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한나 아렌트가 뇌과학자였다면 바로 이런 책을 썼을 것이다” 그들은 왜 명령에 복종했을까? 집단 폭력에 가담하는 인간에 대한 인지신경과학 연구 “역사적으로 전쟁, 집단학살, 노예 제도 같은 가장 끔찍한 일들은 불복종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라 복종 때문에 일어났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 국가적 폭력 사태나 집단학살이 일어났을 때 사건의 책임자들을 포함해 모든 가담자에게서 들을 수 있는 책임 회피성 진술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의 책임을 물었던 1차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 기소된 24인의 지도자 대다수가 주장한 변론이기도 하다. 물론 이들의 변명은 참작되지 않았고, 세 명을 제외한 모두가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그중 12명의 피고인은 사형에 처해졌다. 그럼에도 지시체계 최하단에서 명령에 따라 잔혹한 행위를 수행한 사병들과 부사관을 어떻게 처벌해야 할지는 논쟁의 대상이 됐다. 강압적 상황에서 명령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일시적으로 자유의지가 없어지는 걸까? 그렇다고 해도 그토록 잔혹한 행위들을 단순히 명령 때문에 실행할 수 있는 걸까? 『명령에 따랐을 뿐!?: 복종하는 뇌, 저항하는 뇌』는 벨기에 겐트대학교 실험심리학과 부교수 에밀리 A. 캐스파가 2016년부터 지속해 온 자신의 연구들을 정리해 명령에 복종할 때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인지신경과학적 과정을 밝힌 책이다. 책은 또한 방대한 사회‧심리학 및 인지신경과학 자료를 분석해 집단학살‧집단 폭력 사태가 일어나는 원인에 대한 종합적 지식을 제공한다. 특별한 점은 한정된 연구 틀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통제된 환경과 일부 인구 집단에 국한되는 실험실 연구의 한계를 인정하고 집단학살이 발생했던 르완다, 캄보디아를 방문해 실제 학살의 가해자들을 인터뷰한 후 실험 결과를 종합해 낸다. 그뿐 아니라 이들 정보를 바탕으로 우리 사회가 집단적 폭력에 물들지 않도록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하고 있다. 신경심리학 및 인지신경과학을 전공한 에밀리 캐스파는 권위와 명령에 대한 복종이 개인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해 왔다. 캐스파 연구의 독창성은 명령과 수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실험자의 변화를 인지신경과학의 수준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심리학 연구가 인간이 명령에 복종해 어떤 잔혹한 행동까지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그쳤다면, 그의 연구는 명령에 따르는 사람의 뇌에서 나타나는 변화와 그 의미를 밝혀준다. 박사 학위 논문 「강압은 인간 뇌의 주체의식을 변화시킨다」는 이러한 뇌과학적 접근법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일거에 심리학계 및 과학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캐스파는 이 논문으로 2016년 3년마다 최고의 심리학 박사 논문을 뽑는 벨기에 왕립아카데미 심리학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관련 연구물에 수여하는 의식과학연구협회 윌리엄제임스상과 이븐스 과학상을 모두 수상했다. 같은 주제로 일련의 연구들이 이어져 2017년에는 국제 심리학회의 라이징스타에 노미네이트 됐고, 2023년에는 국제 사회신경과학회의 얼리커리어상을 수상했다. 이 둘은 모두 연구 경력이 짧은 신인 연구자를 위한 상으로 캐스파의 행보가 얼마나 큰 관심을 받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수상이다. 복종하는 뇌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명령에 따르는 행동의 신경적 뿌리 찾기 “그보다 나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명령에 복종하기로 동의했을 때 그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고 싶었다.” 에밀리 캐스파는 자신의 연구가 밀그램 실험의 영향 아래에서 고안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1961년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이 시행한 ‘귄위에 대한 복종’ 연구는 실험자의 명령을 받은 참여자가 다른 이에게 얼만큼의 고통을 줄 수 있는지를 확인한 실험이다. 실험에서는 참여자 65퍼센트가 상대의 “비명과 애원에도 불구하고” 명령에 따라 최대치인 450볼트의 전압을 가했다는 결과가 나타나 충격을 주었다. 이 실험은 복종 연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레퍼런스로 자리잡았고 이어진 다른 연구자들의 유사 실험들은 밀그램 실험 결과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밀그램 실험과 여타의 유사 실험들은 모두 특별한 동기 없이 명령만으로도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상당한 수준의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에밀리 캐스파는 밀그램 실험과 유사 실험들이 “주어진 상황에서 개인이 권위자의 명령에 복종할 것인지 아닌지만 알려주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동안의 연구로는 “사람들이 명령에 따를 때 잔혹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떻게’에서 출발한 저자는 밀그램 연구에 인지신경과학을 결합한 실험을 고안해 낸다. 즉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명령에 복종하기로 동의했을 때 그들의 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신경학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복종의 메커니즘을 파악해 파괴적인 복종을 방지할 수 있는 단서를 추적한다. 『명령에 따랐을 뿐!?』에서 에밀리 캐스파는 명령에 따르는 우리 행동의 신경적 뿌리를 찾아내는 자신의 연구를 빠짐없이 소개하고 있다. 2016년부터 시작된 다수의 실험에서 저자는 복종하는 사람의 뇌에서 주체의식 즉 책임감 및 공감 능력, 죄책감을 담당하는 뇌의 영역과 회로에서 활성이 떨어지는 현상을 확인했다. 각각의 연구 결과는 다양한 가설과 관련 자료들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타당성을 확보한다. 결과적으로 저자의 연구는 뇌 영역별 기존 신경과학의 연구 내용과 호응하며 이미 밝혀진 인간적 특성에 대한 이해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한편 명령에 따르고 복종하는 인간 행동에 깃들어 있는 다양한 과학적 기제들을 명확하게 설명해 낸다. 집단적 폭력 현상을 설명하는 개인의 신경과학적 데이터 “우리가 동물이 아닌데도 사람을 죽이고 동물이 되라고 지시한 것은 바로 나쁜 지도자입니다. 맞아요. 이 일을 일으킨 것은 우리가 아니라 지도자였습니다.” 『명령에 따랐을 뿐!?』은 단순히 연구 결과를 나열한 책이 아니다. 명령에 복종할 때 일어나는 개인의 신경적 작용은 기존 사회‧심리학적 연구들에 대한 분석과 통합을 통해 사회 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넓은 이해로 확장된다. 즉 저자의 연구들은 집단학살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전모를 파악하기 위한 일종의 패치워크와 같다. 예를 들어 집단학살이 발생한 르완다와 캄보디아에서의 가해자 인터뷰는 매우 인상적이다. 이들이 저마다 다른 형태로 고백하는 예의 명령에 복종했다는 취지의 진술은 실험 결과가 말해주는 뇌의 신경적 작용이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는지 놀랍도록 선명히 보여준다. 또한 명령받는 자뿐만 아니라 명령을 내리는 자 역시 낮은 수준의 책임감을 느낀다는 실험 결과는 책임 분산에 대한 기존 연구들과 상응하며 군대 등 계층적 구조에서 집단 폭력이 쉽게 일어나는 현상을 설명해 준다. 공감에 대한 연구 해설도 눈여겨볼 만한다. 명령을 받을 때 공감과 관련한 뇌 활동의 감소는 인간이 외집단과 내집단에 차별적 공감을 보인다는 진화론과 사회심리학의 범주화 및 비인간화 연구 내용과 결합해 집단적 폭력의 총체적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다. 신경학적 수준에서 복종의 메커니즘을 확인하려는 저자의 실험 의도에는 사회적 개입에 대한 고려가 이미 전제돼 있다. 복종에 의한 잔혹 행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사회가 이를 예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각각의 실험 결과는 명령을 거부할 수 있는 주체적 의지에 대한 힌트를 제공한다. 그에 더해 책은 실제 역사에서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하고 타인을 도우려고 노력했던 이들도 소개하고 있다. 르완다 집단학살 당시 적극적으로 구조 활동을 했던 펠리시앙 바히지와 주라 카루힘비 등에 대한 이야기에서 독자들은 희생을 감수하며 정의를 택한 이들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괴물’이다 ‘악의 평범성’에 대한 과학적 해답<B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