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우튀프론

플라톤
15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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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고소당해서 예비 심판을 받으러 가는 길에 에우튀프론과 만나 경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짧은 대화를 담고 있다. 대화의 중간에 소크라테스는 “경건한 것은 신들에게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한 것인가, 아니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에게 사랑받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소위 ‘에우튀프론 딜레마’ 혹은 ‘에우튀프론 문제’라고 불리며, 중세 이래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영감과 논쟁의 원천이 되었다. 《에우튀프론》의 일차적 관심사는 정의 내리는 행위와 관련한 규범들이다. 오늘날에도 논리학 교과서들에서 정의 내리는 방법에 관해 소개되는 내용은 《에우튀프론》에서 다루어진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또한 당대 그리스 종교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신’이라고 불릴 만한) 신들 사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고 신들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서 인간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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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목차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을 펴내며 5 작품 안내 9 내용 구분 53 등장인물 54 본문과 주석 59 부록 129 옮긴이의 글 131 참고 문헌 134 찾아보기 139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에우튀프론》은 소크라테스가 불경죄로 고소당해서 예비 심판을 받으러 가는 길에 에우튀프론과 만나 경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짧은 대화를 담고 있다. 대화의 중간에 소크라테스는 “경건한 것은 신들에게 사랑받기 때문에 경건한 것인가, 아니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에게 사랑받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을 던진다. 이 질문은 소위 ‘에우튀프론 딜레마’ 혹은 ‘에우튀프론 문제’라고 불리며, 중세 이래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영감과 논쟁의 원천이 되었다. 그런데 아마도 이와 관련한 가장 큰 아이러니는 《에우튀프론》에서는 에우튀프론 문제가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에우튀프론》에서 소크라테스가 관심을 갖는 것은 좋음이나 도덕적 옮음 등이 신의 의지에 의해 구성된다고 할 수 있는지 여부가 아니다. 《에우튀프론》의 일차적 관심사는 정의 내리는 행위와 관련한 규범들이다. 오늘날에도 논리학 교과서들에서 정의 내리는 방법에 관해 소개되는 내용은 《에우튀프론》에서 다루어진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에우튀프론》은 또한 당대 그리스 종교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신’이라고 불릴 만한) 신들 사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고 신들과 인간들 사이의 관계에서 인간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과 종교의 문제가 오늘날에도 중요한 문제들 중 하나라면, 《에우튀프론》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도서 내용 내용 구분 1. 소크라테스와 에우튀프론의 만남 1) 소크라테스의 소송 내용(2a-3e) 2) 에우튀프론의 소송 내용(3e-4e) 3) 소크라테스가 에우튀프론에게 경건에 대해 가르쳐 달라고 요구함(4e-5d) 2. 에우튀프론의 독자적 정의 시도 1) 첫 번째 정의 : 살인이나 성물절도 등의 부정의한 행동을 한 사람을 고소하는 것(5d-6d) 2) 두 번째 정의 : 신들에게 사랑스러운 것(6e-9c) 3) 세 번째 정의 : 모든 신에게 사랑받는 것(9d-11b) 3. 막간: 에우튀프론의 낙담(11b-e) 4. 소크라테스의 도움을 통한 에우튀프론의 정의 시도 1) 경건한 것은 정의로운 것의 부분(11e-12e) 2) 네 번째 정의 (1) 신들에 대한 보살핌(12e-13d) (2) 신들에 대한 섬기기 기술(13d-14a) 3) 다섯 번째 정의 (1) 기도와 제사에서 신들에게 흡족한 것을 말하고 행하기(14b-14e) (2) 신들과 인간들 사이의 상거래 기술(14e-15a) (3) 신들이 인간들에게서 얻는 것(15a-15c) 4) 파장 : 에우튀프론이 어딘가 급히 가야 한다며 떠남(15c-16a)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의 예비 심판 이후 실제 재판이 일어날 때까지 걸린 시간이 특별히 길지 않았다면(상당히 길었다는 주장이 있기는 하지만 별로 설득력은 없어 보인다) ≪에우튀프론≫의 드라마적 배경은 기원전 399년이고, 이때 소크라테스는 70살이었다. 이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는, 초기로 추정되는 대화편들에서 보통 그러하듯이,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인 에우튀프론의 생각을 검토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결국 대화편은 경건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고 끝난다. 하지만 학자들 중에는 이 대화편에서 경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표면적으로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지 않지만, 그의 논박 과정을 잘 좇아가다 보면 그가 경건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한 논쟁은 현재진행형이며, 판단은 독자의 몫이라고 하겠다. 에우튀프론 이 대화편에 등장하는 것과 플라톤의 ≪크라튈로스≫에서 언급되는 것 외에 에우튀프론에 대해 따로 알려진 바는 없다. ≪크라튈로스≫에서는 소크라테스가 헤르모게네스에게 ‘제우스’, ‘크로노스’, ‘우라노스’ 등의 이름에 대해 기상천외한 어원 설명을 하고 나서, 자신이 아마도 새벽에 에우튀프론의 이야기를 들어서 신령스러운 지혜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396b-d). 그가 새벽에 에우튀프론의 이야기를 들은 것이 바로 ≪에우튀프론≫에 등장하는 대화라는 추정도 있지만, (소크라테스의 아이러니를 고려해도) ≪에우튀프론≫의 대화를 통해 소크라테스가 그런 종류의 영감을 얻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고, 두 대화편의 대화 배경시기도 잘 맞지는 않는다. 두 대화편의 대화가 같은 날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소크라테스는 예전에도 에우튀프론과 만나서 그에게서 종교적 문제와 관련한 이야기를 들었던 셈이 된다. ≪에우튀프론≫의 에우튀프론은 민회에서 여러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고 하는 것(3c)으로 보아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인물이고, ≪크라튈로스≫의 대화 배경시기를 기원전 422년 이전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는데, 그 견해가 맞다면 ≪에우튀프론≫의 대화 시점에서 그는 40대 중반은 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에우튀프론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면 이런 것들은 전부 플라톤이 드라마 설정을 위해 꾸며 낸 것들일 따름이다. ‘에우튀프론(Euthyphr?n)’이라는 이름은 ‘곧은’, ‘직설적인’, ‘직접적인’ 등의 의미를 갖는 ‘euthys’와 ‘생각하다’는 의미를 갖는 ‘phronein’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에우튀프론≫에서 보이는 그의 성품과 이름 사이의 절묘한 조화는 이 인물이 플라톤의 상상의 산물일 가능성을 어느 정도 시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문제에 대해 정확한 사실을 알기란 어렵다. 대화편에서 에우튀프론은 소크라테스에 대해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고(3a), 자신과 소크라테스가 모두 대중들에게 비난을 받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3b-c). 당대 그리스인들에게 에우튀프론은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곤 했으며,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그는 종종 지적 능력도 부족한 데다 미신을 믿는 광신자 정도로 치부되곤 한다. 하지만 ≪에우튀프론≫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편견 없이 바라본다면, 에우튀프론이 철학적 훈련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가 특별히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또한 종교적으로 그가 특별히 광신자라고 생각할 이유도 별로 없어 보인다. 그는 신들이 인간들에게서 받는 것을 통해 이익을 얻는다는 식의 세속적인 종교관을 거부하고 있으며(15a), 제우스가 정의로움의 수호자라는 생각을 보통 사람들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을 따름이다. 어떤 의미에서 에우튀프론은 플라톤의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를 포함한) 모든 인물들 중에서 가장 칸트주의적 정의관에 가까운 입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그는 광신자라기보다는 종교적 근본주의자에 가깝다. 에우튀프론을 경건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에게 신들을 공경하는 마음이 부족해서는 아니다. 그는 최소한 제우스를 매우 공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가 결여하고 있는 것은 종교적 겸손함이다. 그는 자신이 보통 사람들보다 종교적인 지혜가 월등히 앞서 있다고 자신한다. 그래서 살인자를 잘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소하면서 자신이 하는 행위가 경건한 행위의 대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와의 논의를 통해서 드러난 것은 그가 경건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가 정말 경건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결국 그는 자신의 행위가 경건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는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신들에 대한 두려움과 사람들 앞에서의 부끄러움을 가지고, 옳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일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지적이다(15d).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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