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아름답게 연주하라”
피아니스트 시모어 번스타인의 아흔 해 인생과 철학
“무대 공포증을 없앨 수는 없어요”
에단 호크와의 만남과 우정, 영화의 제작과 성공
인터뷰는 종교학자 앤드루 하비가 ‘에단 호크와의 우정’을 묻는 것에서 시작한다. 영화배우와 피아니스트의 만남은 기이했다. 에단 호크는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가 우연히 시모어 번스타인을 알게 된다. ‘무대 공포증’ ‘예술과 삶의 분열’ 등 예술가로서 고민이 한창이던 그는 눈앞의 피아니스트가 자신의 인생 선배이자 소울메이트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내 그는 노장 피아니스트가 걸어온 길과 그의 인생철학을 담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시모어 번스타인은 인터뷰를 통해 영화가 자신의 인생에 끼친 영향,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것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 재능이 있는 일에 꺼지지 않는 성실함과 열정으로 매진하는 것이 삶이라고 믿는다. 그는 무대 공포증을 갖고 있던 에단 호크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충고한다. 답은 간단하다. 무대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연주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연습하는 길뿐이라는 것이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으니까요. 모든 연주자가 공연 전에 어느 정도 불안에 시달립니다. 모두가 심각하게 겪는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연주자들은 무대 공포증에 대해 압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죠? 이겨내려면 열심히 연습해서 무대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연주를 하도록 하면 됩니다. 이걸 없앨 수는 없어요. 자신이 하는 일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러분은 초인적인 무엇을 해야 해요.”
―33쪽
“음악이 나의 구원자였습니다”
인정받지 못하던 유년기와 한국전쟁 참전 시절
그의 유년 시절은 권위적인 아버지와의 투쟁이었다. 예술가적 기질을 이해받지 못한 채 유대인으로서 종교 활동만을 강요받던 유년 시절은 지금도 상처로 남아 있다. 아버지가 음악 활동을 이해해주지 않을수록 그는 피아노에 매달렸다. 훗날 아버지는 연주회를 후원하며 아들을 지지해주지만 관계의 틈은 쉽게 메워지지 않았다. 그는 용서란 말을 쉽게 언급하지 않는다. 상처를 승화하지 않고 거리를 두고 직시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바쳤다고 고백한다.
부끄럽게 들리지만 아버지와 랍비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나는 죄의식을 느꼈죠. 부모도 어떻게 보면 교사이고, 세상에는 나쁜 피아노 교사보다 나쁜 부모가 훨씬 더 많습니다.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어 아버지와 몇몇 피아노 선생이 내게 가르려준 것을 잊으려고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나쁜 피아노 선생은 물론 바꾸면 그만이죠. 그러나 부모와 아이는 생물학적으로 연계되어 있어요. 부모와 아이가 서로 의절할 수는 있겠지만, 생물학적 연은 끊을 수가 없습니다.
―122쪽
부모가 우리에게 한 일은 우리 영혼에 흉터로 새겨져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아요. 영원히 그곳에 남죠. 나는 흉터를 치료하기 위해 아버지가 내게 한 일을 의도적으로 승화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다시 말해 기억을 무의식으로 치워버리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나를 무의식적으로 괴롭힐 테니까요.
―142쪽
그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1951년 한국전쟁에 참전해 최전방을 돌며 백여 차례를 공연했고, 당시 사령관이었던 제임스 밴 플리트 및 유엔의 장군들을 모아놓고 연주하기도 했다. 2016년엔 참전용사 자격으로 40여 년 만에 방한해 전우들을 위해 공연했다.
오전 5시 반, 배가 인천항으로 천천히 들어설 때 우리는 갑판에 정렬했습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에 들어선다는 생각에 다들 겁에 질렸습니다. 연주회 전에 긴장하는 것은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군,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더더욱 서러운 것은 그날 1951년 4월 24일이 내 스물네 번째 생일이었다는 겁니다.
한창 전쟁 중이었지만 대단히 운 좋게도 나는 전투를 피했습니다. 전선에서 막 싸우고 돌아온 전사들과 장교들을 위해 음악회를 열라는 요청을 받았던 겁니다. 케네스와 나는 전선을 돌며 유엔 군대를 위해 100회가 넘는 공연을 했습니다. 서울 교향악단과도 연주했고, 또한 서울의 사령관 사무실에서 제임스 A. 밴 플리트 사령관과 유엔의 모든 장군들을 모아놓고 연주했습니다.
―110~112쪽
“훈련을 포기할 것인가 묵묵히 참고 배울 것인가”
가르치고 배우며 함께 성장하다
시모어 번스타인은 알렉산드르 브라일로프스키, 클리퍼드 커즌, 나디아 불랑제 등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인터뷰는 애증이 교차하는 사제지간의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피아니스트로서 경력을 쌓아가던 젊은 시절의 시모어 번스타인은 퐁텐블로에서 영국의 명피아니스트 클리퍼드 커즌에게 강습을 받게 되고 이를 계기로 그의 제자가 된다. 그러나 예민하고 날카로운 스승과의 관계는 쉽지 않았다. 심리 상담을 받으며 훈련을 포기할지 계속할지를 고민하던 시모어 번스타인은 결국 후자를 택했고, 훗날 클리퍼드 커즌은 자신의 독주회 연주 방향을 맡기고 논의할 정도로 번스타인을 신뢰하게 된다. 번스타인 역시 영국 왕실에 편지를 써 자신의 스승이 기사 작위를 받을 만한 사람임을 역설했다는 에피소드도 담겨 있다.
“그와 함께 지내는 일은 개인적인 이유로 무척이나 어려웠어요. 문제가 아주 심각해서 심리학자 친구에게 상담을 받기도 했지요. “나는 그와의 관계를 끊는 대신 최고의 음악적 훈련을 받는 것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묵묵히 참고 이 사람에게서 음악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것을 배우느냐,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해.” 나는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클리퍼드에게서 받는 음악적 영감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무척 힘든 정신적 문제들을 참아야 했습니다.
―257쪽
“예술적 성취를 일상의 삶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술과 삶의 통합을 향한 성찰과 열정, 인내
결국 시작부터 끝까지 책을 관통하는 큰 주제는 바로 ‘삶과 예술의 관계’다. 우리의 인생이 음악을 연주하는 데 영향을 끼치듯, 음악도 우리의 인생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그는 연주자 시모어와 인간 시모어 사이에는 차이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렌 굴드나 자신의 스승인 클리퍼드 커즌 등, 직업적으로는 위대했으나 삶은 불행했던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예술과 일상의 조화를 강조한다. 인생의 의미는 예술과 삶의 통합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 글렌 굴드의 신경증적 성격이 그의 연주에 나쁜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면 그의 신경증적 연주가 성격에 나쁜 영향을 미쳤는지 이야기해봅시다. 어쩌면 둘은 나란히 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클리퍼드 커즌)는 최고의 위치에 오른 예술가이면서 인간적으로는 망가진 사람입니다.
나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긍정적 요소가 개인적인 삶과 통합되는 과정이 항상 자연스럽게 일어난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의식적으로 이 과정에 주목해야 하고, 어렵게 얻은 예술적 성취를 일상의 삶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여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며, 클리퍼드 커즌 같은 예술가들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습니다.
―271~272쪽
인터뷰어인 종교학자 앤드루 하비는 지금의 사회에 그런 삶과 예술의 통합이 가능한지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대한 번스타인의 태도는 단호하고도 분명하다.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 작품과 예술가를 분리해서 받아들이는 데 익숙한 오늘날의 사람들에게 번스타인은 감성과 지성, 영혼과 신체가 통합되어야 좋은 음악이 나오며, 이런 통합의 과정이 우리의 삶을 보다 건강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