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유연희의 세번째 소설집 『일각고래의 뿔』은 그의 전작 『무저갱』(북인, 2011), 『날짜변경선』(산지니, 2015)과 더불어 바다를 배경으로 한 소설로 채워져 있다. 바다를 향한 작가의 관심에는 국내 최대의 항구도시인 부산에 연고를 둔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집요함이 엿보인다.
바다를 무대로 한 만큼 『일각고래의 뿔』에 실린 소설들에서 뭍을 떠난 뱃사람들의 항해는 곧잘 인생행로에 비유되곤 한다. 광막한 바다 위에서 어둠과 시커먼 파도를 헤치고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등대의 불빛을 따라 뱃머리를 돌리는 일이 어찌 인생과 다를 수 있을까. 더욱이 “태어난 땅에서 가족들과 살다 죽는 것은 옛말”이 된 시대에 방랑은 통과의례이고, 개척 정신은 필수 덕목인지도 모른다. 불법 포경 단속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간 인물들의 이야기인 「일각고래의 뿔」을 포함하여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기 어떤 이유로든 고향을 떠나 바다와 이국의 땅을 헤맨다. 그들은 여행을 통해 잠깐의 모험과 도전을 꿈꾸기도 하고(「마지막 테라스 만찬」), 휴양지에서 맞닥뜨린 대자연의 공포 앞에 주눅이 들기도 하며(「송어회는 이 인분」), 이국땅에서 풍토병과 향수에 시달리기도 한다(「블루 시드」). 방랑과 정주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이 인물들은 안정된 생활을 바라는 욕망과 더 나은 삶을 위한 도전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 삶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유연희의 소설에서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오랫동안 바다가 전형적인 남성들의 공간이었다는 점일 것이다. 루카치가 근대소설을 두고 “성숙한 남성의 형식”이라고 서슴없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모험을 통해 자기 내면의 진정성을 찾는 근대적 주체란 곧 남성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근대적 주체의 진정성이 바다와 같은 혹독한 세계와의 대결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선원들의 강인한 육체에 새겨진 남성성은 근대적 주체의 필수 조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배의 이름을 여성의 이름으로 지어온 뱃사람들의 전통에서 “여자를 그리워하는 뱃사람들의 허기와 갈증을 이용해 항해의 고단함을 무마시키려는 의도”(「무저갱」, 『무저갱』)를 발견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렇듯 오랫동안 모험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여성은 고향을 떠나 방황하는 근대적 주체들이 귀향할 장소를 상징하는 낭만적 대상으로 재현되곤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다라는 모험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남성적 플롯이 유연희의 소설에서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지를, 여성 인물들이 그 플롯 속에서 어떤 전망을 얻게 되는지를 보다 적극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송어회는 이 인분」의 작중화자 ‘나’는 시력뿐만 아니라 청력까지 나쁜 초로의 여성이다. ‘나’는 “내가 접하지 못한, 상위 조류의 삶과 사람”을 원한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나’가 가진 독특한 인생관과 더불어 딸에게 갖는 양가적 감정일 것이다. ‘나’는 자신과 달리 잘 듣고 잘 보는 딸이 신통한 한편, 딸의 젊음과 건강함에 시기심마저 느끼는 듯하다. 이러한 ‘나’의 ‘조류론’에는 삶의 주체성보다는 더 나은 삶을 향한 단순한 열망만이 엿보일 뿐이다. 지난해 여름, 발리로 여행을 떠나는 딸을 따라나설 때만 해도 딸의 조류에 편승해보려는 마음 같은 건 들지 않았다. 그곳에서 지진을 겪으며 “재난 상황에서 장애자급 약자인 엄마는 혹”이라는 것을 경험한 이후 ‘나’는 부쩍 상위 조류의 삶을 동경한다. 동경이란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체념의 정서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남성에게 배움과 성장의 플롯인 모험은 여성에게는 시련과 체념만을 깨닫게 해주는 것일까. 그러나 이 소설의 결말은 뜻밖에도 “풋풋하고 청량한” 분위기가 감돈다. 자신이 견딜 수 없을 것임을 알고 있지만, 일단은 계획부터 해보는 성격인 이 인물은 딸이 귓가에 속삭인 노래에서 문득 마음의 창 하나가 열리는 것을 느낀다. 그녀가 여생을 어떻게 살아갈지는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길을 걷기로 한 것은 분명하다. 그 여정은 혹독한 세계와 자아 사이의 아이러니를 교정하는 남성적 방식이라기보다는 “송어회는 이 인분!”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몫을 챙길 줄 아는 자기 돌봄의 방식일 것이다.
그러한 길을 막 걷기로 한 여성의 모습을 「마지막 테라스 만찬」의 마지막 장면에서도 엿볼 수 있다. “관광이나 휴식이 아닌 여행을 하고 싶어. 그러니까 도전을 하고 싶다고.” 이렇게 말했던 남편을 따라 함께 여행을 떠나온 ‘나’와 그녀의 친구 민희는 마지막 만찬을 즐긴 뒤 각자의 길을 떠나려는 듯하다. 도전을 하고 싶다던 남편은 누군가 짜놓은 안전한 일정을 지키기에 급급하고, 민희는 낯선 이국땅에서 만난 남자를 찾아 현지인도 알지 못하는 경로를 선택했다. 시어머니에게 배운 사주풀이로 역사가 정해놓은 제 운명을 이미 보았을 민희가 찾는 것은 두리안을 든 범상치 않은 행색의 남자나, 아나운서와 같은 말씨를 쓰는 말쑥한 남자는 아닐 것이다. ‘나’는 “네 친구를 어쩔래?”라는 눈빛을 보내오는 남편과 “넌 어쩔래?”라고 물어오는 민희 사이에서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이상한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그건 불쾌한 감정이 아니라, 눈앞에 놓인 미지의 길에서 느끼는 호기심일 것이다.
바다를 무대로 한 유연희의 소설에서 모험은 남성들의 전유물일지 몰라도 호기심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비록 이 소설집에 실린 여성들의 서사가 아주 먼 곳까지 바라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그것대로 괜찮은 일이다. 남성적 플롯에서 여성들의 길이 열릴 가능성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유연희의 해양소설은 보기 드문 성취를 보여준 셈이다. 유연희의 소설 속 여성들의 항해는 이제 막 시작되었고, 그 길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길이다. 그녀들이 어떤 길을 거쳐 어디에 도착하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유연희의 다음 소설이 그녀들의 소식을 전해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