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껴 먹는 슬픔

유종인 · 시
12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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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시인의 말 무밭을 지나며 | 발작 | 팝콘 | 部位 | 옹이 | 잠꼬대 | 부추 꽃을 보다 | 보청기 선풍기 | 부려먹을 뱀이 없다 1,2 | 아껴 먹는 슬픔 ... - 해설 | 구토와 광기의 언어 (홍용희)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시집 『아껴 먹는 슬픔』은 고통과 상처, 슬픔과 환멸에 대한 이미지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하나의 그로테스크한 형상을 이룬다. ‘시궁쥐가 따먹은 해바라기’나 ‘꽃 속에 웅크린 사마귀’ 등과 같은 그 형상은 삶의 얼굴이며 죽음의 얼굴이다. 삶은 죽음을 먹고 유지될 만큼 가족적인 친근성을 가지고 있고, 또한 죽음은 늘 삶에다 자신의 그늘을 드리운다. 시인은 이러한 이미지들을 뒤틀린 가족사 속에다, 사물들의 섬세한 얽힘 속에다, 욕망의 은밀한 무늬 속에다 비벼 넣는다. 그리고 서서히 시집은 그 모든 것들로 인해 익어간다. 팔다리 다 잘린 채 빛나는 별처럼. [해설] 구토와 광기의 언어 _홍용희 누군가 아직도 식물의 맘으로 동물의 상처를 앓고 있다. ―「정신 병원으로부터 온 편지」 중에서 1. 구토의 꽃 유종인의 시세계는 삶과 죽음, 이성과 광기, 현실과 환각, 과거와 현재의 시간성이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공존 혹은 혼재한다. 그래서 그의 시세계에는 삶의 자리에 죽음의 그림자가 배회하고, 현실 속에 환상이 넘쳐흐르고, 이성의 화술에 광기의 음성이 배어나온다. 그의 시적 언술은 서로 이질적인 세계가 교차하고 배접하는 틈새 혹은 균열의 자리에서 뿜어져 나온다. 자크 라캉의 화법을 빌리면 일방적인 주관성에 갇힌 상상계와 상호 주관성의 사회성을 획득한 상징계의 질서가 서로 엇섞이어 혼재한다. 그래서 시세계의 도처에 생경한 자기 고착과 강박의 어감과 전율이 스며나온다. 시집 전반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통과 제의를 거쳐 상징계로 진입했으나 이를 거부하고 상상적 세계로 회귀하려는 신경증의 징후를 앓고 있다. 그렇다면 그의 신경증의 병인과 현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이러한 질문은 그의 독특한 시 창작의 방법적 원리와도 직접 관련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문제 제기 앞에 “잇몸이 다 들떠 있는” 조롱박의 속내가 전면에 부각된다. 새끼 조롱박에 귀를 댄다푸르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갈수록, 문 두드리는 소리가울먹울먹하게 들렸다 그소리 때문에 조롱박은 제 몸을 자꾸 밖으로 넓혀갔다안에서 나는 소리를 밖에서 듣지 못하도록 조롱박은 허리를 졸라가며 몸을 밖으로 밀어냈다, 그 새끼 조롱박어느 날, 더 이상 몸 불릴 수 없는 다 큰 조롱박이 됐지만……가슴에 둔 귀는 어쩔 수 없다침묵은 커져만 갔다쪼개면 하얗게 타버린 소리들,쭉정이로 마른 속씨들잇몸이 다 들떠 있었다 ─`「조롱박」 전문“새끼 조롱박”이 “큰 조롱박”이 된 것은 “울먹울먹하”는 소리의 부력에서 기인한다. 조롱박의 심연에서부터 솟아오른 소리의 파동이 표층을 두드린다. 조롱박은 그 소리를 “밖에서 듣지 못하도록” 허리를 졸라가며 몸을 밀어낸다. “어느 날, 더 이상 몸 불릴 수 없는/다 큰 조롱박이 됐”을 때, 울먹울먹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조롱박의 내면의 소리의 파동이 소멸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 소리는 없음이 아니라 있음의 없음, 즉 “침묵”의 크기를 키우고 있었다. 다 큰 조롱박을 쪼개었을 때 드러난 모습이 이를 고스란히 증거해준다. “쪼개면 하얗게 타버린 소리들,/쭉정이로 마른 속씨들/잇몸이 다 들떠 있었다.” 조롱박의 내면은 “하얗게 타”서 앙상하게 “마른 속씨들”과 들떠버린 “잇몸”으로 변해 있다. 내부의 소리들이 조롱박의 외피에 감금되면서 살아 있는 육체를 태우는 화기(火氣)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조롱박은 남모르는 고통의 신열을 온몸으로 앓고 있었다. 심연에서부터 퍼져나오는 “울먹울먹”한 소리의 파문, 이것이 시적 주체가 신열을 앓게 하는 병인이며 시 창작의 내적 동인으로 파악된다. 그의 시세계에 이명 같은 청각적 울림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배경도 여기에서 기인한다. 귀를 막고 들어야 하는 소리가 있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소리가 있다 ─「보청기」부분 굵은 뿌리 같은 葉脈들이 잎사귀의 신경이 되어 세상을 들었다는 걸, 듣다 져간다는 걸 ─`「부려먹을 뱀이 없다 1」 부분이명에 시달리는 자에게는 온몸이 청각기관이다. 그래서 소리가 “귀를 막아도 들”린다. “울먹울먹”한 소리의 파장이 그의 몸의 심연에서부터 통증처럼 울려퍼져 오른다. 즉, 화자의 몸이 곧 “쪼개면 하얗게 타버린 소리들”로 들끓는 “조롱박”에 해당한다. 따라서 유종인의 시적 언술은 조롱박의 내부에 적재되어 있는 뜨거운 소리의 열도가 어느 순간 외부로 분출할 때, 그래서 안이 밖이 되고 밖이 안이 될 때의 형상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시각화하면 옥수수가 열의 증폭에 의해 “팝콘”이 되는 것에 비견된다.  단단한 씨앗들  뜨거움을 벗어버리려 고 속을 밖으로 뒤집어쓰고 있다 내 마음 진창이라 캄캄했을 때  창문 깨고 투신하듯 내 맘을 네 속으로 까뒤집어 보인 때 꽃이다  뜨거움을 감출 수 없는 곳에서  나는 속을 뒤집었다, 밖이  안으로 들어왔다, 안은  밖으로 쏟아져나왔다 꽃은  견딜 수 없는 嘔吐다 ─「팝콘」 부분 제목인 ‘팝콘’이 시의 내부에서는 “꽃”으로 지칭되고 있다. 물론 꽃의 빛깔과 감각은 그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르겠지만, 먼저 붉고 환한 불의 이미지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한편, 팝콘은 옥수수 열매의 외부에 불을 가열하여 내부에 적재되어 있던 화기를 증폭시켜 파생시킨 불의 산물이다. 따라서 여기에서 “팝콘”과 “뜨거움”의 내부가 “감출 수 없는 곳에서” 밖으로 산출되어, 안이 밖이 되면서 형성된 “꽃”은 서로 불을 모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유종인의 시적 언술은 이와 같은 팝콘, 혹은 꽃으로 표상되는 불의 산물과 동일성을 지닌다. “내 마음 진창이라 캄캄했을 때/창문 깨고 투신하듯/내 맘을 네 속으로 까뒤집어 보인 때/꽃이다.” 화기가 외화되기 이전, 즉 마음속에 내장되어 있을 때의 양상은 마치 검은 석유의 덩어리 같은 “진창”과 캄캄한 혼돈의 모습을 띤다. 다시 말해, “내 마음” 속의 “진창이라 캄캄”한 상황에는 뜨거운 화기가 적재되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유종인의 독특한 시적 양상과 창작 방법론이 내적 뜨거움의 분출, 혹은 “견딜 수 없는 嘔吐”에 의한 “팝콘”의 형성 원리에 상응하는 것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2. 불순한 불과 바람의 활성 유종인의 시세계에는 불과 바람의 이미지가 중심 계열체를 이룬다. 불은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창문 깨고 투신하듯”(「팝콘」) 안을 밖으로 분출시키는 내적 동력이고, 바람은 불을 불러오고 촉발시키는 외적 요인이다. 불은 바람으로 인해 더욱 뜨거운 화염을 토하고, 바람은 불로 인해 더욱 활기를 띤다. 불과 바람은 서로 삼투되어 동물적 야수성을 증폭시키면서 현실 원칙의 질서를 쉽게 허물고 파탄시킨다. 그럼, 그의 시세계에서 불과 바람의 실재와 연원은 무엇일까? 유종인의 시세계에서 불의 이미지는 어디에서도 따스하고 온화한 미감을 지니지 않는다. 그의 시에서 일렁이는 불은 항상 깊은 원망?애증?가학 등의 속성을 띤다.  가고 없는 불, 가고 없는 불! 전 恒溫의 꿈을 버렸어요 어머니 전 변온동물이에요  당신 불자궁에서 누이가 미쳐 뺏어간 계절 때문에 전 햇빛 속에서도 그늘로 떠돌아요 어머니 간데없고  누이가 유서로 쓴 일기책을 내게 던져줘요  미안해, 끝없는 이승 곁불이야! 누이가 당신 무덤에 아궁이를 팔지 몰라요 어서어서 썩어 땅속에도 보이지 마세요 이제 기억의 머리카락 꽁꽁 숨기세요 정말 미치겠어요 아무렇지 않게 미친 것 같은 누이, 정말 미치겠어요 오랜만에 누이의 웃음에도 불기운이 감돌고 있어요 늙은 겨울이 와요 ─「狂人日記 5」 부분 누이는 “미친 것 같”고 그러한 누이를 바라보는 화자 역시 “정말 미”쳐가고 있다. 그래서 화자의 화법이 의식적 질서의 균정을 상실하고 있다. 산만하고 난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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