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운동의 ‘살아 있는 역사’,
가이 스탠딩이 말하는 기본소득의 모든 것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는 2017년 모교인 하버드대학 졸업식 축사를 통해 “누구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할 수 있도록 완충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보편적 기본소득 같은 아이디어를 연구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스위스·핀란드·인도·남아프리카공화국·캐나다 등의 국가는 물론이고, 클라우스 슈바프와 버락 오바마 같은 오피니언 리더, 일론 머스크와 에릭 슈미트 같은 유명 벤처 자본가까지 가세해 ‘기본소득’(basic income)에 눈을 돌리고 있다. “현재의 경제정책과 사회정책이 지탱할 수 없는 불평등과 불의를 낳는다”(본문 13면)는 데 대한 깊은 공감, 기술혁명과 ‘일자리 없는 미래’에 대한 우려 속에서 인류 생존의 실마리를 기본소득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책 『기본소득: 일과 삶의 새로운 패러다임』은 ‘모두에게, 무조건,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돈’이 경제·빈곤·일/노동에 미치는 효과가 무엇이고 이에 대한 반대논리를 어떻게 반박할 수 있는지, 기본소득을 시범적으로 실시한 결과가 어떠한지를 조목조목 짚으며, 오늘날 기본소득이 긴급히 요청되는 까닭을 간명하고 힘있게 전한다. 기본소득 운동의 최고 권위자인 저자 가이 스탠딩(Guy Standing)은 기본소득이 빈곤을 없애거나 다른 모든 복지제도를 대체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정의·자유·보장을 드높이고 더 큰 사회변화를 추동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탁월한 논리로 설파한다.
인류의 오래된 실험, 기본소득
: 『유토피아』부터 「새로운 인권 헌장」까지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에 관해 정통하며 정직한 독본을 가이 스탠딩보다 더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 로빈 체이스 (집카Zipcar 공동창립자)
이제껏 쓰인 기본소득에 관한 책 가운데 가장 종합적인 길잡이. 정의롭고 경제적으로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로드맵을 제공한다. ― 앤디 스턴 (미국 서비스노동조합SEIU 전 위원장)
기본소득이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신적 아이디어로 각광받는 등 활발한 논의와 실험의 장으로 오기까지는, 기본소득 운동의 기수라 할 수 있는 이 책의 저자 가이 스탠딩의 공이 컸다. 가이 스탠딩은 세계적 경제학자이자 런던대학 SOAS 교수로서, 오늘날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고용·노동 조건에 놓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 개념을 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1986년 기본소득유럽네트워크(현재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 이하 BIEN)를 공동 창립하고 30여년간 기본소득 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왔으며, 현재 BIEN 명예공동의장을 맡고 있다. 2016년 BIEN 서울 대회, 2017년 아시아미래포럼의 연사로 참여해 한국에도 잘 알려졌다.
가이 스탠딩과 그 동료들이 개발한 ‘모두에게 권리로서 지급되는 돈’에 관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비롯했을까? 멀게는 고대 그리스의 에피알테스와 페리클레스가 평민의 정치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고안한 민주주의적 개혁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이들의 시도가 좌절된 뒤 기본소득이 있는 사회상을 처음 그려낸 사람은 토머스 모어였다. 그가 쓴 소설 『유토피아』(1516)의 한 등장인물은 ‘도둑질이 음식을 얻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어떤 처벌로도 도둑질은 멎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모든 사람에게 어느정도 생활수단을 줌으로써 “도둑으로 시작해 시체로 끝나는 끔찍한 필연성 아래에 누구도 있지 않게 하는 것”이 처벌보다 훨씬 나은 방식이라고 본다. 이 말에서도 드러나듯 누구나 존엄한 생존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은, 저자 가이 스탠딩이 참여해 유엔에서 작성한 「새로운 인권 헌장」(2004)으로 이어지고 있다.(본문 26~29, 207면)
기본소득 개념에서 ‘기본’이라는 말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의 극단적인 상황에서 생존을 가능케 하는 금액을 나타내며, 기본소득 옹호자들은 이 금액이 보편적·개별적·무조건적·정기적으로 지급돼야 한다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간단한 생각이지만 여기엔 간단치 않은 문제가 있다. 과연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한가. 그리고 정당한가.
기본소득에 대한 흔한 반대와 명쾌한 재반박
: 빌 게이츠에게도 기본소득을 주는 이유
가이 스탠딩은 보편적 기본소득에 대한 흔한 반대논리는 물론, 기본소득으로 이끄는 요인과 선택지를 사려 깊게 검토한다. 인간이 중심이 되어 포괄적인 미래를 만들고자 하는 데 관심있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책이다.
―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 창립자 겸 집행 의장, 『제4차 산업혁명』 저자)
기본소득을 둘러싼 흔한 선입견이 있다. 기본소득이 실현 불가능하며 유토피아적이라는(유토피아의 원뜻은 ‘아무데도 없는 곳’이다) 것부터 기본소득이 포퓰리즘적인 정치에 놀아나리라는 주장까지 다양한데,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준다’는 말을 들었을 때 누구나 머릿속에 떠올릴 법한 의문일 것이다. 이 책 6장 「표준적인 반대」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주요 반대논리를 열세가지로 압축하고, 이를 간단하지만 명쾌한 논리로 다시 반박한다. 특히 거의 반사적으로 “빈민만이 아니라 부자에게도 돈을 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는 반대논리가 있다. ‘빌 게이츠에게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지’를 누군가가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부가 우리 스스로 일군 것이라기보다 과거 세대의 노력과 성취에서 상당 부분 물려받은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공유재와 부의 몫은 권리로서 모두에게 혹은 모든 시민에게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본문 145면) 그는 한때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이었지만 지금은 쇠락한 도시 미들스브러의 풍경을 돌아보며 이렇게 반문한다. “왜 지금의 부유한 사람들이 이 나라의 부와 힘을 처음 일궈낸 이들의 후손보다 훨씬 더 안락하고 안정적으로 살아야 하는가?”(본문 51면)
부자든 빈민이든 모두에게 똑같이 기본소득이 지급된다 하더라도 그렇게 지급된 몫은 상대적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값어치가 더 크다. 또한 빈민만을 타깃으로 하는 복지서비스와 보편적 기본소득에 드는 행정비용을 비교할 때 후자가 훨씬 더 경제적이며, 부유층의 소득을 세금으로 환수해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충당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여러 근거가 있다.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는 나라는 없을 것’이라는 반대논리는 기존 복지제도와 기본소득 제도의 비용 계산을 통해 반박될 수 있으며, 이 책에서는 알래스카 영구기금이나 노르웨이 연금기금 등을 참고해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할 여러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눈여겨볼 것은 ‘기본소득이 감당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 자체가 실증적이기보다 매우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불평등은 급속하게 커지고 있는데, 엘리트, 금권정치가, 금권정치를 뒷받침하는 기업이 벌어들이는 지대소득은 어마어마하게 늘고 있다. 소득을 낳는 모든 종류의 재산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져가는 이 막대한 지대소득을 단순히 사회가 가지는 것만으로도 기본소득 기금의 많은 부분, 심지어 전부를 감당할 수 있다. 사회서비스를 없애거나 소득세율을 급격하게 올려야만 기본소득이 감당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의도적이든 순진하든 간에 본질을 호도하고 있는 것이다.”(본문 185~86면)
자본과 노동 모두 주목하는 기본소득
: 노동과 일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
기본소득으로 처음 구매한 게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시간을 샀습니다.” (본문 313면)
최근 마크 저커버그 같은 실리콘밸리 영재들과 벤처 자본가들이 기본소득을 지지하고 나섰고,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기업 Y컴비네이터는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를 대상으로 기본소득 파일럿(시범 사업)을 준비해 2019년부터 실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