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인간, 그리고 기후 변화
기후 변화는 2000년대 들어 가장 첨예한 환경 문제로 대두했다. 그것은 바로 인류의 생존 문제와 직결될 만큼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후 변화라 함은 지구 온난화를 의미하며,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인간의 활동으로 말미암은 기온 상승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 활동 가운데 무엇이 기온 상승을 야기했으며 그것이 가져온 문제가 무엇인가? 물론 우리는 그것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 있고, 수많은 책도 출간되어 있다. 그런데 무슨 책이 또 필요한가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기존의 책들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데, 훨씬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문제에서 접근한다. 흔히 지구 온난화는 최근 200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알고 있다. 즉 산업혁명 이후에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배출이 급격하게 늘어 기온이 상승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인류가 기후를 통제하기 이전에는 자연이 지구 기후를 제어했으며, 그 이후 인간이 지구 기후 통제에 조금씩 개입하기 시작해 산업혁명 이후 비로소 인간이 통제권을 가지게 되었음을 시대순으로 잘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은 대부분 오늘날처럼 불꽃 튀는 정치적 설전이나 방송 토론의 대상으로 떠올랐다가 몇 년 뒤 흐지부지 잊히는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다. 이 책이 주력하는 것은 우리가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이다”라고 밝히면서 이 책을 시작한다. 책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인류와 인류의 조상들이 지구상에서 살았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기후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수적으로도 얼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식량과 물을 찾아 쉴 새 없이 여기저기 옮겨 다닌 우리의 석기시대 선조들은 수백만 년 동안 지구 풍경에 영구적인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기나긴 지질시대에 걸쳐 기후는 주로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 궤도의 미세한 변화라는 자연적인 이유 탓에 달라졌다. 자연이 기후를 통제했다.
그러나 약 1만 2000년 전 농업이 도입된 뒤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지역 저 지역 떠돌아다니던 인류는 마침내 처음으로 작물을 기르는 논밭 옆에서 정착생활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점차 좀더 믿을 만한 작물과 가축을 섭취함으로써 영양상태가 좋아져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과거보다 인구가 훨씬 더 빠르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인간 정착지가 늘어났고 인류는 육지의 점점 더 많은 지역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을 남겼다.
만약 농업이 시작된 이후의 지표면을 저속촬영 필름으로 보게 된다면, 지난 수천 년 동안 유라시아 남부 전역에서 미묘하지만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깨달을 것이다. 중국, 인도, 남부 유럽, 그리고 북부 아프리카에서 짙은 초록색이 밝은 초록색이나 갈색이 감도는 초록색으로 서서히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최초의 마을이나 도시가 생겨난 지역으로, 농경지를 확보하거나 조리와 난방에 쓸 땔감을 얻고자 광활한 진초록색 삼림을 시시각각 잘라낸 결과 밝은 초록색 목초지나 갈색이 감도는 초록색 경작지가 늘어난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과학자들은 인류가 100∼200년 전 처음으로 기후 변화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고 믿었다. 산업혁명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이 초래한 변화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에서 그와는 사뭇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자연이 통제하던 기후가 인간이 통제하는 기후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무려 수천 년 전의 일이었으며, 그것은 농업과 관련한, 얼핏 보기에는 ‘목가적인’ 변혁의 결과로 생겨났다는 내용이다. 우리 인류는 도시를 건설하기 전에, 인쇄술을 발명하기 전에, 그리고 주요 종교를 확립하기 전에 일찌감치 기후를 변화시키고 있었다. 진작부터 농사를 짓고 있었으니 말이다.”
자연이 기후를 통제했다
방대한 시기에 걸쳐 기후 변화는 철저히 자연의 통제 하에 있었다. 지구는 46억 년 전에 생성되었으며, 일부 과학자들은 이와 같이 진행되고 있는 기후사 연구의 성과를 지구과학에서 이루어진 네 번째 혁명(세 가지 혁명은 1700년대 제임스 허턴의 지구는 서서히 변화해온 행성이라고 주장한 설, 다윈의 자연선택설, 마지막으로 판구조론을 의미한다)으로 꼽기도 한다. 이 혁명의 최대 성공담은 상대적으로 작은 지구 궤도 변화와 상대적으로 큰 지구 기후 변화의 인과관계를 밝힌 대목이다. 이처럼 중대 발견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더없이 상이한 분야인 지질학과 천문학이 손잡은 결과였다. 이 새로운 지식을 이루는 중요한 측면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북극 근방 고위도 지역의 기후 변화를 좌우하는 빙하기 주기의 원인이요, 다른 하나는 열대지방에 만연한 열대몬순 변동의 원인이다.
그런데 지구 궤도의 작은 변화가 기후에 규칙적이고 예측 가능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불과 150여 년 전의 일이었다. 1842년 천문학자 조제프 에드헤마르는 지구 궤도의 어떤 측면인가가 수만 년이라는 짧은 시기 동안 변화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바로 지구 궤도의 변화가 지구표면에 도달하는 태양 복사에너지 양에 영향을 끼치고, 그것은 다시 빙상의 등장과 퇴각을 비롯해 기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3장. 특히 지구의 타원율과 이심률, 세차운동)
물론 인류의 출현이 늦었으므로 기후에 자연의 영향이 클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러나 15만∼10만 년 전 우리 인류종이 출현하자, 변화의 속도가 적어도 거의 감지할 수 없었던 이전 시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빨라졌다. 5만 년 전 무렵, 우리는 인류가 창의적 잠재력을 지녔음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최초의 증거를 보게 된다. 그래서 초기인류 ‘문화’의 기원이 오늘날의 문화와 흡사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따라서 불을 발견하고, 비로소 정착 생활을 하기에 이른다. 즉 1만 2000년 전, 인간의 독창성은 유라시아에서 일대 전환점을 맞았다. 그 전환점이란 다름 아닌 농업의 발견이었다.
지구 궤도의 추동이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인간의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음에도 그것의 영향이 극히 미미했기 때문에 이것만으로는 온실가스 농도의 변화를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점차 늘어가는 인간 활동이 거기에 대안적인 설명이 되어준다.
인간이 통제를 시작하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과거 온실가스의 주류인 이산화탄소와 메탄의 농도를 추적한다. 특히 과거 네 차례의 간빙기와, 특히 40만 년 전의 간빙기와 현재의 간빙기를 비교한다. 40만 년 전의 간빙기 동안, 수많은 지역에서 상당 정도 자연적인 냉각화가 진행되었으며, 북반구에서는 새로운 빙하작용이 시작되었다. 반면 지난 몇 천 년 동안에는, 지구상에서 냉각화가 진행된 지역이 거의 없었고, 북반구 대륙에 새로운 얼음도 나타나지 않았다. 두 시기 동안 기후 반응이 다른 이유를 설명해주는 유일한 방법은 오로지 인간 활동으로 배출된 온실가스가 만약 그것이 없었다면 이루어졌을 자연적인 냉각화를 저지했고, 그 결과 빙하작용이 진행되지 못하도록 막았다는 것뿐이다. 빙하작용은 오늘날 이미 진행되었어야 마땅한데, 그것을 가로막은 요인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지구 기후의 역사에서 담당한 역할은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8000년 전 이전)
8000년 전 이전까지는 자연이 통제력을 쥐고 있었다. 우리의 머나먼 선행 인류 선조들이 수백만 년 동안 지상에 존재했음에도 자연만이 기후 변화를 주도했다. 완전한 인류 선조들이 15만 년 전 이후 출현했을 때에도, 그들이 기후의 풍경에 미치는 영향은 여전히 미미했다. 인간은 ‘불쏘시개’를 이용해 초지와 삼림지역을 불태움으로써 사냥감을 내몰거나 트인 지역으로 유인했고, 산딸기류를 비롯한 천연식량이 자랄 수 있도록 했다. 이 초기 문화의 일부가 다습한 열대지역의 토양에 도입된 결과, 그곳에서는 열매와 견과를 맺는 나무들이 자라났다.
그러나 인간의 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