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탕과 열정으로 삶을 산화한 시인 보들레르,
시인의 민낯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산문의 진수가 펼쳐진다!
“사랑은 모순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체계
누구에게는 진정제 역할을 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흥분제다.”
시집 『악의 꽃』 한 권으로 현대 시인의 대명사가 된 보들레르(1821~1867). 그를 더 잘 알기 위해서는 운문이라는 정치(精緻)한 화장을 지워버린 그의 민낯을 살펴봐야 한다. 청년기에 『라 팡파를로』라는 소설을 출간했으며, 생애의 대부분을 문학비평과 미술평론 분야에서 활약한 보들레르의 산문은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에 이르러 정점을 이루었다.
‘천재 시인’이자 ‘저주받은 시인’ 보들레르의 시(詩)가 아닌 산문을 모은 『보들레르의 수첩』(문지스펙트럼3-006)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우열을 가리기 힘든 그의 산문들 중에서 초창기를 대표하는 단편 3편(문학비평에 해당하는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 에세이 「사랑에 대해 위안을 주는 경구들」과 「장난감의 모랄」)과 보들레르 말년 미술평론의 백미로 꼽히는 「현대적 삶의 화가」를 모았다. 여기에 고단한 삶 속에서도 보들레르에게 인생역전의 꿈을 안겨주던 연극 「술주정꾼」의 초안을 담은 편지글과, 일상의 궤적을 적은 수첩을 덧붙여 한 권의 산문 선집을 꾸몄다.
이 책을 집어 드는 독자들은 천재적이나 불운했던, 재능은 뛰어나나 훌륭한 사회인은 되지 못했던 한 저주받은 시인의 사적인 모습이나 숨겨진 뒷이야기를 기대할지도 모른다. 물론 작가의 사생활과 생활 태도도 많이 엿볼 수 있다. 보들레르의 방탕함과 낭비벽이 드러나기도 하고 젊은 보들레르의 오만함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한 시인의 미(美)와 예술에 대한 세심하고, 폭 넓은 사고다. 장난감, 화장 등 소소한 부분에까지 이르는 그의 세심한 고찰과 기발함은 그가 왜 천재인지를 보여준다.
불멸의 시집 『악의 꽃』이 출간된 지 150여 년 만에 들춰 보는 천재 시인의 민낯, 인간 보들레르의 문학과 일상, 그의 시대와 생활상이 이제 우리 앞에 은밀한 속내를 드러낸다.
정신의 귀족성을 추구하는 댄디, 샤를 보들레르
「문학청년들에게 주는 충고」에서는 25세 보들레르의 재기발랄함이 넘친다. 신예 미술평론가로 막 활동하기 시작할 무렵의 보들레르가 마치 연륜 높은 문단 선배라도 된 양, 등단 초기에 겪게 될 갖가지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준다는 이 ‘처세술 교범’은 냉정할 정도로 객관적인 ‘충고’ 형식을 취하지만, 실은 방탕한 자기 자신을 경계하기 위해 쓴 글이다.
무절제한 낭비벽으로 유산에 대한 권리를 빼앗기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시절의 보들레르는,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적인 자립이기에 일단 어떤 가격에라도 작품을 팔라고 권한다. 또 작품을 많이, 빨리 쓰기 위해 목욕할 때나 애인을 만날 때에도 늘 주제를 끌고 다니라고 충고하며, 특히 시간과 재능의 낭비인 삭제를 엄금한다. 한편 사후에나 인정받게 될 자신의 운명을 예감이라도 한 듯, 소질이 있는 사람은 시를 버리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시는 나중에 가서야 엄청난 이자소득을 가져다주는 일종의 장기예금이라는 것이다.
결국 보들레르는 성실한 기능공처럼 매일매일 집필하는 것이 영감에 도움이 된다고 역설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사에 남을 그의 시집 『악의 꽃』은 무질서한 방탕 속에 만개할 것이었다. “성공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성공들이 서서히 결집해 드러난 결과이다. 따라서 불운이란 없다!”라는 자기암시적인 외침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결국 시인은 ‘저주받은 시인’이란 수식어를 남겼다.
「사랑에 대해 위안을 주는 경구들」은 보들레르가 25세 때 작품으로 스스로를 사랑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으로 자처하고 있다. 청년 보들레르는 스탕달의 『연애론』을 본뜬 책 『애인에 관한 문답법』을 쓰고자 하는데, 이 글은 그 초안이었던 셈이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이런 집필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사랑은 모순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체계라[……] 누구에게는 진정제 역할을 하지만, 다른 이에게는 흥분제인 셈이다” “뚱뚱한 여인이 때로 매력적인 난봉의 대상이 된다면, 마른 여인이란 어두운 관능의 깊은 우물이다” “경멸과 사랑은 오십보백보” “전쟁과 유희는 사랑의 경우 전략으로만 허용되어야 한다” 등의 경구들은 따로 떼어놓고 보더라도 재치와 유머로 보석처럼 빛난다.
「장난감의 모랄」은 도덕이나 윤리를 지칭하는 무겁고 철학적인 단어 ‘모랄’과 아이들의 놀잇감에 불과한 ‘장난감’이 결합된 부조화로 단번에 눈길을 끈다. 이 글을 보고 우리는 장난감을 소재로 인간 본성과 사회적 관계까지 관통하는 보들레르의 통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보들레르에 따르면 장난감 놀이를 통해 자신의 상상력을 만족시키는 아이들만의 재능은 유년기의 예술적 개념 형성의 한 면을 보여준다. 장난감이란 어린아이의 예술에 대한 최초의 입문인 셈이며, 예술의 첫번째 실현인 것이다. 보들레르에 따르면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주지 않으려는 부모나, 장난감이 고장 날까 애지중지하는 부모는 모두 “시간을 시적(詩的)으로 보내는 방법”을 전혀 모르는 안쓰러운 사람들이다.
또한 쥐가 든 상자를 휘두르는 거리의 더러운 아이와 자신의 멋진 장난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쥐에만 관심을 가지는 부잣집 아이의 대면 장면에서는 평등, 박애주의 등을 주장하나 빈부격차를 영속시키는 사회를 신랄하게 비꼬며, 웃음이라는 생리적 평등이란 결국 정신적 동일성의 육체적 표지일 수 있다는 가능성도 제시한다. 또한 쥐를 가지고 노는 가난한 아이는 다름 아닌 놀이를 하는 예술가이므로, 고도의 상상력과 시인의 본능으로 시꺼멓고 추한 것에서조차 아름다움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시인의 원형(原形)이라고 한다. “천재란 의도적으로 되찾은 어린 시절”이라는 시인의 말에 공감한다면, 장난감은 나름의 미학을 지닌 예술품으로서 수용될 수 있겠다.
「현대적 삶의 화가」는 일간지에 연재한 미술평으로 독창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주목받지 못하던 풍속화가 콩스탕탱 기를 다루고 있지만, 실은 ‘현대성’과 ‘상상력’으로 요약할 수 있는 보들레르 자신의 시학을 일목요연하게 담아낸다. 총 13장 중에서 논지의 핵심을 이루는 제4장 「현대성」, 제9장 「댄디」, 제11장 「화장 예찬」을 발췌했다.
보들레르는 예술에 있어 영원하고 불변하는 반쪽에 상대적인, 유행처럼 일시적으로 스쳐가는 나머지 절반을 「현대성」이라 정의하며, “미(美)는 영원하고 보편적인 요소와 상황적이고 상대적인 요소로 구성되는데, 후자의 예가 그 시대의 풍속을 열정적으로 보여주는 유행이다. 따라서 모든 의상은 당대(當代)의 모럴이고 미학이다”라고 일갈한다. 예술에 있어서 일시성의 요소를 ‘현대성’으로 최초로 정의한 보들레르는 걸작을 만들어내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이란 바로 이런 상황적인 요소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댄디」, 세련된 의복과 우아한 태도를 지닌 멋쟁이를 가리키는 영어 댄디(dandy)에서 비롯한 이 개념은 후일 프랑스에서는 대중의 속물주의 취향에 반(反)하는 정신적 귀족주의로 받아들여졌다. 사실 ‘반대와 저항’ 정신의 반영인 보들레르의 댄디즘은 당시 득세한 시민계급과 밀물처럼 모든 것을 일시에 평준화해버리는 민주주의에 처연히 대항하는 반(反)속물주의와 반(反)대중주의의 표현이기에, 댄디는 고고하고 독창적이어야 한다. 보들레르는 비록 인생의 대부분 시간 동안 물질적으로 부유한 댄디는 아니었지만, 언제나 정신의 귀족성을 추구하는 댄디이자 그 옹호자였다.
「화장예찬」에서 시인은 화장을 주제로 여성관과 인공미에 대해 논한다. 성악설주의자 보들레르에게 있어 자연은 이기적이고 사악한 인간 본성을 의미하기에 보들레르는 초(超)자연적 인공미를 추구하는 화장술을 극찬한다. 19세기 중엽 세계적인 대도시로 성장 일로에 있던 파리. 도회지의 온갖 추함을 감추고 있는 건물의 화려한 정면처럼, 여성은 한껏 꾸며져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