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현대적인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하나
인간 내면에 숨겨진 의심과 눈먼 환상이 부른 숙명적인 비극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세계 문학의 절정
“오, 장군님, 질투심을 조심해요! 그것은
희생물을 비웃으며 잡아먹는 푸른 눈의 괴물이랍니다.”
베니스의 흑인 장군 오셀로는 공국의 원로 브라반쇼의 딸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의 아버지는 오셀로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두 사람의 관계를 반대하지만, 둘은 끝내 결혼한다. 때마침 투르크 함대가 사이프러스 섬을 침공하고, 오셀로는 섬을 지키러 아내와 함께 떠난다. 한편 오셀로의 신임을 받으면서도 그를 시기하던 부하 이야고는 갈망하던 부관 자리를 캐시오에게 빼앗긴 데 앙심을 품고 오셀로에게 데스데모나가 캐시오와 밀통하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이야고에게 속아 넘어간 오셀로는 질투에 눈이 멀어 데스데모나를 죽인다.
결국 모든 것이 부하의 계략이었음을 알게 된 오셀로는 죄책감에 목숨을 끊는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한 편으로, 오늘날까지도 가장 자주 상연되는 희곡 중 하나인 이 작품은 실재와 겉모습 사이의 간극에서 빚어진 오해가 초래한 비극적인 파국을 다루고 있다. 신뢰와 명예, 가부장적인 정치 상황과 인종 문제 등 많은 주제와 다양한 해석을 함축하고 있는 영원히 현대적인 걸작이다. 기존에 수많은 번역본이 있지만, 최종철 교수의 번역은 셰익스피어 전공자인 역자가 원문의 운문 형식을 최대한 살려 번역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셰익스피어 학자 최종철 교수 최초로 운문 번역 시도
셰익스피어의 희곡은 운문이다. 그리고 등장인물의 신분과 역할 및 감정 상태에 따라서 그 운율이 다르다. 고귀한 신분이며 바른 정신을 지닌 인물의 대화체는 운문의 형식이지만, 비천한 신분이거나 정신이 혼란스러울 때의 대화는 리듬이 없는 산문이다. 최종철 교수는 이러한 셰익스피어의 의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 문체를 살리는 데 가장 주력하였다. 정부의 높은 신분인 오셀로와 이야고의 대사를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오셀로 번쩍이는 칼들을 거두도록 하여라, 밤이슬에 녹슬지 않도록. 의원 어른, 무기보단 나이로 명령을 내리시면 더 나을 것입니다. (1막 2장) 이야고 (방백) 저 녀석이 그녀의 손바닥을 잡는구나. 그래 잘했어, 속삭이라고. 그런 조그만 거미줄로 카시오란 커다란 파리를 사로잡을 테니까. 그래 그녀에게 미소를 지어야지, 그러라고, 너의 예절을 미끼로 너를 낚아챌 테니까. (2막 1장)
즉 오셀로의 대사는 3‧4조의 기본 운율을 지키면서 한 행의 글자 수를 16자로 제한하였다. (물론 번역상 발생하는 부자연스러움을 피하기 위해 18자까지 늘리기도 하였다.) 영어에는 강세가 있어서 운문과 산문의 구별이 뚜렷하며 그만큼 작가의 의도가 잘 나타난다. 셰익스피어를 ‘언어의 마술사’라고 부르는 까닭은 영어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리듬인 ‘약강 5보격 무운’ 형식을 기막히게 이용했기 때문이다(강세가 없는 음절 다음에 강세가 있는 음절을 나란히 다섯 번 배치, 각운은 사용하지 않음). 따라서 번역 작품을 무대에 올렸을 때 셰익스피어의 언어를 그대로 살리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최종철 교수는 이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셰익스피어 언어의 묘미를 한글에서 살렸으며, 이러한 점에서 본격적으로 ‘4대 비극’을 완역한 최초의 셰익스피어 학자라고 할 수 있다. 즉 원문의 리듬을 최대한 살리는 형식을 취하되, 현대 무대 대본에 알맞은 어휘를 선택하였다.
지금까지 가장 많이 공연되고 있는 ‘세계문학의 절정’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무엇보다도 무대를 위한 희곡이었다. 따라서 대사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쓴 만큼, 최종철 교수는 이번 작업에서 연극 공연에 부적합했던 기존 번역과는 달리 셰익스피어가 의도했던 극 효과를 최대화하는 데 주력하였다. 셰익스피어 극 작품의 위대함은 무엇보다도 시적 음악성에 있다. 하지만 영어와 우리말의 근본적인 차이 때문에 기존 번역에서는 이 음악성을 살리려는 시도가 없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음악성은 우리에게 없는 악기를 억지로 만들어 해결할 성질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는 악기로 그의 음악을 연주해 볼 때 그 진수가 전달된다는 것이 최종철 교수는 견해이다. 특히 최종철 교수가 3‧4‧3‧4조를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단한 이유는 그 열네 자에 들어가는 자모와 셰익스피어의 ‘5보’에 들어가는 단어들의 자모의 수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한번 호흡으로 한 줄의 시행에서 가장 편안하게 전달할 수 있는 음과 의미의 전달량은 영어와 한국어가 비슷하다는 점을 확신한 것이다. 또한 어순을 자주 바꾼 것은 우리말에서 문장이 주로 ‘―다’나 ‘―요’로 끝남으로 인한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가장 현대적인 작품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햄릿』, 『리어왕』, 『맥베스』와 함께 『오셀로』는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며 따라서 셰익스피어의 작품 및 당대의 극을 연구하는 데 또 하나의 커다란 축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오셀로』가 다른 세 비극과 구별되는 이유는 이야고의 역할 때문이다. 『햄릿』의 클라우디우스 왕이나 『리어 왕』의 충실치 못한 딸들, 『맥베스』에서의 혼령 모두가 그들 나름대로 악하긴 하지만 이야고처럼 악마와 같은 역할을 즐기진 않는다. 이야고는 플롯을 형성하는 데 열쇠를 쥔 인물로서 다른 인물들과 모두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오셀로의 내면에 숨어 있는 본질을 끄집어낸 장본인이다. 이 작품에서는 ‘보이는 것’ 즉, 실재와 겉모습 사이의 갭이 가장 중요한 주제를 형성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최종철 교수의 「작품 해설」이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신뢰와 명예, 가부장적인 정치 상황과 인종 문제 등 많은 주제와 다양한 해석을 함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