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권 선생님이 들려주는 새로운 돌봄
『나와 지구 돌봄 혁명』은 정치철학자 김만권 선생님이 기후변화와 인구 감소, 디지털 기술  격차가 불러올 위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면서, 그 해결책으로 돌봄을 인권이자 가장 중요한 원리로 삼는 돌봄 사회로 나아가자고 하는 책이다. 『새로운 가난이 온다』『외로움의 습격』 등의 책과 강연을 통해 사회를 비판하는 예리한 시각과 깊은 사유를 펼쳐 온 김만권 선생님은 특히 미래 세대에게 위기 앞에 드러난 나와 타자의 나약함을 서로를 돌보는 힘으로 바꾸자며 따스한 위로를 건넨다. 경쾌한 색채로 만화적인 상상력을 담은 구정인 작가의 그림이 즐거움을 더한다.
돌봄이라 하면 어린이나 노인, 병자 등을 주로 여성이 집에서 돌보는 일이라 떠올리기 쉽다. 『나와 지구 돌봄 혁명』은 이는 능력주의와 산업 가부장 사회에서 유래한 편견일 뿐이라고 명쾌하게 말한다. 저자는 기후, 인구, 디지털 격차가 빚어 낸 현실을 생생하게 들려주면서, 가난한 나라와 약한 사람들이 더 큰 고통을 겪는 불평등, 수도권과 지역 격차가 인구 감소를 더 빠르게 만드는 이유, 디지털 기술이 단절과 일자리 감소, 경쟁 심화를 불러올 뿐 아니라 전기와 물을 과도하게 써 기후변화를 촉진하는, 세 조건이 깊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최신 논점들도 자세히 짚어 준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돌봄이 인권 그 자체가 되고, 필요에 따라 누구나 돌봄을 받으며 적절한 분배와 인정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돌봄 사회로의 전환임을 설득력 있게 들려준다. 
얼마 전 방한한 빌 게이츠도 기후와 인구, 디지털 격차라는 모든 인류에게 닥친 위기 앞에 힘을 합해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만권 선생님은 기성 세대로서 미래 세대에게 진심을 담아 사과하면서, 인간만의 능력인 새롭게 시작하는 자유의 능력을 함께 내어 ‘돌봄 혁명’으로 새로운 세상을 함께 짓자고 한다. 미래 세대와 어른들이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그 첫 걸음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토론하자는 ‘너머학교 다음 세대를 위한 안내서 시리즈’의 여섯 번째 책이다. 
왜 돌봄이 중요할까?
케임브리지 사전에 나오는 ‘돌봄’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나 사물을 보호하고 그 사람이 사물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쓰이는 돌봄이라는 말에는 이런저런 편견이 물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나와 지구 돌봄 혁명』은 먼저 이런 편견을 명쾌하게 비판한다. 
첫 번째는 능력주의적 편견이다.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주로 병자, 노인, 어린이 등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사람을 보살피는 일을 돌봄으로 정의하는 경우가 많다. 즉 돌봄은 능력 있는 자가 그렇지 못한 자를 일방적으로 돕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이 경우 돌봄을 받는 사람들을 귀찮아하거나 필요 없는 이들로 여기는 부정적인 성향도 나타난다. 
두 번째는 돌봄이 여성이 가정에서 하는 일이란 편견이다. 아이를 기르고, 노인을 보살피고, 아프거나 장애가 있는 식구를 보살피는 일이 전통적으로 집안에서 여성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편견이 발생한 것이다. 특히 산업사회에서 생산활동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게 되면서, 돌봄은 대수롭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활동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저자는 돌봄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할 자선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누려야 할 ‘인권’의 하나임을 강조한다. 누구나 어린이, 청소년 시절에 돌봄을 받고, 생산 가능 연령이 되어 임금을 벌면서 돌봄을 하는 입장이 되고, 퇴직하고 나이를 먹으면 다시 돌봄을 받으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즉 모두가 돌봄을 하기도 하고 돌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또한 돌봄이 현대 민주주의의 중요한 정치적 주제 중 하나라는 점도 강조한다. 돌봄에 대한 필요성 때문에 1950년대부터 ‘민주적 복지국가’ 모델이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며 사람들이 돌봄을 정치 밖으로 밀어내려는 경향이 드러났다. 민주적 복지국가 모델 때문에 시민이 너무 국가에 의존해서 게을러지고 생산력이 떨어져 ‘복지병’에 걸렸다고 비난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저자는 이런 변화로 인해 사회 전반에 ‘내 인생인 내가 책임진다.’라는 ‘자기 책임의 윤리가’가 지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돌봄의 문제도  개인의 능력 차이에 의한 문제로 축소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돌봄이 더욱더 절실하고 필요한 이유를 기후변화, 인구 감소, 디지털 기술 등이 몰고 올 변화에서 찾는다. 왜냐하면 이런 변화는 개인을 넘어, 국가적, 세계적인 대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왜 돌봄이 필요할까?
기후 변화로 인한 폭염과 열대야, 혹한과 폭설, 산불, 가뭄, 홍수, 슈퍼태풍 같은 일기 현상이 더 이상 재난이 아닌 일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기후변화를 단순히 재난이 아닌 돌봄의 문제로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첫 번째 이유는 경제 선진국이 후진국보다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다. 그 예로 저자는 2022년 6월에서 9월 사이에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폭우를 든다. 파키스탄의 3분의 1을 말 그대로 물바다로 만든 이 폭우는 과학자들에 의해 그 원인이 ‘기후변화가 만든 폭염’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당시 파키스탄의 셰리 레흐만 기후변화부 장관은 영국 「가디언」지와의 인터뷰에서 “선진국이 책임져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기후변화의 주된 원인인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가 선진국이기 때문이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경제 선진국인 G20 국가들이 세계 온실가스의 79%를 배출하는데, 1959년부터 2022년까지 탄소 배출량이 0.4%에 불과한 파키스탄이 그 피해를 본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소득이 많은 사람이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다는 사실이다. 2023년 세계적인 빈곤 구호단체인 옥스팜이 스톡홀름환경연구소와 더불어 탄소 배출량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소득수준 상위 1%가 전체 탄소의 15%를, 상위 10%가 52%를 배출했다. 이에 비해 하위 50%는 단 7%만 배출했다. 상위 10%가 만든 문제를 하위 50%가 감당하는 부정의한 현실이 드러난다.
이처럼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전혀 평등하지 않으며, 특히 소득수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또한 기후변화는 사람들의 정신 건강에도 영향을 미쳐 ‘기후 우울증’이라는 병까지 만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적인 삶의 질을 향상하고, 기후변화에 책임이 있는 이들이 책임을 지는 길 중 하나인 돌봄이 필수적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인구 감소에 왜 돌봄이 필요할까?
우리나라는 2020년에 사망자가 30.8만 명, 출생아가 27.6만 명을 기록한 이래 꾸준히 총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인구 감소 속도는 통계청의 예상보다 훨씬 빨라서 미국 신문 「뉴욕타임스」에서조차 한국의 인구 감소 문제를 분석하며 ‘인구소멸’ 시나리오를 말할 정도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지나치게 많은데, 인구가 줄어들면 지구에도 좋고, 아이들도 지나친 경쟁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니 좋은 일이 아니냐고도 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은 ‘절반의 진실’에 불과하며 장기적인 견지에서, 국가의 입장에서 인구가 단기간에 급하게 줄어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를 들려준다. 
그 이유는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만든 대다수 체제가 인구가 계속 늘어난다는 전제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구 감소 상황에 대한 대비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인구가 줄어들면 경제 규모가 줄어들어 내수경제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농촌 등에서 폐가가 된 빈집이 늘어나 주변을 폐허가 되는 환경 문제도 발생한다. 
또 인구 감소는 도시와 농촌 등에 따라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서울, 경기권의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지방의 중소도시를 비롯하여 요즘은 부산 같은 대도시까지 인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