 포함해 사람들 대부분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뒤다. 남아 있는 것은 “양차대전 사이의 불명예스러운 아프리카 작가”라는 짧은 요약, 컬트가 되어버린 엘리만을 비밀스럽게 숭배하는 추종자들, 그리고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의 첫머리뿐이다. 2018년, 작가로 데뷔해 파리에서 지내고 있던 디에간은 위대한 소설을 쓰겠다는 꿈을 꾸지만, 자신에게 붙은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문학의 유망주”라는 꼬리표와 “매번 새로움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문학에서 이미 늙고 지쳐버린 것들을 내세운 좌담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해야 하는 상황에, 즉 자신의 문학을 하기 위해 프랑스 문학계에서 얻어야 했던 승인과 그것에 따라붙는 제도권의 절차들에 이미 얼마간 부담과 권태를 느끼고 있다. 그러던 그 앞에 T.C. 엘리만의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디에간이 우연히 만난 60대의 세네갈인 여성 작가 마렘 시가 D.가 아무렇지도 않게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읽고 있었던 것이다. 출간하는 책마다 스캔들을 일으키는 “사악한 무녀”로 알려져 있던 마렘 시가 D.는 엘리만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자신도 그를 찾아 헤맸지만 더는 찾아 나설 용기가 없다는 말을 들려준다. 전설 속 엘리만의 책을 손에 넣은 디에간은 비로소 80년 전 그 책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문학적 논쟁의 진실과, 엘리만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존재가 아프리카와 프랑스 문학계에서 지녔던 의미를 본격적으로 추적해나가기 시작한다. 과연 엘리만은 부당한 모욕을 뒤집어쓰고 사라진 인종 차별의 희생자였을까? 아니면 치졸하게 표절을 저지른 사기꾼에 불과했을까? 그는 무엇에 맞서 싸워야 했으며, 항변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가 끝까지 침묵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새로운 진실이 밝혀질 때마다 엘리만은 디에간을 점점 더 깊은 미궁 속으로 끌고 들어가지만, 디에간은 이 외롭고도 진지한 탐색의 길을 멈추지 않는다. 이 시대에 문학을 통한 싸움은 어떻게 가능한가, 문학 본연의 마법적인 힘을 되살리는 작품 “이제는 심지어 책을 좋아하는 약사조차도 위대하고 불완전하며 압도적인 작품들, 즉 미지의 세계 속에서 길을 열어주는 작품들을 읽기 두려워해. 사람들은 위대한 스승들의 완벽한 연습 작품들만 골라서 읽고 있어. (중략) 하지만 위대한 스승들이 무언가와 맞서 싸울 때, 그러니까 피를 흘리며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악취를 풍기면서 우리 모두를 위협하고 두려움으로 사로잡는 것과 맞서 싸울 때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아.” 로베르토 볼라뇨는 『2666』에서 한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시공간을 뛰어넘는 문학적 대화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다면, 1990년생 세네갈 작가로 2021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의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마치 볼라뇨의 저 구절들에 대한 후대 작가의 문학적 답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흥미진진한 미스터리의 형식을 취하고 있고, 놀라울 정도의 흡입력과 속도감으로 전개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문학에 관한 진지하고 치열한 고민들로 가득 차 있으며, 무엇보다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시대에 ‘문학으로써 싸우고자’ 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 싸움은 어떤 형태로 가능할까?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이미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에게 문학은 단순히 판매 부수와 수익으로 환원되는 하나의 상품이자 비즈니스 생태계의 일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고, 문학이 지난 세기에는 어떤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한들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절대 다수라는 현실을 말이다. 어떤 작가들은 그런 현실에 체념과 허무를 느끼고, 또 어떤 작가들은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고 몸과 정신을 바꾸어 살아남는다. 세네갈 작가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는 누구보다 이런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며, 그의 고민은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디에간이 교류하는 작가들 중에는 수십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들을 이끌고 다니기 때문에 그 앞에서는 “제아무리 용맹한 비평가들도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는”, 그러나 함량 미달의 글을 쓰는 베스트셀러 작가도 있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과 문학 이야기를 하는 일이 “참기 어려운, 추잡스러운, 부르주아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빠지면서도 “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이야. 우리는 문학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 것처럼 굴 수밖에 없어”라고 진지하게 고백하는 작가도 있다. 사회적 문제 앞에서 저항하기 위해 누군가는 여전히 분신자살이라는 고통스러운 방식을 택하는 현실 속에서 글쓰기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 하는 무력감과 죄책감도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끝내 ‘쓰지 않기’보다는 ‘쓰기’를 택하겠다고 마음먹는 작가들도 있다. 디에간과 동료 작가들이 처해 있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인 작가’라는 상황은 더 복잡한 고민들을 불러일으킨다. T.C. 엘리만의 작품에 쏟아진 평가들을 추적하던 디에간은 그의 작품이 표절이라는 주장 자체에 아프리카에 대한 몰이해에 바탕한 부정확한 사실들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발견한다. 유럽인들이 엘리만의 책을 너무도 신비로운 작품이라 칭송했지만, “흑인 랭보”라는 수식어에서도 알 수 있듯 거기에도 결국 시혜적인 타자화의 그늘이 드리워 있었다는 사실 또한 발견한다. 노골적인 인종 차별적 견해를 드러내며 엘리만을 프랑스 문학계에서 몰아내려 했던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그의 작품이 “충분히 아프리카적이지 않다”고 폄하하는 시선들도 있었다. 엘리만의 태생의 비밀과 함께 밝혀지는 더 뿌리 깊은 갈등들도 있다. 고국을 떠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 우세누 쿠마흐에게, 자신의 형 아산과 그의 아들 엘리만은 태어난 땅과 전통을 버리고 지배자들의 언어를 받아들인 배신자이자 크나큰 상처를 안겨준 인물이며, 엘리만의 고향에 남아 유럽적 지식의 수혜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생생하고 가치 있는 또 하나의 전통을 이루며 이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나 더 넓은 세상에서 활동하고자 하는 작가에게 ‘아프리카와 유럽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강요’는 필연적으로 맞부딪히게 되는 실존적 고민이며, 그 선택지 각각이 아무리 화려하거나 신비로워 보인다 해도 거기에는 각각의 고통과 상처, 악취와 피와 진흙탕 싸움이 도사리고 있음을,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가장 직면하기 두려워하는 무언가에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음을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다. 세계 제 1, 2차 대전 시기에서부터 현재까지, 다카르에서 파리, 암스테르담, 남아메리카 대륙과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이르기까지, 엘리만의 문학적 삶을 추적하는 디에간의 여정에는 문학과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에 관한 풍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