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니면, 딸이 아니면, 누가 우리 엄마를 알아줄까”
공지영, 성석제 작가 책 일러스트레이터
이민혜 작가의 첫 그림 에세이
엄마만을 위해 쓰고 그린 61편의 글과 61점의 그림
딸이기에 더 서운한 것들,
엄마이기에 더 안타까운 것들,
어쩔 수 없는 원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엄마에게
엄마를 잊은 당신에게
《엄마라서》는 엄마를 잊은 당신에게 건네는 일러스트레이터 이민혜 작가의 첫 그림 에세이다. 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우리의 엄마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한때는 우리의 수호신이자 원더우먼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걱정 많고 허점 많은 한 엄마의 일상이 딸의 시선으로 솔직하고 유쾌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은 엄마를 까맣게 잊은 채 그저 사는 게 급급한 우리에게 여전히 우리 곁에 엄마가 있다는 걸, 엄마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준다. 그리고 이젠 엄마 옆에 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공지영, 성석제 작가의 책에 일러스트를 그렸던 이민혜 작가는 처음 작업하는 그림 에세이의 주제를 엄마로 삼고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오직 엄마만을 위한 61편의 글과 그림을 쓰고 그렸다. 작가 특유의 독특하면서도 재미있는 그림과 유머러스하면서도 담담한 글은 엄마에게 쓰는 편지처럼 따뜻하고 보드라우면서도 통통 튄다. ‘이토록 가까이에서(22쪽)’의 자석 그림이나 ‘엄마(40쪽)’에서의 엄마와 딸의 곡예 그림, ‘테트리스(60쪽)’의 테트리스 그림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간결하면서 유머러스한 표현을 느끼게 해준다. 작가는 단 한 컷으로 그 에피소드를 완벽하게 포착해내는 탄탄한 구성력을 매 꼭지마다 보여준다.
책의 1부에선 결혼 전 불평 많고 철없는 딸과 그런 딸을 걱정하는 엄마의 일상이, 2부에선 딸의 결혼 후 이제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끊임없이 만나는 딸과 엄마의 일상이 주로 나온다. 작가가 엄마와 보냈던 웃고 울고 짜증 나고 보듬고 그리워했던 시간을 지켜보다 보면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엄마가 어떤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는지. 물리고 촌스럽지만 엄마의 밥, 엄마의 희생이 얼마나 고마운지. 왜 그렇게 엄마와 싸울 수밖에 없었는지. 왜 엄마가 그토록 외로워 보이고, 불안해 보이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엄마를 여전히 사랑하는지.
딸이라서 엄마라서
《엄마라서》에는 딸이라서 더 서운했던 것들, 엄마라서 더 안타까운 것들, 그것들이 한데 섞여 원망이 되고 후회가 되었던 시간이 찬장 속 그릇처럼 차곡차곡 담겨 있다. 하지만 작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다. 엄마가 여자로 느껴진 게, 엄마에 대해 궁금해진 게 얼마 되지 않은 일이라고 말이다. 우리는 엄마에 대해서 얼마나 알까? 일이 바빠서, 연애가 바빠서, 사는 게 바빠서 혹시 제일 먼저 엄마를 미뤄왔던 건 아닐까? 그저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 눈 닫고 귀 닫고 지내왔던 건 아닐까?
엄마라서 참았고, 엄마라서 아팠던 시간은 파스처럼 책 속 곳곳에 덕지덕지 붙어 있다. 거실 소파에서 텔레비전을 켠 채 잠이 들고, 어깨가 뭉치고 팔이 아파도 가족을 위해 기어코 밥을 차려내는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의 엄마가 생각나 쉽게 페이지를 넘길 수 없다. 하지만, 작가가 그리려는 게 결코 힘없고 늙은 엄마만은 아니다. 한 달에 한 번 친구들과 남대문시장에 가 수세미, 냄비, 프라이팬, 수면양말, 덧버선, 황토색 팬티까지 사 딸에게 내미는 엉뚱하고 웃음이 나는 모습도 엄마이고, 어서 손주를 안겨달라며 딸과 사위에게 야한 유머 이미지를 보여주곤 “호호호홍” 하고 웃어버리는 귀엽고 짓궂은 모습도 엄마다. 타고난 음치이면서도 어릴 적 꿈을 떠올리며 고등학교 합창단 활동을 열심히 하는 엄마도, 실직한 아빠에게 밥때마다 살살 눈치를 주는 모습도 엄마다. 물론, 점점 작아지는 거 같은데 점점 무거워지는 거 같은 모습 또한 엄마다. 작가는 그저 밥을 하고 빨래를 하는 것만이 엄마의 전부는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엄마를 한 사람으로 보길 바라면서.
우리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
《엄마라서》는 외면도 하고, 원망도 했던, 오래도록 우리를 들볶고 들볶이기도 했던 엄마와의 시간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엄마가 내내 숨기며 살았던 어떤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고, 엄마로 대표되는 촌스럽고 식상한 것들을 우리가 그 무엇보다 사랑했었다는 것도 기억하게 해준다. “시집가니까 좋냐?”라고 물으면서도 “그 뒤에 나는 뭔가가 더 있을 줄 알았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먹먹하고 뭉클해진다. 모든 글이 끝나고 글 없이 펼쳐지는 열일곱 쪽의 그림들을 보면서 우리는 당황할 수도 있다. 혼자인 엄마를 보는 건 늘 낯설고, 불편한 일이니까. 우리에게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엄마가 필요하다. 그게 지금 우리가 전화기를 들고, 운동화를 구겨 신고, 차에 시동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엄마라는 사람을, 엄마라는 여자를, 엄마라는 단어를, 그저 엄마를 잊지 않기 위해서. 엄마가 우리를 잊지 않기 위해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