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솔직한 본성으로 집필한 마광수의 첫 대표에세이!
이 책은 마광수 교수의 인문교양이 잘 드러난 문화 에세이다. 사랑, 신념, 문학과 교육, 그리고 문화에 관한 마교수의 다양한 관심사가 잘 드러난 대표적인 에세이다. 우리 사회의 이중적 양면성을 극복하기를 바라는 저자의 바람이 밝고 경쾌한 에세이로 잘 표현돼 있다.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는 마교수의 철학이 잘 표현된 핵심단어다. ‘본능에 솔직하고 싶다’는 그의 생각을 압축한 대표언어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본성을 거스리지 않는 사람’이 바로 ‘야한 사람’이라는 저자의 생각을 편안한 에세이로 만날 수 있다.
▶ 출간의의
이 책은 마광수 교수가 베스트셀러 작가로 신고식을 치른 대표에세이다. 그러나 독자들은 제목의 강한 끌림으로 책의 내용이 문화에세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가 많다. 심지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가 소설인 줄로 오해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다. 저자는 1989년 출간 당시 100만부가 팔렸다는 책의 유명세가 아닌 오로지 글의 내용으로서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싶다는 의중을 강하게 밝힌다. 마광수 교수가 글에서 오래전 밝혔던 문화사적 주장들이 지금에 와서 그대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고, 시대를 앞서간 지식인의 건강한 생각을 다시 한번 재조명하는 데 출간의의가 있다.
도덕보다는 본능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획일보다는 다원을!
마교수는 마음이 야하다는 것은 본능에 솔직하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가 강조하는 야한 여자의 의미와 같은 맥락이다. 저자는 특히 우리 사회의 문화풍토가 너무 닫혀 있다며 이는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언제나 과거에만 집착한 결과라고 밝힌다. 그 결과로 문화적 민주화와 국민 개개인의 행복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중적 양면성을 극복하라고 조언한다. 스스로의 본성에 천진해질 필요가 있고, 또 먼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도덕보다는 본성을, 이성보다는 감성을, 획일보다는 다원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또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사는 결정적 요인이 일과 사랑, 놀이라고 제안한다.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만 할 게 아니라 적당히 놀 줄 아는 미덕을 가지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식사가 더 맛있는 이유는 뭘까
「결혼과 성」에서 마교수는 공자식 문단법으로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행복한 부부생활을 위한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를 빼도 되는 것이 대화, 다음으로 즐거운 식사,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원만한 성생활’이라고 강조한다. 저자의 이런 생각의 중심에는 성욕이 있어야 식욕이 충족될 수 있다는 게 깔려 있다. 같은 식사를 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나누는 식사는 꿀같이 달게 느껴지고, 미운 사람과 같이하는 식사는 아무리 훌륭한 요리라도 배탈이 나기 쉽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기분’을 ‘사랑’으로 ‘미각’은 ‘성적 쾌감’으로 비유한다. 이는 곧 생명활동에 일차적으로 중요한 식욕 역시 성욕의 도움을 받아야만 충족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끊임없이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라
저자는 교육에 대해서도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자신이 못 이룬 것을 자녀에게 기대하는 것만큼 나쁜 태도는 없다고 질책한다. 지나치게 엄격한 교육도 나쁘지만 지나치게 애정을 쏟아붓는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긍정적인 시선을 자식에게 보내는 것이야말로 성공적인 가정교육의 비결이라고 제안한다. 자녀에게 커다란 기대를 걸지 말고 욕심 없이 무조건 잘 돌봐주는 것으로 자녀를 지켜보라는 얘기다.
명예욕이 식욕과 성욕보다 더 추악하다!
저자는 『맹자』를 예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화두를 끌어낸다. 특히 육체가 정신을 지배한다고 보는 고자의 생각을 빗대어, 그 한 예로 ‘인류의 비극이 모두 다 정신주의적 생활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또한 자연을 정복하기 위해 생태계의 질서를 허물어뜨린 이면에는 결국 인간이 동물보다 우월하고, 그 우월성은 인간의 정신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오만한 태도라고 평한다. 수많은 종교전쟁, 중세기 암흑시대의 비극, 이데올로기간의 피나는 싸움에서 비롯한 끔찍한 희생 등이 결국 모두 다 정신주의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결국 정신주의의 최종목적인 명예욕이야말로 오히려 식욕과 성욕보다 더 더럽다고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보다 실질적인 인생관, 육체적 본성을 은폐시키지 않는 솔직한 생활태도를 제안한다.
무거운 인생의 짐을 벗기 위해서는 ‘역설의 진리’를 인정하라
저자는 안데르센 동화를 예로 섭세론을 펼친다. 마교수는 힘든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그래야만 속물근성으로부터 우선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어느 범위까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허용하여 받아들이냐는 것인데, 이에 대해 저자는 일정한 기준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신의 존재를 지나치게 높여서도 혹은 지나치게 낯춰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교육을 받고 안 받음이 선량함의 유무와 상관없음을 이 사회가 말해주듯, 오히려 교육을 받으면서 늘어나는 것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허망한 야심과 자신을 위장하려는 간특한 지성이라는 것이다. 부조리한 현실을 비방만 할 것이 아니라, 세속적인 모든 기존율을 거부해보라고 말한다. 무거운 인생의 짐을 벗기 위해서는 ‘역설의 진리’를 인정하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가난해질수록 행복하다’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