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빅투스』, 유럽의 정치 지형도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바꾸어놓은 사실상의 ‘세계 1차대전’을 그린 정통 역사소설! 『빅투스Victus』라는 책 제목은 “왔노라Veni 보았노라Vidi 이겼노라Vici”에서의 ‘Vici’를 ‘Victus(졌노라)’로 바꿔 단 것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소설은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1701-1714)의 마지막 점을 찍었던 1714년 바르셀로나의 함락을 중심으로, 하층 바르셀로나인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빅투스』는 2012년 바르셀로나 소재의 La Campana 출판사에서 초판이 나올 당시에도 큰 논란과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네덜란드에서는 자국에 대한 불경한 묘사 때문에 출판사들이 번역출간을 꺼렸으나 결국은 출판되었다고 한다), 한국어판이 나온 2017년 현재 카탈루냐 독립운동 문제가 국제 뉴스의 첫 대문을 장식하고 있는 시점에서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소설이다. 저자 산체스 피뇰은 카날루냐 출신 문화인류학자이자 소설가이다. 그는 이전의 작품에서 고집스레 카탈루냐어를 고집했지만, 이 소설은 처음부터 에스파냐어로 집필했다. 그 의도는 이 소설이 다루는 주제가 비단 카탈루냐인만의 일이 아니라 카스티야인(지금의 에스파냐)의 일이기도 하다는 문제의식에 있을 것이다.(이 소설의 에스파냐어판은 출간 후 90일 만에 총 10만 부가 팔려 나갔는데, 에스파냐와 카탈루냐 지역이 4:3의 판매율을 보였다.). 한국의 독자들은 이베리아반도의 상황이 낯설고, 유럽의 얽히고설킨 정치지형에서 배태된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에 대해서도 좀처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또한 카탈루냐 문제로 유럽 전역이 들끓는 와중에, 현 질서의 변화를 원하지 않는 유럽 강대국들의 반응은 그렇다 쳐도, 카탈루냐 내부에서도 독립에 대한 찬반 움직임이 따로 작동하는 것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빅투스』는 그 지역 문제의 원초성을 더듬어볼 수 있는 중요한 창구가 된다. 한편, 이 소설은 많은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정통 역사소설의 계보를 잇는 동시에 새로운 진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높은 평가도 받고 있다.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읽어본 독자라면 그것의 장엄한 스펙터클에 더하여 에스파냐어권 특유의 피카레스카(惡漢소설)풍 유머와 해학이 『빅투스』 곳곳에서 번득이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산체스 피뇰이 톨스토이 외에도 갈도스, 뒤마, 위고를 잇는다는 평은 이 소설에 대한 찬사로서 매우 합당해 보인다. 이에 조응하듯, 피뇰 자신도 앞으로 18세기 유럽 역사가 지닌 가치에 주목하면서 10권 분량의 대하소설을 집필하고 싶다는 욕망을 공개적으로 피력하여 독자들의 기대를 집중시키고 있다 『빅투스』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두 가지 포인트 하나. 카탈루냐는 왜? 이베리아반도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우리에게 바르셀로나 하면 명문 축구클럽 FC바르셀로나의 연고지부터 떠오른다.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의 중심 도시다. 그 팀과 상대하는 레알 마드리드의 연고지 마드리드는 현재 에스파냐의 수도로서, 『빅투스』에서 그곳은 카스티야인들이 새롭게 건설한 도시로 등장한다. 이베리아반도는 서쪽으로 포르투갈왕국, 가운데가 카스티야왕국, 그리고 동쪽의 지중해로 띠를 두른 카탈루냐왕국이 자리하고 있었다(그 위로 프랑스가 위치해 있다). 『빅투스』의 1인칭 화자가 말하기로, 에스파냐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세 개의 왕국은 가톨릭교를 신봉했으며, 그들은 각자의 왕조를, 고유한 언어를, 고유한 문화를, 고유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전혀 신뢰하지 않고 항상 으르렁거렸다. 카탈루냐와 카스티야의 정신은 서로가 달랐으며, 성인(聖人) 열전 외에는 공통적인 게 없었다. 카스티야는 천수답이고, 카탈루냐는 지중해였다. 카스티야는 귀족적이고 농지이며, 카탈루냐는 부르주아적이고 해상무역이었다. 굳이 차이가 있다면 카스티야는 몇 명의 폭군이 나왔다는 것뿐이었다.”(166쪽) 양 왕국 사람들의 기질 차이를 화자는 다음과 같은 중세 설화로 설명한다. “카스티야 공주가 카탈루냐 왕자와 결혼한다. 공주는 바르셀로나로 간다. 객지에서의 둘째 날에 어린 신부가 보초를 서는 하인에게 물 컵(그게 요강이었는지는 모르겠다.)을 달라고 하자 하인은 직접 찾아보라고 대답한다. 공주가 남편에게 하인이 안하무인이라며 매질을 요구한다. 공주로서는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왕자는 어깨를 흠칫 들썩이며 이렇게 대답한다. “여보, 미안하지만 그대의 청은 들어줄 수 없어요.” 공주가 재차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자 남편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여기 사람들은 카스티야와 달리 자유인이거든요.””(167쪽) 이어지는 설명을 들어보자. “카스티야는 아메리카 정복으로 황금기를 누렸다. ……나중에는 나약해지고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카스티야의 그 유명한 인물 ‘이달고’들(하층귀족)은 극단적인 광기에 긍지를 갖고, 명예에 관심이 많고, 죽을 때까지 상대를 짓밟을 힘이 있지만 소소하면서 건설적인 것을 추진하는 데는 무능력하다. 그들에게 영웅적인 것은 우스꽝스러운 짓들을 벌이면서 잘났다고 우기는 아집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빛나는 과거를 향해 몸부림칠 뿐이다. 그들의 손은 오로지 무기를 쥐는 데만 쓸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더러워질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 다른 형태의 경험으로 산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니 묵인하지 못하고 근면한 것을 혐오한다. 그들은 번영을 추구하지만, 그들의 품위 있는 개념이 오히려 그들의 왕실로 하여금 무방비인 대륙을 약탈하거나 비굴한 아첨질에 나서도록 재촉한다. ……그 잘난 카스티야 사람들에게 일을 하는 것은 불명예고, 반대로 카탈루냐 사람들에게 일을 안 하는 것은 불명예다. 아직도 내 귀에는 아버지가 열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내뱉던 말이 쟁쟁하다. “손바닥에 못이 안 박힌 자를 믿어선 안 된다.””(170쪽) “1450년경에 두 왕국은 왕실 간의 혼인으로 왕좌를 통합했다. 하지만 양자의 통합은 누가 보더라도 나쁘게, 아주 나쁘게 끝장날 혼인 같았다. 내가 양자의 통합을 나쁜 혼인에 비유하는 이유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결혼한 부부의 어긋난 결말과 무척이나 유사하기 때문이다. 양자의 통합을 카탈루냐 사람들은 서로가 동등한 호혜의 통합으로 대했지만, 카스티야는 시간이 흐르면서 기본적인 통합의 원칙을 망각했던 것이다.”(167쪽) 에스파냐 왕위계승전쟁은 통합 왕국 에스파냐의 얼빠진 왕 카를로스 2세가 사망하면서 촉발된다. 유럽의 강력한 라이벌 가문인 부르봉가(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오스트리아)는 유럽의 세력권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각각 에스파냐의 황제 후계자를 지목하게 되고 이로부터 카탈루냐의 비극이 시작된다.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연합군을, 오스트리아와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이 동맹군을 결성하고서 에스파냐 전역에서 크고 작은 전쟁을 치르게 된다. 동맹국이 내세운 후계자 카를 6세가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1세의 뒤를 잇기 위해 비엔나로 떠나면서 동맹군은 와해되고, 카탈루냐는 고립무원의 처지에서 연합군의 가공할 공격을 받다가 1714년 바르셀로나의 함락을 끝으로 왕위계승전이 막을 내린다. 이때 바르셀로나에 쏟아부은 연합군의 포탄이 3만여 발이었다는 기록으로 볼 때 바르셀로나인들이 겪었을 참상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9월 11일을 카탈루냐인들이 지금도 ‘카날루냐의 날’로 기념하는 것에서도 그들의 트라우마가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둘. 정통 역사소설의 진화 가능성을 보여준 새로운 시도. 『빅투스』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긴 다리 수비리아’가 공병인 것은 매우 특이한 점이다. 일반적으로 전쟁을 다루는 역사소설이 포병이나 기병 등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 비하면, 『빅투스』는 처음부터 이야기의 틀을 다른 각도에서 꾸려나갈 채비를 한 셈이다. 공중폭격이나 미사일 등에 의한 원거리 타격을 주공으로 하는 현대전과 달리, 성채를 둘러싼 대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