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박물관과 만화의 유쾌한 만남
루브르 박물관과 프랑스 만화전문출판사 퓌튀로폴리스의 기획으로 열화당에서 선보이기 시작한 ‘루브르 만화 컬렉션’. 첫째 권 『빙하시대(Periode glaciaire)』를 시작으로 『어느 박물관의 지하(Les sous-sols du Revolu)』와 『미지의 시간 속으로(Aux heures impaires)』에 이어 그 네번째 권인 『루브르의 하늘(Le ciel au-dessus du Louvre)』을 선보인다. 가장 고전적인 예술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가장 현대적인 예술매체인 만화와 손잡고 선보이기 시작한 이 시리즈는, 지금까지 정형화되고 고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 왔던 ‘박물관’을 배경으로 ‘예술’ ‘예술가’ ‘예술작품’ 등의 소재를 만화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맡김으로써, 예술에 관한 여러 담론들을 신선한 이야기로 대중과 함께 공감해 보자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혁명에 부역하는 예술, 예술을 등에 업은 혁명
『루브르의 하늘』은 루브르가 박물관으로 탄생되기 직전의 급박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열혈 자코뱅 당원이었던 화가 자크-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와 프랑스 혁명의 중심에 있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 그리고 그들 주변을 맴돌며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지는 쥘 스턴(Jules Stern)이라는 카자흐스탄 출신의 한 소년이 있다. 로베스피에르는 혁명 정신, 즉 ‘최고 존재(l’Etre supreme)’의 초상화를 그림으로 그려 줄 것을 다비드에게 주문한다. 혁명세력이 극복하고자 했던 기독교적 신은 아니면서 공화국을 이끌어 갈 이상을 이미지화하는, 로베스피에르의 집념어린 이 작업은 다비드에게는 결코 표현하기 어려운 불가능한 임무가 된다. 그리고 ‘최고 존재’로서의 공화국 정신을 구현하려는 로베스피에르의 강박관념은 자신을 더욱 단호하고 편협한 사람으로 만들어 피의 향연은 그칠 줄을 모른다.
이들을 중심으로 역사만화의 외양 아래 진행되는 이 이야기에는 미학의 본질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과거 귀족문화의 지배적 양식이었던 로코코의 대표적 화가 장-오노레 프라고나르(Jean-Honore Fragonard)가 의미심장하게 등장하는 장면이 세 번 나오는데, 특히 마지막 등장을 주목해 봐야 한다. 다비드가 최고 존재를 그리기 위한 모델이었던 쥘 스턴의 이미 잘려 나간 목과 몸을 봉합하고서 <조제프 바라의 죽음(Mort de Joseph Bara)>에 한창 마지막 손질을 가하고 있을 때이다. 살아 있을 때 가능하지 않았던 포즈로 쥘 스턴의 몸을 고정한 채 다비드는 미래를 위한 순교자 바라를 그리고 있고, 이때 지나가던 프라고나르는 현대가 시작됨을 느낀다. 말하자면 과거의 예술이 충실히 답습했던 신화적이고 알레고리적인 틀에서 회화가 과감히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대상이 화폭에 담겨지는 그 순간, 회화는 정치와 종교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된다. 이는 ‘신인류’의 탄생과도 같다.
시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살아 숨쉬는 존재, 박물관
『루브르의 하늘』은 자신의 정치가 “덕이 없는 공포정치가 아니라 덕에 토대를 둔 공포정치”이므로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던 로베스피에르가 결국 단두대에서 사라져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따라간다. 그리고 그와는 대조적으로, 로베스피에르에 대한 충성 서약을 가볍게 배반하고 미래를 이끌어 갈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나폴레옹으로 형상화하여 그리는 다비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의 공저자인 베르나르 이슬레르와 장-클로드 카리에르는 이러한 결말을 통해 정치와 예술 사이에서 고뇌하는 예술가의 미묘한 상황을 잘 보여준다.
총 19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속도감 있게 혁명기를 그리면서도 인상적인 단면을 적절히 배치하여, 혼란스럽게 돌아가던 격동기를 독자들이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또한 로베스피에르와 다비드 이외에 마라, 쿠통, 바스를 비롯한 혁명기의 주요 인물들과 드루에, 그뢰즈, 지로데 등과 같은 예술가들을 등장시켜 사실성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자칫 무거운 소재일 수 있는 혁명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독자들에게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이유는, 만화책이라는 매체의 특성도 있겠지만 이 책이 결국은 지금도 우리 곁에 존재하는 박물관으로서의 ‘루브르’를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앙시앵 레짐(Ancien Regime, 구체제)의 심장부였던 루브르가 민중을 위한 예술의 전당 루브르 박물관으로 전환되었듯, 새로운 역사를 꿈꾸었던 정치가는 사라지고 미래에 대한 꿈은 예술작품으로 남아 지금의 관객과 끊임없이 교감을 하게 된다. 이처럼 루브르 박물관에서 관객과 예술작품의 소통이 이루어질 때, 역사는 살아 숨쉬는 존재로서 현현(顯現)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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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만화 컬렉션 시리즈 4권. 정형화되고 고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 왔던 ‘박물관’을 배경으로 ‘예술’ ‘예술가’ ‘예술작품’ 등의 소재를 만화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맡김으로써, 예술에 관한 여러 담론들을 신선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4권은 루브르가 박물관으로 탄생되기 직전의 급박한 정치적인 상황에서 시작된다. 속도감 있게 혁명기를 그리면서도 인상적인 단면을 적절히 배치하여, 혼란스럽게 돌아가던 격동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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