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대부분의 역사서는 대륙 문명의 관점, 그것도 주로 농경 문화권의 관점에서 세계사를 해석해 왔다.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근대 해양세계의 발전이다. 각기 고립되어 발전해 왔던 지역들이 해로를 통해 상호 소통하면서 전 지구적인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이를 통해 사람과 상품, 가축과 농작물, 혹은 다양한 생태계 요소들이 먼 바다를 넘어 이동했고, 지식과 정보, 사상과 종교가 교환되었다. 그러나 이런 변화는 단순히 교류의 수평적인 확대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접촉과 소통은 곧 갈등과 지배로 이어지고, 더 나아가서 세계의 수직적인 구조의 형성으로 진행되었다. 평화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만큼이나 무력 충돌, 경제적 착취, 환경파괴, 종교적 탄압이 일어났다. 이런 복잡다기한 과정을 통해 온 세계가 하나의 흐름 속에 합류하는 진정한 의미의 세계사 혹은 지구사(global history)가 탄생한 것이다.
15-18세기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기본 틀이 만들어진 시기이다. 이 시대의 역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 동안의 역사 해석은 ‘서구중심주의’의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근대사는 서유럽 국가들이 해외 팽창을 주도하고 헤게모니를 장악하는 세계체제의 건설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역사의 흐름은 이와는 달랐다. 근대 세계는 하나의 세력권이 지배적인 방식으로 이끌고 나간 것이 아니라 세계 문명이 함께 참여하고 상호 소통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은 불행하게도 대부분 폭력적이었고, 세계화는 곧 ‘폭력의 세계화’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그 흐름 속에서 분명 우리의 정신적.물질적 삶을 풍요롭게 만들 가능성도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이러한 시각에서 세계의 해상 팽창을 최대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살펴보려는 시도이다. 근대 세계사에 대한 새로운 조망을 통해 우리 시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