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김우창
288p
구매 가능한 곳
별점 그래프
평균3.8(6명)
평가하기
3.8
평균 별점
(6명)
‘돌베개 석학인문강좌’ 시리즈 열아홉 번째 책. ‘인간은 성장해서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임을 ‘자기 형성’이라는 주제로 개괄한 이 책은, 인간의 자기 형성의 문제이면서 그것이 지시하는 알 수 없는 존재의 바다에서의 항해에 관한 문제를 논리적이고 견고한 사유를 통해 보여준다. 학문, 예술, 정치, 자유, 행복, 성찰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견해를 제시하며 우리 지성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 김우창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자기 형성’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자기를 돌보는 방법’은 무엇인지, 현대 사회가 받아들이는 기본 명제 중의 하나인 ‘행복’에 대한 견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여러 갈림길과 표지판이 있을 ‘곤학(困學)의 역정(歷程)’은 어떠한지 등을 고대에서 현대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철학자들을 끌어들여 다각적으로 조명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개인과 공동체적 역사가 만나는 깊고 신비한 공간인 ‘기이한 생각의 바다’. 이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자체에 수반되는 ‘마음의 모험’ 속에 있는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가 그 자리 그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현실과 우주로 나아가는 운명을 가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별점 그래프
평균3.8(6명)

저자/역자

목차

책머리에 1장 | 사회 속의 개인에 대하여 1 서문: 자기 형성에 관하여 / 2 사회 속의 나 2장 | 자기를 돌보는 방법에 대하여 1 개체와 그 환경 / 2 위기지학 / 3 자기를 돌보는 방법 3장 | 행복의 추구에 다하여 1 금욕과 행복 / 2 행복의 공적 공간 / 3 공적 행복 / 4 공적 행복의 공간, 사회 문제, 권력의 추구 5 자연과 원시의 행복 / 6 단독자의 우주적 행복 / 7 우주적 질서와 실존의 변증법 4장 | 곤학의 역정 1 진정성의 결심 / 2 곤학(困學)의 역정 / 3 마지막 말을 대신하여: 나그네로서의 인간 종합토론 | 김우창 선생의 『기이한 생각의 바다에서: 자기 형성과 그 진로, 인문과학의 과제』에 대한 토론문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그 자신에로의 길이고, 길을 시험하는 것이고, 하나의 길을 시사하는 일이다. _헤르만 헤세 ‘인간은 성장해서 비로소 완성되는 존재’임을 ‘자기 형성’이라는 주제로 개괄한 이 책은, 인간의 자기 형성의 문제이면서 그것이 지시하는 알 수 없는 존재의 바다에서의 항해에 관한 문제를 논리적이고 견고한 사유를 통해 보여준다. 학문, 예술, 정치, 자유, 행복, 성찰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견해를 제시하며 우리 지성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 김우창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자기 형성’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자기를 돌보는 방법’은 무엇인지, 현대 사회가 받아들이는 기본 명제 중의 하나인 ‘행복’에 대한 견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여러 갈림길과 표지판이 있을 ‘곤학(困學)의 역정(歷程)’은 어떠한지 등을 고대에서 현대까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양한 철학자들을 끌어들여 다각적으로 조명한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개인과 공동체적 역사가 만나는 깊고 신비한 공간인 ‘기이한 생각의 바다’. 이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자체에 수반되는 ‘마음의 모험’ 속에 있는 우리에게, 자신의 존재가 그 자리 그때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다 넓은 현실과 우주로 나아가는 운명을 가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영문학자, 공공 지식인, 문명비평가, 문화사가, 문학이론가, 평론가, 철학자로서 인문/사회/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통합적 이해, 가늠하기 어려운 사상의 넓이와 깊이로 한국 인문학의 거장으로 불리는 김우창 교수가 쓴 ‘석학인문강좌’ 시리즈 열아홉 번째 책이다. 자기 형성: 공간을 넘어 시간의 지속 속에 일정한 형식을 만들어 내려는 것! 사람은 태어났을 때 완전한 존재가 아니다. 육체적으로도 그렇고,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그래서 육체와 지능 어느 쪽이나 부모 또는 다른 사람의 보육에 의존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단순히 보육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으로 완전함을 갖추어 나간다. 이 같은 ‘인간의 미완성’은 약점이고 방황과 오류의 원인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게 한다. 인간은 생존의 필요 때문에 자기 나름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는데, 생존하기 위해서는 삶의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이 살아 나가야 할 세계에 대한 지적 이해다. 궁극적으로 지적 이해는 세계 전체의 원리에 일치해야 하며, 세계와의 바른 관계가 없이는 만족할 만한 자기 형성이 이루어질 수 없다. 또한 개인 차원의 사회를 이해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야말로 자기 형성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말로 옮기면, “개인의 개인됨이 좁은 자기에로의 침잠을 말한다고 할 수는 없다. 개인은 독자적인 존재이면서 보다 큰 바탕에 열려 있음으로써만 참다운 가치를 갖는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기 형성은 개인에 한정되거나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개인의 실존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인 ‘보편적 진리’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올바른 자기 형성의 추구는 잠재적으로 자아실현의 만족과 행복을 가져오고,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의 이상을 깨닫게 한다. 또 세계 전체에 대한 비전은 곧 개인의 지적 노력의 결과이며, 개인의 지적 노력은 전 인류의 지적 발전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워즈워스의 말을 빌려, ‘기이한 생각의 바다를 항해하는’ 인류적인 정신적 모험의 일부라고 했다. 그리고 이 ‘기이한 바다’에서는 개인의 모험들이 합류해 인류 전체의 모험이 전개된다. 창조적 작업인 예술 작품, 과학적 발견, 제도적 실험 등은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거대한 실험들인 것이다. 교육 역시 사회적인 계획으로부터 비롯된 거대한 실험 중의 하나다. 자기 형성은 사회적 교육제도와 연결되면서 별도로 개인 차원에서 배움을 적극적으로 만드는 노력을 해야만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자기 형성의 동기는 반드시 신성한 것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니면서도 보다 높은 존재를 향해 가려는 인간 본유의 충동에 관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자기 형성과 자기실현과 삶의 완성을 향하는 의지가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중요한 요소를 만들어 낸다. 이처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의 자기 형성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깊이 있게 탐구한다. 행복 추구의 변증법: 진정한 행복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융합한다 자기를 돌본다는 것은 좋은 옷을 입고 몸가짐이 볼만하다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돌보고 사회에 필요한 의무를 다하며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을 일컫는다. 푸코는 “자기 돌봄의 기술의 핵심은 금욕의 단련”이라고 말했다. 금욕이 자기 형상을 갖추고 즐거운 삶을 살기 위해 꼭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자기 일관성을 유지하고 자기의 모습을 일정하게 갖추는 데는 이처럼 어느 정도의 금욕이 필요하다. 이는 이 책의 주제인 ‘자기 형성’이라는 말 자체에 이미 금욕 또는 자기 한정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자기 형성에 지나치게 집중함으로 인해 ‘행복’이 억압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 안에 행복을 위한 별도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행복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며, 현대 사회가 받아들이는 기본 명제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삶 전체에서 행복이 어떻게 존재하는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는 문제다. 특히 현대에 와서 행복은 근대 이전의 시대에 비해 더 동적이고, 더 적극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설사 최후의 행복은 수동적이고 조용한 평정의 상태를 가리킨다고 해도,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힘을 들여 얻어 내야 하는 한결 역동적인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 요즘의 사정이다. 그래서 저자는 행복이 ‘행’과 ‘복’의 결합이라고 할 때, 이 둘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발견되고 새로 설정되어야 할 조건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행복은 사적인 것인가? 그래서 엄숙한 공적 의무에 대립되는 것인가? 아니면 공적인 것으로서, 사적인 것을 철저히 배제해야 하는 것인가? 행복이 모든 사람이 원하는 본능적인 문제라 할지라도, 행복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개인에 대한 의의는 달라질 것이다. 행복은 내 감정에 의해 생기는 ‘사적인 행복’과 사람들이 모여 이성을 가지고 나름의 상호 작용을 하는 과정에서 갖는 ‘공적 행복’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진정한 행복은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하나로 융합한다”고 말한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미국 혁명, 프랑스 혁명 등을 다룬 『혁명론』(On Revolution)에서 18세기 정치 철학에 많이 등장했던 ‘공적 행복’이란 용어를 사용한 바 있다. 저자는 이 용어가 사적인 의미의 행복과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사적인 의미의 행복에 공적인 의미의 행복을 편입한 것으로 해석했다. 또한 어떤 경우에든 개인 심리를 경유하지 않고는 행복이 별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공적 행복을 위한 의무 역시 강제력을 뜻하지 않으며, 더 나아가 행복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장 자크 루소(Jean Jacques Rousseau)는 공적 공간을 행복의 공간이 아니라 ‘불행의 공간’으로 보았다. 대체로 인간의 사회적 만남에서 태어나는 사회체제는 부패하고 타락한 체제이기 마련이며, 이 타락이 개인의 행복을 크게 왜곡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루소에게 있어 행복한 인간의 이미지는 공적 공간에서 공적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숲 속을 거니는 고속한 산책자다. 이렇듯 아렌트의 행복론과 루소의 행복론은 강조점이 매우 다르다. 하지만 사적인 행복과 공적인 행복이 필연적으로 관계하고 있으며, 상호 보완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견해를 보인다. 이 책은 이처럼 다른 시각의 행복과 그 행복이 구성되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
  • 데이터 출처
  • 서비스 이용약관
  • 개인정보 처리방침
  • 회사 안내
  • © 2024 by WATCHA, In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