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오늘을 위한 소설. 그야말로 놓쳐서는 안 될
이 시대 최고의 작품.” _『로스앤젤레스 타임스』
1953년 6월 19일, 싱싱교도소의 전기의자에 앉게 되기까지
로젠버그 부부 스파이 사건의 문학적 재구성,
미국 역사의 냉철한 기록자 E. L. 닥터로의 걸작 장편소설
미국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닥터로의 장편소설 『다니엘서』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을 통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 1971년 발표된 이 작품은 1953년 소련에 핵무기 기밀 사항을 넘기기로 공모했다는 혐의로 전기의자에서 사형당한 로젠버그 부부 사건을 토대로 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름과 직업 정도의 사소한 변형 외에는 모두 실제에 기초한 것이며, 로젠버그 부부가 FBI에 체포당해 전기의자에서 사형되기까지의 사건을 그들의 아들로 설정된 다니엘의 시선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또한 다니엘이 부모의 사건을 조사하는 현재의 시간적 배경 역시 베트남전 반대시위가 한창이던 1967년에서 1968년 사이로, 1967년 10월 워싱턴 평화시위와 1968년 4월 컬럼비아 대학 학생운동 등 굵직한 미국 현대사의 현장이 다니엘의 개입으로 생생히 묘사되고 있다. 자신의 모든 작품에서 신화화되고 낭만적으로 각색된 미국의 역사를 냉정하게 재기술해온 작가 닥터로는 『다니엘서』에서 냉전시대 이념전쟁의 희생양이 된 한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조작되고 흐려진 역사의 진실을 독자들 앞에 밝혀낸다.
작품 소개
“대부분의 사람들이 역사를 이미 완결된 완성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는 현재다. 역사는 세대마다 새롭게 쓰여야 한다.” _E. L. 닥터로
E. L. 닥터로는 오늘날 미국 문단에서 비평가들의 찬사와 대중적인 인기를 동시에 누리고 있는 작가이다. 사회와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전통적인 소설의 한계를 인식하여 다양한 스타일 실험을 통해 자신의 정치적 열정, 사회적 비전을 놀라운 예술성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첫번째 장편소설 『하드 타임스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1960)에서는 미국 프런티어 신화의 허구성을 탐구했고, 영화와 뮤지컬로도 많이 알려진 대표작 『래그타임』(1975)에서는 인종주의와 급진주의를, 그리고 그에게 세번째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과 두번째 펜포크너 상을 안겨준 『행군』(2005)에서는 남북전쟁에 관한 낭만적 신화를 깨부수고 있다. 이렇듯 전 작품에 걸쳐 미국의 과거를 다시 쓰는 작업을 하는 그에게 모든 역사는 ‘만들어진 것’이며 일종의 허구로서, 닥터로는 작품을 통해 공식적인 역사가 아닌 미국의 다른 이면의 역사상을 제시한다. 곧 그는 미국인의 마음에 소중하게 간직된 ‘신화’를 해체하는 것이다.
역사는 전쟁터이다. 과거가 현재를 제어하기 때문에 역사는 항상 투쟁의 대상이 된다. 역사는 현재이다. 각 세대가 역사를 새롭게 기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이 역사라고 생각하는 것은 역사의 최종적인 산물인 신화이다. (p.467, 해설 중에서)
닥터로는 미국의 역사가들이 흑인과 인디언과 여성의 존재를 역사에서 지워버린 것과 같이, 역사는 존재할 것과 존재하지 않을 것을 결정하는 행위로써 창작과 관련된 결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역사가들은 모두 형편없는 작품을 만들어냈으며, 닥터로는 자신의 작품에서 미국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작가로서 “자유의 힘”으로 “체제의 힘”에 도전하려 한다. 그의 목적은 제도의 힘이 가진 패권을 폭로하고 이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폭로와 도전의 행위가 이루어지는 중요한 무대 가운데 하나가 역사라고 믿고 자신의 작품의 소재들로 삼았다.
아인슈타인, 사르트르, 장 콕토, 피카소 등 전 세계 지성과
미국정부를 대립하게 한 로젠버그 부부 사건의 문학적 재구성
『다니엘서』는 닥터로에게 미국 역사의 기록자로서 필립 로스, 솔 벨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는 찬사를 안겨다준 대표작이다. 소설의 내용은 소련에 핵무기 관련 기밀을 넘기기로 공모했다는 혐의로 처형당한 로젠버그 부부의 실화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이 부부는 1950년 5월 23일 체포되어 1953년 6월 19일 싱싱교도소의 전기의자에서 차례로 처형당했다. 이들은 죽기 전까지 자신들의 스파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고 공정한 재판을 받지도 못한 채 사형되었다. 이들 부부의 사형 판결은 수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당대의 지식인들은 다양한 쟁점을 가지고 각자의 신념에 따라 이 사건을 두고 격렬히 부딪혔다. 아인슈타인은 트루먼 대통령에게 사형 판결만은 철회되어야 한다고 요청했고 교황 피우스 12세를 비롯한 전 세계 지성들이 미국 정부에 구명 청원을 했다. 하지만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형세가 불리해지며 반공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결국 부부는 “당시의 세계정세에 책임을 지고 반역죄로 처형”당한다. 장 폴 사르트르는 이 사건을 가리켜 “법을 빙자한 린치”라고 표현했다.
『다니엘서』에서 로젠버그 부부 사건은 이렇게 대치된다. 줄리어스 로젠버그와 애설 로젠버그는 폴 아이작슨과 로셸 아이작슨으로, 로젠버그의 두 아들은 다니엘과 수전 남매로 변형된다. 그리고 로젠버그 부부에 대해 결정적인 증언을 한 검사 측 증인은 에설의 남동생인 그린글래스에서 치과의사 셀리그 민디시로, 이 외에도 실제 재판을 담당한 판사와 검사, 변호사도 허구의 인물로 변형되어 등장한다. 부부의 재판에서 사형까지의 주요한 사건들은 이들을 둘러싼 정치적 쟁점과 당시 세계정세에 대한 다양한 시점의 해석들과 함께 묘사된다.
닥터로는 이 이야기를 아이작슨 부부(로젠버그 부부)가 죽은 지 14년 후 아들인 다니엘의 시점에서 재구성한다. 그는 학생운동을 하던 여동생이 자살기도를 한 뒤 그것을 계기로 부모에 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 사건의 관계자들을 만나고 조사한다. 소설의 화자는 다니엘이지만 실제 1인칭 화자와 3인칭 화자로 서술의 시점은 계속 변화한다. 이것은 이 사건을 직접적으로, 또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려는 노력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닥터로는 처음에는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150페이지까지 원고를 쓴 후에야 이 소설은 다니엘의 목소리로 진행되어야 함을 깨닫고 처음부터 다시 집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점의 변화뿐 아니라 작품에서 시도되는 다양한 서술 방식(논문, 인터뷰, 편지, 독자와의 직접적인 대화와 논조의 변화 등)은 단순한 스타일 실험이 아니라, 닥터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을 전달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의 채용이다. 주인공인 다니엘이 일련의 사건들로부터 일관성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의 어려움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며,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 따른 좌절감을 드러내는 장치이다. 또한 이는 독자가 복잡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하려는 의도로 채택된 것이다. 즉 닥터로의 관심사는 부부의 유무죄를 밝히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에 관한 다양한 관점과 해석, 역사적 사건이 담론으로 변형되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 있다. 미국 사회가 이들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러한 닥터로의 역사 인식과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작품의 제목인 <다니엘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소설의 처음과 끝에 인용되는 구약성경 「다니엘서」의 선지자 ‘다니엘’은 유대 민족이 바빌론으로 끌려갔을 때 왕궁에 끌려가 느부갓네살 왕의 신하가 된 인물이다. 그는 왕의 꿈을 해몽하며 최고 관직에 올랐고 그로써 유대 민족들을 보호한다. 마찬가지로 『다니엘서』의 다니엘은 과거를 해석하여 부모의 진실을 찾고 가족을 구원하고자 한다. 다니엘에게 과거의 해석은 곧 자신의 실존의 문제와 닿아 있다. 작품의 마지막에 인용된 「다니엘서」의 한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통과해야 할 마지막 환난을 예언한 것으로, 성경의 다니엘은 환난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불의에 굴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고 불의와 타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