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사라지는 미래와 마주한 일상의 모더니즘
식민주의, 파시즘, 모더니즘의 교차로에서 독자적 미학을 선보인 한국 근대 작가들
★2015 모더니즘학회 도서상 수상작★
모더니즘적 상상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식민지 경험을 바라봄으로써, 이 책은 한국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제국주의 폭력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더없이 독창적이고도 가치 있는 수단을 제공한다.
_해리 하루투니언 (컬럼비아대학 교수)
학문성과 개념적 사유에서 세계적 수준에 이른 이 책에서 자넷 풀은 식민지 시대 한국의 시인, 철학자, 수필가 들이 아무 변화의 전망도 없이 사라져가는 미래 앞에서 어떠한 고투를 펼쳤는지 보여준다. 한국이라는 지역적 사례를 통해 식민 말기의 복잡한 시간성이라는 문제를 폭넓게 해명하고, 문화가 이러한 시간 인식을 문화적 형식 속에 어떻게 각인하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_앨런 탠즈먼 (버클리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일본 모더니즘, 일본 제국주의 및 일제의 정치와 문화, 유럽 모더니즘에 대한 기존 연구에, 그리고 식민지기 한국에 대한 점증하는 연구 성과에 반드시 추가해야 할 책이다.
_이진경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 교수)
영어권 한국문학 연구 가운데 텍스트들의 면밀한 독해와 그 역사적, 문화적 콘텍스트들의 핵심적 독해를 이만큼 훌륭하게 결합한 예는 달리 없다. 『미래가 사라져갈 때』는 식민주의, 파시즘, 모더니즘의 교차 지점에서 나타났던 미학적 성좌들을 놀라울 만치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_황종연 (동국대학교 교수)
‘모더니즘학회 도서상’을 수상한 역작
한국의 역사 서술에서 1930년대 말~1940년대 초는 ‘암흑기’로 불린다. 일본 식민 지배의 마지막 십 년 동안 한반도에 살았던 시인, 철학자, 소설가, 저술가 들은 전쟁과 파시즘의 광풍 속에서 민족의 미래를 더는 상상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주체와 객체, 일본과 조선 사이에서 철저하게 결박되고 분열된 상황은 역설적으로 세계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모더니즘의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 모더니즘은 사라지는 미래에 직면한 식민지 부르주아 주체들이 펼치는 상상의 고투였다.
컬럼비아대학에서 한국 근대 모더니즘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자넷 풀은 한국문학과 문화사, (탈)식민주의와 모더니즘 미학을 연구하는 학자이면서 이태준 등의 수필과 소설을 영어로 소개해온 한국문학 번역자이기도 하다. 서양 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 모더니즘 연구인 이 책은 몇 가지 흥미로운 특이점이 있다.
첫째, 식민 말기 한국 모더니즘을 서양 모더니즘의 영향하에 있던 아류적 현상으로 보지 않고 당대 세계 모더니즘과 파시즘의 문화사라는 거시적 차원에서 수평적으로 다룬다. 세계적인 모더니즘의 흐름 속에서 한국은 독창적인 미학을 탄생시켰다는 것이다.
둘째, 한국에서도 이천년대 들어서야 연구가 본격화한 식민 말기, 그중에서도 특히 해방 이후 북한으로 향한 작가들을 주로 논한다. 이태준, 박태원, 최명익, 임화, 오장환, 김남천 등은 대개 해방 이후 월북했거나 북한에 남았던 이들이다. 이들의 작품은 1980년 후반까지도 남한에서 출판 금지되었다.
셋째, 글쓰기 형식 면에서 일화적 수필, 비평, 단편소설 같은 ‘비주류’ 장르에 주목한다. 당시 시대상과 작가들의 심상이 이런 단편적이고 파편화된 글쓰기 형태에 각인되고 투영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분열된 주체들의 모더니즘적 상상력
식민 말기 상황에서, 미학과 정치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논의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일본의 식민 통치가 본격화하기 시작하는 1900년대 초에 태어났다. 그들은 식민지 이전 사회에 대한 기억이 없었으며, 일본에 유학한 이들도 여럿이었다. 그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30년대에는 조선어 매체가 번성했고, 전업작가들이 생겨날 만큼 출판 시장도 활성화되어 있었다.
예컨대 이태준은 식민지에서 자수성가한 대표적인 작가였다. 단편소설과 문장 작법을 쓰고 신문 학예면 편집자로 일하며 신문에 장편소설을 연재하기도 한 이태준은 가족을 부양하면서 우아한 생활을 누릴 만큼 충분히 돈을 벌었다. 이 책에 나오는 다른 작가들도 모두 부르주아 주체들이다. 그들은 시장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면서도 시장의 혜택을 누렸으며, 조선어를 통해 민족문화 관념에 고취되었으나 실상 제국의 뒤편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누렸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시행된 일제의 황민화 정책으로 상황은 급변한다. 1940년에 조선어 매체가 폐간되면서 시장 및 정치로부터의 자유는 사라졌다. 발표 지면이 급감했고, 이제 대부분의 작가에겐 일본제국의 언어로 글을 쓰는 것만이 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세계 식민주의 역사를 통틀어, 식민지의 언어가 근대가 되어서도 살아남았다가 국가권력에 의해 폭력적으로 폐지된 사례란 거의 없다.”(37쪽) 전쟁이 시작되고 조선어는 점차 사라져갈 운명에 처했다. 이에 대한 작가들의 대응은 새로운 언어로 혁명적 이상을 고취하겠다는 태도부터 파시즘에 대한 전면적인 승인까지 매우 다양했다.
이 시기 문단에는 파편적이고 삽화적이며 순환적인 구조를 갖춘 단편소설, 시, 수필 형식이 부상했고, 데카당스와 노스탤지어의 분위기가 가득했다. 개인과 민족 앞에 드리운 짙은 어둠 앞에서 작가들은 현재와 일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소설도 개인사와 가정사의 영역에 눈을 돌린다.
서사의 파편화를 통해 독자적 미학을 창출해냈던 작가 최명익의 작품에서 도시의 일상은 역동적인 부조화의 현장으로서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미래가 사라짐에 따라 일상의 “디테일”이 부상하는 과정을 그의 글에서 엿볼 수 있다. 교토학파 철학을 소개했던 좌파 지식인 서인식은 식민지 이전 시대인 과거에 대한 광범위한 관심이 모더니즘적 노스탤지어로 나타나는 현상을, 철학이라는 추상적 언어로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반면에 이태준은 과거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려 애쓴다. 부르주아 엘리트인 그의 골동품 취향은 실상 일상적 현재에 대한 매혹을 암시한다. 누구보다 자본주의의 혜택을 보면서도 이를 평가절하고 모더니즘을 견지하면서도 오래된 것을 패러디하는 이태준의 수필은 전통과 근대, 공과 사가 뒤엉켜 있는 모순적 개인성의 표출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작가 박태원은 ‘자화상’ 연작에서 도시 변두리의 일상을 서사화한다. 빠르게 근대화되는 도시의 변두리는 자본과 식민 국가, 오래된 것과 새것이 첨예하게 맞부딪히는 현장이며 이곳에서 개인은 가정과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간다.
일제 식민 정책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다른 미래를 상상했던 최재서는 문학의 황민화를 이끌었으며 일본어 글쓰기와 전쟁 동원에 적극 동참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황민화에서 의심과 불안이 사라진 행복한 미래에 대한 약속을 보았다. 공산주의 운동의 지도자였던 김남천은 최재서가 운영하던 잡지 『국민문학』에 일본어로 쓴 단편소설 「어떤 아침」을 발표한다. 이 소설은 식민 권력의 언어로 자기를 표현하는 일, 그 언어를 자신의 것처럼 소유하는 일의 불가피성과 불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식민 말기 한국의 모더니즘은 새로운 것의 탐색을 통해 미래를 열어젖히는 것이 아니라 모순적 현재를 탐색함으로써 미래의 사라짐을 표현한다.
해방 이후의 삶
1945년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아무도 예견하지 못한 식민 통치의 종말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사라진 줄만 알았던 미래가 다시 열렸을 때 작가들의 운명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고완품과 미학에 경도된 인물로 알려졌던 이태준의 월북은 모두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문화사절단으로 소련을 방문하며 “새 세계”를 향한 열광을 담은 기행문을 발표했던 이태준은 1950년대에 부르주아적 성향이란 비판을 받으면서 작가 이력이 끝났다. 이태준 못지않게 문체미에 몰두했던 딜레탕트 박태원도 한국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