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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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2,500년 전 인류 문명을 만든 ‘생각의 도구들’을 지금 이 시대에 불러내고 싶었다!!” ▶ 내용 소개 다시 ‘생각의 시대’가 돌아왔다!! ‘한국의 움베르트 에코’ 김용규,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를 제시하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한 젊은이가 과학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머나먼 독일로 떠났다. 그리고 수년간의 유학생활 중 어떤 이유에서인가 삶의 방향이 바뀌었다. 그는 과학철학 대신 독일의 프라이부르크대학과 튀빙겐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만났다. 서양 문명을 이루는 두 기둥을 부여잡고 인류의 지혜를 탐구했다. 수년간의 유학생활이 삽시에 지나갔다. 학위를 마치고 귀국한 그는 대학교수의 길을 가지 않았다. 대신 청파동 자택의 서재에 칩거했다. 그리고 공부와 저술에 매진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그는 유려한 문체와 깊이 있는 내용의 지식소설 《알도와 떠도는 사원》《다니》를 대한민국에 처음으로 선보였다. 이후 《영화관 옆 철학 카페》《데칼로그》《타르코프스키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차례로 출간됐다. 독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조금씩 그의 이름이 책깨나 읽는다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공부는 더 폭넓어지고 깊어졌다. 그런 만큼 그의 글쓰기는 곰삭았고 친절해졌다. 강단 철학이 갖는 협소함과 현학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철학 카페에서 문학 읽기》,《철학 통조림》시리즈, 《설득의 논리학》 등의 책들은 조용히 10만 부씩 팔려나갔다. 고대 그리스 문명부터 중세의 신학, 근현대의 철학, 최신의 과학 이론에 이르기까지 그가 섭렵하는 지식과 학문의 세계는 경계가 없었다. 어디선가 ‘통섭’과 ‘융합’을 부르짖기 전에도 이미 그는 학문의 각 영역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은 그를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움베르토 에코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부터 대중문화, 기호학, 최신 과학과 기술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지식을 쌓고 그것을 바탕으로 《장미의 이름》이라는 지식소설까지 써낼 만큼 경이로운 글쓰기를 보여줬던 것처럼 김용규 역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 별명에 값하기라도 하려는 듯, 김용규는 서양의 기독교 전통을 이루는 ‘신학’을 정리했다. 893쪽짜리의 방대한 책 《서양 문명을 읽는 코드 신》이 결과물로 남았다. 작년(2013년)에는 고 이병철 회장이 남긴 질문에 대한 인문학적 대답을 담은 《백만장자의 마지막 질문》을 출간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에서 대학 교단에 서지 않는 철학자와 신학자를 눈 밝게 찾아내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를 아는 사람은 ‘한국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추앙하지만, 아직 그의 이름을 생소해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렇게 30여 년의 세월은 어느 틈에 흘러갔고, 독일로 청운의 꿈을 안고 떠났던 젊은 청년은 이제 예순을 넘긴 나이가 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서재에서 성찰을 멈추지 않았다. 인류 문명이 나아가고 있는 길에 주목했다. 그가 보기에 인류 문명은 바로 지금 어떤 거대한 벽과 마주하고 있다. 그 벽은 다름 아닌 ‘근대적 이성’의 무능함과 폭력성이다. 동일률과 모순율을 기반으로 태어난 근대적 이성은 합리주의와 계몽주의에 의해 견고해졌고 과학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치며 신격화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는 제국주의와 전체주의의 폭력이었다. 문명인과 야만인, 백인과 유색인종을 구별한 뒤, 미개인으로 분류된 이들을 계몽하거나 학살하려 했던 것이 바로 ‘근대적 이성’이었다. 전지전능할 것 같았던 근대적 이성은 무능했다. 인류에게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듯했지만 아우슈비츠를 내밀었고, 정보와 지식을 폭증시켰지만 정작 필요한 진실과 지혜를 제공하지 못했다. 인류에게 보편적이면서도 거시적이고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을 제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이런 거대한 벽 앞에서 인류는 어떻게 길을 찾아야 하는가. 김용규는 오랜 모색 끝에 한 가지 해결책에 도달했다. 동일성에 기반을 둔 ‘난폭하고 완고한 이성’이 아니라 유사성에 기반을 둔 ‘부드럽고 유연한 이성’을 우리 인류는 알고 있었던 것. 기원전 8세기에서 5세기 사이, 그리스인들은 수학뿐 아니라 문명 전반에 있어서 이집트인보다 못했고, 건축과 천문학에서는 그들보다 800년이나 전에 살았던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에게도 뒤처졌다. 법률과 문학에서는 1,200년 전의 수메르인들보다도 훨씬 못 미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던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그리스인들을 단박에 황금기로 이끌며 합리적인 지식과 창조적인 예술, 민주적인 사회제도를 생산하게 하고, 마침내 서양 문명, 아니 나아가 인류 보편의 문명을 창조하게 만들었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지혜가 있었다. 김용규가 찾아낸 해답은 바로 그 지혜, ‘생각’이었다. 이제 ‘생각’을 공부해야 하는 시대다!! 잠시 현재를 살펴보자. 우리는 지금까지 ‘공부한다’고 하면 인류가 누적적으로 보존해온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 이해해왔다. 밤늦도록 책상에 앉아 그 지식을 머릿속에 넣기 위해 공부해야 했다. 누구도 지식을 갖고 태어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무지의 상태에서 시작해 자신이 사는 시대가 도달한 지식수준에 올라서야 했다. 이를 잘해낸 개인이 경쟁에서 승리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도태됐다. 그런데 정보화 혁명 이후 사정이 바뀌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지식이 불어나는 속도도 점점 빨라지고 있다. 무엇을 배우고 익힐 것인지조차 합의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이제는 한 사람이 평생을 죽도록 공부해도 다 습득할 수 없을 정도로 지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또한 그 지식을 활용하는 수단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인터넷에 누적되어 있는 지식은 스마트폰 등의 디지털 기기를 통해 즉각적으로 검색할 수 있게 됐다. 그에 따라 ‘백과사전적인 지식을 머릿속에 보유하고 있는 것’의 가치는 폭락했다. 이는 어쩌면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인간의 ‘힘’은 오래전 ‘가축’이나 ‘기계’가 대체했다. 자동차 등의 탈 것이 인간의 걷거나 뛰는 능력을 대체했고 기중기나 도르래가 드는 능력을 대체했다. 인간의 계산능력이나 정보처리능력은 이미 고성능 컴퓨터가 대체한 지 오래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인간의 지식 축적과 사용을 대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생각의 시대』의 저자 김용규는 이에 대해 단순한 해법을 제시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전망과 판단을 제공해주었던 생각의 도구들을 익히고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 ‘생각의 도구’들을 알면 엄청난 속도로 불어나는 지식을 패턴화해서 파악하고 활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시기인 ‘축의 시대(the Achsenzeit)’가 ‘생각이 탄생했던 시기’였다고 말한다. 그 시절 호메로스와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자들은 약 400년에 걸쳐 놀라운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해냈다. 메타포라, 아르케, 로고스, 아리스모스, 레토리케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우리말로는 차례로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로 번역되지만, 의미가 상당히 다르다. 그리고 그 도구들을 통해 그리스의 황금기가 태동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인류 문명이 만들어졌다. 그 ‘생각의 시대’에 고안된 ‘다섯 가지 생각 도구’들은 긴 세월을 지나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정보의 홍수 속에서 다시금 그 쓰임새를 요청받고 있다. 수많은 기업이 남다른 발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목마르게 고대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인 LG에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아이디어LG(www.idealg.co.kr) 사이트를 만들어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다. 구글에서도 솔브포엑스(Solve For X)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인들의 ‘생각’을 빌리려 하고 있다. 기업들은 그만큼 ‘생각’에 굶주려 있다. 또한 우리 시대를 누가 이끌어가고, 어떤 사람이 부와 명예를 누리는지만 봐도 ‘생각’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