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잘 정돈된 죽음, 좋은 마침표를 찍다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켜내려면
죽음과 멀리 떨어진 지금, 마지막을 예비해야 한다
‘좋은 죽음’은 선택할 수 있다
대신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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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 마지막의 마지막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아니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을 생각해본 적은? 먼 훗날의 일이니까, 또 무섭고 불길한 일이니까 미뤄두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눈앞에 닥친 일이 산더미라 그럴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 《안녕한 죽음》의 저자 구사카베 요는 그 마지막을 ‘지금’ 생각해놓지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이야기한다.
죽음은 탄생과 함께 생의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탄생이 지켜보는 이에게 벅찬 기쁨을 주는 것처럼, 죽음 역시 지켜보는 이에게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선사한다. 누군가의 삶이 끝나는 순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사람은 실존적인 공포와 마주한다. 나도 언젠가는 죽음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진실을 목도하는 과정이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는 슬픔, 이제껏 이뤄놓은 나의 노력과 업적을 허망하게 모두 내려놓고 떠나야 한다는 아쉬움, 다시는 누군가와도 감정을 나눌 수 없다는 외로움, 무엇보다 나라는 존재가 사라진다는 실존적 공포가 한꺼번에 몰아치는 순간이 죽음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외면하려 한다. 의료기술의 발전에 기대면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자위하면서.
텔레비전만 틀면 ‘백세시대, 활기차고 건강한 노년’ 같은 번지르르한 말이 넘쳐나지만, 말 뒤에 숨은 진실은 은폐되고 있다. 백세시대는 백 세까지 건강하게 산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병 때문에 끔찍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백 세까지 죽지도 못하고 계속 고통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즉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죽음과 마주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다. 우리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 오랫동안 가가호호 방문하여 재택의료와 임종케어를 시행하면서 수많은 환자의 마지막을 돌보았던 저자의 이야기라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병원에서 의료의 힘을 빌려 죽음과 싸우는 것은 ‘좋은 마침표’가 될 수 없다.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죽음 앞에 의료는 무력하기만 하다. 죽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 어떤 죽음을 선택할지 고민하고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나는 어디서, 어떻게 죽을 것인지 말이다. 《안녕한 죽음》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저마다의 답을 찾으라 일깨우는 책이다.
죽음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그리고 안녕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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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죽음이 등장한다. 90세까지 건강하게 살던 남자가 오랜만에 골프를 치러가서 좋은 스코어를 내고 돌아와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즐긴 후, 느긋하게 목욕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 자신도 모르게 숨을 거두는 죽음이다. 하지만 이런 죽음이 모두에게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매우 드물다. 반대편에는 누구나 손사래를 치는 죽음도 있다. 인공호흡기와 혈액투석기, 정맥주사, 위루줄, 소변줄 등 각종 연명장치와 튜브가 주렁주렁 달린 채 죽지도 못하고 살아도 산 게 아닌 상태로 오래도록 고통받다가 생의 마지막을 비참하게 마무리하는 경우다. 정말 이런 죽음은 누구라도 피하고 싶을 듯싶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비참한 죽음을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본다.
과거(불과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에는 대부분 집에서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 죽음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객지에서 외로이 죽는 것을 불쌍하다고 여겨 ‘객사(客死)’라는 말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당시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누웠던 침상에서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 시절 누군가의 죽음은 모두의 몫이었다. 하지만 의학의 발달과 함께 오늘날의 죽음은 병원으로 숨어들었다. 대부분 병원에서 각종 의료 장비와 튜브를 달고 외로이 생을 마감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죽음에 순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호흡이 어려워 숨을 헐떡이는 가족 곁에서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다. 그러나 받아들여야 한다. 자연스러운 죽음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임종이 가까웠을 때 일어날 일들을 설명한다.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마음의 준비를 해놓지 않으면 환자가 식욕이 없어졌을 때 가족들이 어떻게든 정맥주사를 놓아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 단계에서는 정맥주사를 맞아도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심장과 신장에 부담을 주고 폐에도 물이 고여(즉, 서서히 익사하는 것과 같음) 환자를 괴롭힐 뿐이다. 이런 내용을 미리 설명해두면 식욕이 없어져도 가족들이 차분하게 받아들인다. 산소마스크 역시 마찬가지인데, 죽기 전이라면 답답하고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실질적인 의미는 거의 없고, 단순히 가족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퍼포먼스에 불과하다.
_ (68~9쪽)
의학기술의 발달로, 고칠 수 있는 병이 늘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의사도 죽음까지 막을 수는 없다. 탄생처럼 죽음도 자연의 섭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죽음과 싸우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순간에는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죽음의 다양한 양상들을 미리 알아두고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사람 손에 나의 존엄과 마지막을 내맡겨야 할 수도 있다.
죽음을 이야기할수록
삶은 더욱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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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구사카베 요는 다양한 임종 현장을 목격해온 의사이자, 동시에 인간의 감정과 의료계의 그늘을 섬세하게 포착해온 소설가다. 그는 의사로서, 소설가로서 이중의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보며, 현실과 감정을 모두 꿰뚫는 진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오히려 그는 ‘죽음을 정확히 알고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지혜는 곧 삶을 더욱 찬란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기술이다. 《안녕한 죽음》에서 저자는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 삶 자체를 더욱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드는 필수적인 단계임을 강조한다.
그는 책에서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가족과의 구체적인 임종 계획 수립, 집에서의 임종 준비 등 실제적이고 실천 가능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또 외무성 재외공관 의무관으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다양한 국가에서의 임종 사례와 문화를 폭넓게 소개하며 죽음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도 제공한다. 오스트리아와 사우디아라비아, 파푸아뉴기니에서의 경험을 통해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단순히 임종을 맞이하는 준비가 아니라 삶의 남은 시간을 더욱 충실하고 깊이 있게 살아가도록 돕는 과정임을 분명히 한다.
삶과 죽음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연결된 하나의 흐름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사례들과 함께 죽음의 진면목을 보여줌으로써 이 책은 독자들이 막연한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삶을 더욱 적극적이고 의미 있게 살아가도록 격려한다. 두려움을 넘어 죽음을 직시하고 준비한 사람만이 남은 삶을 진정으로 빛나고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실천 의지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함께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는 부분에 각주를 추가했다.
번역자의 의료 및 사회복지 분야의 전문지식과 감수자의 의학 전문지식에 현장의 사실과 의견을 반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