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일본인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한국의 공연장이 떼창으로 가득 찰 때, 일본은 왜 기껏해야 조용히 박수만 칠까? 한국에는 온갖 의미의 다양한 욕이 존재하는 반면, 일본에는 왜 딱히 욕이랄 것이 없을까? 한국인들이 여럿이 어울리는 롤플레잉 게임(리그 오브 레전드 등)을 즐길 때, 일본인들은 왜 혼자서 하는 콘솔 게임(닌텐도 등)을 좋아할까? 한국에는 왜 프로불편러가 많을까? 일본인은 왜 빈집에 돌아와서도 인사를 할까?
가까운 것 빼면 거의 모든 게 다른 두 나라 한국과 일본은 놀랄 만큼 다른 삶의 양상을 보인다. 일본인들이 이세계(異世界)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속에서 갈등을 외면하고 환상의 세계로 도피할 때, 한국인들은 <오징어 게임> <미나리> 등을 통해 고통스러운 현실을 직시하고 ‘관계’에서 희망을 찾는다. 일본에서 ‘여자력’으로 무장한 소녀들이 귀엽고 순종적인 매력을 발산할 때, 한국에서는 <스우파(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의 쎈 언니들이 편견을 ‘찢고’ 무대를 휘어잡는다.
목소리가 큰 한국인 vs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일본인
이러한 차이는 어디에서 왔고, 또 어떤 미래로 이어질까? 같은 인종에 유교, 집단주의 문화 등을 공유하는 비슷한 사람들로 묶이기 쉽지만, 두 나라 사람들은 스스로를 바라보는 태도에서부터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한국인은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영향력을 미치려고 하는 존재’로 보는 반면, 일본인은 자신을 ‘다른 사람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116쪽)
한국인이 ‘이기고’ 싶어 게임을 잘하는 것(38쪽), 자신의 ‘주관적’ 친밀감을 바탕으로 정을 베풀고자 하는 것,(124쪽) 이래라저래라 참견하는 것이나(130쪽), 일본인이 주어진 사회적 역할에 부담을 느끼는 것,(357쪽) 되도록 은혜를 입지 않고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것(132쪽) 모두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한국에 유독 프로불편러들이 많은 것도 이와 관련 있다.(319쪽)
한국인은 일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 ‘억울함’이 쌓여 ‘화병’으로 표출되고,(173쪽) 일본인은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줄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여 대인공포증에 걸린다.(174쪽) 이러한 차이가 사회적으로 드러난 현상이 바로 최근 늘어나고 있는 ‘은둔형 외톨이’인 듯하다. 일본의 ‘히키코모리’는 일본 인구의 1%에 달하며, 일체의 사회활동을 거부하고 부모의 도움을 받아 살아간다. 반면 한국의 ‘자연인’은 세상일과 세상 사람들에게 얽매일 필요가 없는 곳으로 떠난다. 히키코모리가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안 하며 무력하게 지낸다면, 자연인은 산에서 자립하며 삶의 이유를 찾는다. 두 나라 사람들의 특성에서 이러한 차이의 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177쪽)
먹방의 나라 한국 vs 야동의 나라 일본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인 두 행위는 어떻게 두 나라를 대표하는 콘텐츠가 되었을까? ‘성진국’이라는 명성(?)까지 얻은 데 비해 성생활 만족도 지수는 꼴찌를 기록한 일본. 야동에는 ‘엿보기’라는 왜곡된 방식으로 타인과 소통하고자 하는 일본인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17쪽) 반면 수시로 건네는 “밥 한번 먹자”라는 인사처럼, ‘밥’은 한국에서 관계를 매개하는 중요한 상징이자 관심, 사랑의 표현이다. 먹방을 시청하며 소통하는 것은 관계에 대한 욕구가 가장 한국적으로 드러난 문화 현상이다.(23쪽)
이처럼 한국인과 일본인의 또 다른 차이는 ‘관계’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다. 한국인은 자신과 타인의 입장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고 여기며, 일본인은 자신을 타인과 명확히 구분되는 존재로 간주하고 서로 피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한다.(110쪽) 한국인이 여럿이 어울려 다양한 역할을 맡는 MMORPG(멀티 유저 다중 접속 롤플레잉 게임)을 즐기고, 일본인이 게임기와 일대일 플레이를 하는 방식의 콘솔 게임을 주로 하는 것도 이러한 태도와 연관된다.(36쪽)
한국인의 관심은 때로 상대방의 영역에 지나치게 깊게 들어가 ‘오지랖’ 문화를 형성하기도 한다. 대인 관계에 피로감을 느끼는 한국 젊은이들 중에는 이러한 문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남에게 폐 끼치지 않는 깔끔한 일본식 인간관계를 선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단편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다. 관심과 오지랖을 통해 한국인들이 당연한 듯 누리고 있는 정서적 지지가 이루어지고, 예의 바르게 보이는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심리적 압박을 겪는 것은 우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이기 때문이다.(110쪽)
치열한 현실을 마주하는 한국 vs 아름다운 세계에 갇혀 버린 일본
현실에 대한 태도에서도 두 나라의 차이가 뚜렷이 나타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한국의 드라마와 영화이다. 일본인이 애니메이션을 통해 환상의 세계를 보려 하는 반면, 한국인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현실 세계를 보려 한다고나 할까. 일본 애니메이션이 현실에 직접 개입하는 대신 우주나 미래 등 판타지 세계를 배경 삼아 ‘비유적으로’ 현실 문제를 그려 낸다면 한국은 일제강점기, 6.25, 군사정권, 민주화 운동 등 가슴 아픈 역사도 거침없이 마주한다.(49쪽) 괴물이나 귀신, 외계인이 등장해도 집세 걱정하고 월급 걱정하며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니 너무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일 정도다.
반면 ‘이세계’를 배경으로 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속에서는 어두운 현실은 찾아보기 힘들다. 동화 같은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언성을 높이거나 얼굴 붉히는 일 없이 아름답게 갈등이 해결된다.(159쪽) <원피스>나 <포켓 몬스터> 등에서 나타나듯 친구끼리 폐쇄적인 집단을 이루며, 언제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한다. 칸 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어느 가족>이 일본의 어두운 면을 들춰 냈다는 이유로 냉담한 반응을 얻은 것을 보면,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을 애써 보지 않으려는 절박함마저 느껴지는 듯하다.(54쪽)
골든 크로스는 이미 시작됐다
한국의 위상이 달라졌다. 빌보드 1위를 석권한 BTS부터 한국적인 콘텐츠로 승부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기생충>, 넷플릭스 전세계 1위에 오른 <오징어 게임> 등 당장 눈에 띄는 지표들뿐 아니라 한류에 힘입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8쪽) “가위바위보를 해도 일본은 이겨야 한다”는 말을 농담처럼 내뱉던 한국은 2019년 한국에 대한 일본의 갑작스러운 무역 제재에도 놀랄 만큼 타격을 입지 않았고, 코로나 팬데믹에도 K-방역이라는 빠른 대처로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오랫동안 ‘넘사벽’이었던 일본은 더 이상 없다. 많은 분야에서 한국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고 심지어 어떤 분야는 일본을 넘어서고 있다.(10쪽)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했을까? 답은 문화에 있다. 여러 권의 저서를 펴내고 강연 활동을 지속하며 오랜 기간 ‘문화’에 천착해 온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문화가 한 나라와 그 구성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의 눈앞에 낱낱이 펼쳐 보인다.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아 온 한국과 일본, 두 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그야말로 저자가 해 온 연구의 최정점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곳곳에 담긴 문화심리학 이론과 학술적으로 숙성된 견해는 단순히 두 나라를 비교하는 것을 넘어서서 문화심리학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다.
이 책은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사람들이 하는 수많은 행동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그 출발점을 밝힌다. 겉으로 드러난 현상과 행동에 주목하다 보면 끊임없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결론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하지만 그 아래 깊고도 단단하게 자리잡은 문화를 되짚어 가면 엉망진창으로 얽힌 오해의 실타래가 한순간에 풀어지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