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중궁궐 깊숙한 곳
비밀을 안고 사는 내시와 궁녀들의 실제이야기!
현존하는 내시와 궁녀의 유적 소개!
내시 신도비 내용 최초 공개!
김처선을 능가하는 충신 내시 김순손
왕의 경연 중에 코를 골며 잔 김자원!
조선 내시들은 마늘을 먹을 수 없었다
베일에 쌓인 내시 시술과정 공개!
여의도 샛강에 내시를 양산하던 시술소가 있었다!
궁중의 은밀한 존재- 내시와 궁녀
요즘 내시를 주인공으로 한 사극 드라마가 방영되고, 궁녀 관련 영화가 나오는 등 어느 때보다 내시와 궁녀에 대한 관심도가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의 세계는 지금까지 역사적 조명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것은 자료의 절대적인 빈곤과 이 방면의 연구가 빈약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05년 출간된《내시와 궁녀》는 척박했던 이 분야에 소외되었던 그들의 역사를 밝혀주는 데 나름대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저자 박상진 씨는 책을 낸 후 2년 동안 내시와 궁녀의 자료와 유적을 찾아 도서관으로 혹은 산야로 헤매고 다녔다고 회고하면서, 그동안의 연구성과와 축적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개정증보판을 출간하게 되었다.
《내시와 궁녀, 비밀을 묻다》는 구중궁궐 깊숙한 곳에서 왕의 수족과 그림자가 되어 한 많은 생을 살아야만 했던 내시와 궁녀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지금 시기적으로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데 중점을 두었고, 다른 책에선 다루지 않은 내시와 궁녀의 비문과 역대 내시교관 명단을 부록에 추가했다. 여기에 좀더 다양한 사진과 일화 등 베일에 쌓여 있던 흥미로운 내용을 대폭 추가했다. 특히 내시가 되는 과정과 그들의 결혼생활, 묘지, 일화와 함께 궁녀의 유래, 출궁과 죽음, 궁녀의 선발과 입궁 과정, 등 그들의 삶을 빠짐없이 복원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나라를 쥐락펴락했던 숨은 권력자들과 왕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버리고 희생한 내시와 궁녀들의 실제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 것이다.
내시들은 어디에서 살았으며, 어느 곳에 묻혔을까?
내시들은 오늘날의 종로구 효자동?봉익동?운니동 일대?은평구 신사동?응암동 일대?서대문구 연희동?가좌동 일대 등 수도권 전역에 거주했다. 현재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에는 아직까지도 선조조 내시 김계환의 14대손인 유충현 씨가 선영을 돌보며 살고 있다.
흔히 내시들은 궁 안에서만 살고 결혼이나 자식을 두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오늘날의 효자동인 궁 밖 준수방에 내시부가 위치에 있었다. 효자동은 본래 내시들의 별칭인 화화자가 살던 동네라 해서 화자동이라 했던 것인데 뒤에 음이 변해서 효자동이 되었다.
내시들의 묘는 서울 은평구 진관내?외동, 도봉구 쌍문동, 노원구 상계동, 중랑구 신내동은 물론 고양?양주?남양주?파주 심지어 평안남도 강동, 경상북도 풍기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국에 산재해 있다. 이 책은《내반원기》《한성부 북부장 호적》《양세계보》를 참고로 하여 내시의 거주지역과 묘비에 써 있는 글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내시와 궁녀들의 삶은 어떠했을까?
고려시대 중엽 이후 조선 초기까지는 많은 내시와 궁녀들이 중국 조정에 들어가 봉사했다. 그들 중에는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순제의 부인이 된 기황후가 있고, 승상을 마음대로 부릴 정도의 권세를 가진 고용보 같은 내시와 충선왕을 귀양 보낸 임빠이앤투그스가 있다. 그들은 중국 조정의 배경을 이용하여 자신이 태어난 고을을 승격시키는가 하면, 공신이 되어 군으로 봉군되는 경우도 흔했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15명이 한꺼번에 군으로 봉해지기까지 했다.
조선시대에는 유전을 답사한 내시 이효지를 비롯하여, 신분을 속이고 무과에 급제한 내시 김윤문, 김처선 못지않게 바른말을 아뢰고 죽음을 당함으로써 자신의 직무를 다한 김순손이 있다.
한편, 궁녀는 죽기 전에는 궁을 나갈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는 퇴직한 궁녀들이 살았던 궁말이란 지명이 남아 있고, 진관외동에는 인조 때인 13세에 궁녀가 돼 40여 년간 4명의 임금을 모시고 숙종조에 죽은 임상궁과 상궁 김해김씨의 묘와 보모상궁 김씨의 묘비가 남아 있다.
조선조 마지막 궁녀인 성옥염 상궁은 죽기 전 무의탁 노인복지시설인 서울시 노원구 중계사회복지관에 머물렀는데, 그녀가 남긴 것은 몸뻬 두 벌, 양말 등 내의 몇 벌, 그리고 2만 3,000원이 든 낡은 지갑만을 남기고 자신이 모시던 윤황후의 곁으로 떠났다.
이처럼 내시와 궁녀는 구중궁궐의 숨은 권력자이면서 동시에 왕의 수족으로 평생 육체적인 결함과 마음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다. 이 책은 그동안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내시와 궁녀들의 오해를 풀어주고, 그들이 역사에 남긴 흔적과 현재 어떤 모습으로 조명 받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북한산 내시 묘역은 최고?최대-서울 진관내동 일대 집단 묘역 발견
저자가 최초로 발견한 서울 북한산 자락의 내시 집단 묘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도 크며 보존상태가 양호한 조선 시대 최대의 묘다. 조선시대 내시 집단 묘역이 조성돼 있는 곳은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199 중골 마을로 북한산 의상봉 등산의 기점이 되는 백화산 인근이다. 이곳에는 내시파중 이사문을 파조로 하는 이사문공파의 내시 분묘 45기가 모여 있다. 가장 오래된 묘는 정2품 품계인 자헌대부로 승전관을 지낸 김충영金忠英의 묘다.
이곳에 현재 남아 있는 묘 가운데 비석이나 상석에 관직이 기록된 이가 모두 14명이다. 이중 내시부 최고 관직인 종2품 상선에 오른 이가 박황朴滉, 임성익林成翼, 김성휘金成輝, 박민채朴敏采, 오준겸吳浚謙 등 5명에 달한다.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내시 묘역이 확인된 만큼 정부에서 하루빨리 사적으로 지정, 보호해야 한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