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역사에 이름을 부여하는 문제작, <분노의 시대>
<뉴욕 타임스> 선정 <2017년 올해의 주목할 만한 책>
<슬레이트>, 미국 공영 라디오NPR 선정 <올해의 책>
빈발하는 잔혹한 테러와 ISIS의 거침없는 질주, 복수심에 불타 반대편을 말살하려는 민족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소셜 미디어의 여성 혐오에 이르기까지, 편집증적 분노의 파고가 전 세계를 덮치고 있다. 역사상 어느 시대보다 문해율이 높고,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풍요로운 듯이 보이는 지금의 세계에서, 왜 이처럼 가공할 폭력과 증오, 분노가 폭발하고 있는가? 서구의 근대화가 아시아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독창적인 시각에서 분석하며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공적 지식인 중 한 명으로 떠오른 판카지 미슈라는, <분노의 시대>에서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정신 이상자인 <외로운 늑대>의 소행이나 이슬람 근본주의의 탓으로 돌리는 서구 사회의 담론을 근시안적이고 위선적인 해석으로 질타하며 보다 근원적이며 심층적인 원인을 찾고자 한다.
판카지 미슈라는 근대 세계가 열리기 시작한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현재의 역사로 돌아오며, 그 자신이 분노의 시대로 규정한 현재의 역사가 근대 세계가 만든 역사의 논리적 결과임을 증명하려 시도한다. 미슈라는 오늘날 터져 나오는 분노의 사회경제적 원인은 근대 세계에 이미 내재해 있던 것이며, 유럽이 19세기에 근대화 과정에서 한 차례 경험한 역사를 오늘날 식민지에서 벗어난 비서구 세계가 뒤늦게 되풀이하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미슈라는 합리적인 개인이 사익을 추구하는 보편적인 상업 사회에 경외감과 두려움을 느꼈던 근대 지식인들의 다양한 내면의 풍경을 보여 준다. 거대하고 동질적인 세계 시장에서 살아가며 문화적 배경이나 개인적인 특질과 상관없이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똑같은 것을 열망하라고 부추기는 세계에서 밀려나고 뒤처지고 버림받은 인간이 겪을 수밖에 없는 분노와 증오, 좌절감을 통해, <분노의 시대>는 우리 시대가 가진 위기의 본질을 드러낸다. 오늘날 거의 전 세계가 받아들이고 있고, 받아들이길 강요당하고 있는 서구의 세계관에 진지한 의문을 제기하며, 한 시대에 이름을 부여하는 문제작이다.
서구 대 비서구의 충돌도,
종교적 광신도의 미친 짓도 아니다.
현재의 분노에는 깊은 역사적 뿌리가 있다.
비행기가 세계무역센터를 향해 날아가 충돌하고, 프랑스의 해변에서는 트럭이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 돌진한다. ISIS 대원이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힌 인질을 참수하는 장면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며, 이러한 잔학무도한 세력에 합류하겠다며 전 세계에서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오늘날의 세계에서 왜 이와 같은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는가? 9·11 사태가 일어난 직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벌인 지 벌써 10여 년이 지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에 성공한 지도 한참이다. 그렇다면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과 이들을 지원하는 국가를 대상으로 벌인 이러한 범세계적인 차원의 전쟁은 성공한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세계의 정치 질서는 가파르게 우경화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마린 르 펜을 위시해 여러 국가에서 극우주의자들이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처음으로 다시 주요 정치 세력으로 등장했다. 영국은 유럽연합에서 탈퇴했다. 미국에서는 위대한 미국을 표방하며 국익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었고, 인도에서는 힌두 민족주의를 앞세운 나렌드라 모디가 집권했다.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터키에서는 에르도안이, 중국에서는 시진핑이 장기 독재 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고, 필리핀 같은 나라에서는 마약과의 전쟁을 위해 국가 차원의 폭력을 마다하지 않는 로드리고 두테르테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했을 때, 세상은 희망으로 가득 차 보였다. 자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역사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한 듯했고, 자유 시장과 인권이 인류의 진보를 위한 최종적인 해법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는 당시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편집증적 증오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왜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배타적인 힘의 행사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가?
판카지 미슈라는 이 책에서 전 세계에서 가공할 테러와 폭력이 벌어지는 원인을 이슬람 근본주의와 종교적 광신도들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서구 언론과 지식인, 정치인들의 입장을 전면적으로 거부한다. 미슈라에 따르면, 온건한 무슬림을 지원해 극단적인 이데올로기를 견제하고 이슬람의 개혁을 유도하겠다는 서구의 정책은 강압적이고 비현실적이며, 정권을 교체하고 고유한 풍습을 개량하겠다는 목표는 <모래밭에 선을 긋는 것>과도 같은 무모한 생각이다. 미슈라는 서구 대 비서구, 우리 대 그들, 기독교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로 설명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서구의 입맛에 맞게 현상을 제멋대로 재단한 근시안적인 관점으로, 사태의 본질을 전혀 설명하지 못하며, 따라서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미슈라는 사태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본다. 현재의 분노를 문명사적인 것으로, 즉 서구에서 근대 세계가 태어날 때부터 숙명적으로 잉태된 오래된 감정의 재현이라고 보는 것이다.
미슈라는 현재의 위기를 <보편적 위기>, 즉 테러나 폭력이라는 쟁점을 넘어 훨씬 광범위한 영역에 걸친 것으로 파악하면서, 위기의 근원을 물질주의적 산업 문명의 도래에서 찾는다. 이 엄청난 인류사적 사건의 의미가 지나치게 축소되어 있다고 보는 미슈라는 <분노의 시대>에서 산업 문명의 발흥에 사상적 기초를 제공한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독일 낭만주의, 러시아 무정부주의, 이탈리아 민족주의를 거쳐 이란 혁명과 힌두 민족주의, ISIS와 도널드 트럼프의 현재로 이어지는 사상의 계보를 그려 내며, 그러한 사상이 만들어 낸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밀려나고 뒤처지고 버려진 자들의 고통과 비애, 분노를 읽어 내려고 시도한다.
미슈라의 생각은 이렇다. 19세기 유럽에서 산업 자본주의 경제가 발흥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무질서가 뒤따랐고, 이러한 무질서는 20세기 전반에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전체주의 정권, 종족 학살을 초래했으며, 지금에 와서는 훨씬 광범위한 지역과 훨씬 많은 인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다시 말해 유럽의 제국주의를 통해 근대성을 처음으로 경험했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이 오늘날 서구가 겪은 근대화의 부정적 경험을 숙명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슈라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되풀이되고 있는 비극의 역사다.
계몽주의의 그늘 ― 전체주의는 역사의 일탈이 아니다
계몽주의, 나아가 근대화된 세계의 어두운 이면에 주목하는 미슈라는 근대 이후에 전개된 서구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인간이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는 탈종교적 개념으로 관점의 혁명을 선도한 18세기의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능력주의 사회를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사회라야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이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사회에서도 대다수의 민중은 최상부를 차지한 진정으로 계몽된 사람들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었다. 당대의 유럽의 사상가들의 머릿속에는 피지배자인 민중으로부터 진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계몽 철학의 합리주의는 새롭게 부상하던 야심적인 계급에게 유리한 철학이었고, 계몽 철학자들은 궁극적으로 상류 사회에 완전히 통합된 사람들이었다. 말하자면 그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