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내려온 고향, 무연無緣.
지서는 그곳에서 여름을 닮은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은기를 만난다.
“부탁 하나만 할게요. 들어줄래요?”
“네.”
“나 배고파. 밥해 줘요.”
“해 줄게요.”
“그럼 난 뭘 해 주면 좋을까?”
“키스……. 키스해 주세요.”
시골집에서 머무는 동안 일상을 달래 줄 심심풀이 상대라고 생각했다.
이곳을 떠나면, 이 계절이 지나면 잊힐 마음이라고.
하지만 그는 그녀의 밤을 따스한 온기로 빼곡히 차오르게 만들었고,
몰랐던 외로움을 알게 했다.
“전 보수적이고 조신한 사람이라 자면 다 사귀는 줄 알았는데
지서 씨는 아닌 것 같아요.”
“…….”
“난 키스에 서투르고 지서 씨는 사랑에 서투르니까
서로 가르쳐 줘요.”
깊어 가는 마음에 여름이 짙어진다.
나의 계절은 계속 따뜻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