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자의 노예가 되는 한 남자,
마조히즘’을 낳은 소설
“사도마조히즘 소설의 전형, 자신의 강박을 가장 간결하고 명료하게 예술로 승화시켰다.”
_뉴욕프레스
오스트리아 작가 자허마조흐가 1870년에 발표한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마조흐의 극단적인 감각주의와 피학적인 성적 취향을 담은 자전 소설이다. 자신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타인, 특히 여성에게 학대받는 것에서 쾌락을 느끼는 인물들을 그린 마조흐는 실제로 『모피를 입은 비너스』의 주인공 ‘제베린’과 닮아 있으며, 이 작품은 그의 일생과 문학 전반을 지배했다.
그러나 1980년 크라프트에빙이 ‘마조히즘’을 성도착증의 한 개념으로 발표한 이후, 이 작품이 단지 ‘성 도착’의 산물로 치부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인간 본성 속에 잠재된 ‘마조히즘적 쾌락’과 사랑의 관계 속에 존재하는 ‘권력의 역학’에 대한 통찰이 환상적이고도 신비로운 모티프로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탓이다.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작가의 불운한 죽음과 함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지만,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등의 대문호들이 경의를 표했을 정도로, 그의 사후 19세기 독일 사실주의와 자연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근자에는 마조흐의 문학세계를 새롭게 조명하는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사도마조히즘’을 남기며
성에 대한 강박을 예술로 승화시킨
독일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
“당신은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환상을 일깨워 주었어요.
내가 사랑하고 숭배하는 아름다운 여인의 노예가 되는 거죠?” _본문에서
카르파티아 산속 휴양지, 귀족 청년 제베린 폰 쿠지엠스키의 집 위층 방에는 반다 폰 두나예프라는 아름다운 미망인이 머물고 있다. 돌로 된 비너스상을 남몰래 숭배해 온 제베린은 비너스상처럼 차갑고 매혹적인 반다에게 반해 청혼하지만, 어떤 구속도 받기 싫어하는 자유분방한 여성인 반다는 이를 거절한다. 그러자 제베린은 그 대신에 모피를 입은 우아한 여인의 노예가 되는 자신의 환상을 실현시켜 달라고 부탁한다. 그녀의 발치에 무릎을 꿇은 자신을 점차적으로 더욱 잔인하게 대하고, 감정의 동요 없이 냉혹하게 채찍질을 해달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거절하고 머뭇거리던 반다는 차츰 이런 행위에 쾌감을 느끼고, 제베린에게 그녀의 노예가 되겠다고 서약하는, 심지어 그를 죽일 수도 있다는 계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는데…….
액자소설 형식 속에 인간 본성에 내재된 사도-마조히즘적 성적 강박, 남녀 관계에 존재하는 사랑과 권력의 역학에 대한 통찰, 지배적 담론에 의한 성의 통제와 이용 등 밀도 깊은 주제가 담겨 있는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사랑하는 여자의 노예가 되는 한 남자의 전례 없는 초상을 통해 작가에게 전 유럽적인 명성을 즉각적으로 가져다준, 19세기 독일 사실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전례 없는 초상,
남녀 간의 비틀린 사랑과 인간의 권력구도를
농밀하고도 파격적인 문체로 묘파하다!
“사랑에 있어서 평등은 있을 수 없습니다. …상대를 지배할 것인지, 아니면 상대에게 지배를 받을 것인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아름다운 여인의 노예가 되는 편이 훨씬 더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_본문에서
1886년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은 〈마조히즘〉이라는 이름으로 여러 사례의 성도착증을 정리하여 밝혔다. 그때까지 명망 있던 작가 자허마조흐와 그의 팬들은 그의 이름이 변태성욕의 상표처럼 되어버린 것에 항의했지만, 결국 자허마조흐는 불명예를 짊어지게 되었고, 그의 문학세계 또한 망각의 늪으로 빠졌다. 사실, 크라프트에빙은 실제로 많은 사람들에게서 자허마조흐의 등장인물과 같은 성적 추구 경향을 발견하고, 이에 자허마조흐의 이름을 빌렸을 뿐이었다. 주인공 제베린의 정신세계는 자학의 개념 하나만으로 규정할 수 없으며, 당대 젊은이의 지적?정신적 방황을 그려 보여 주고, 이를 드러내주기 위해 반다라는 여성을 등장시키고 기이한 사랑의 형식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사용했다. 따라서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마조히즘〉이라는 병리학적 어휘로 규정되기 이전에 모피를 입은 여인의 아찔한 느낌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전달되는 재미있는 하나의 소설 그 자체로 읽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