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왜 계속될까?
비폭력 시민 저항에 무슨 힘이 있을까?
폭력으로 평화를 지킨다는 오래된 환상을 깨뜨려줄 대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도 4년째에 접어들었다. 그사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또 한번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지금도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군사주의의 지배 아래 인류의 시대는 언제나 전쟁의 시대다. 힘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에 따라 강한 군사력을 국가의 주요 목표로 두는 군사주의는 많은 사람에게 당연한 상식처럼 여겨진다. 한국만 해도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지난 5년간 국방비 예산은 줄곧 정부 재정의 12~14퍼센트를 차지해왔다.
그러나 군사주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평화는 도래하지 않았다. 힘은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또 다른 폭력을 불러왔을 뿐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처럼 군사력에 군사력으로 대응하는 방어 전쟁의 논리도 결국은 군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방법론이다.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고, 세계 평화도 도래하지 않는다. 지난 수 세기 동안 벌어진 그 무수한 전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닐까? 폭력 없이도 평화를 수호했던 사례가 역사 속에 있지는 않을까? 《전쟁 없는 세상》은 그 답을 들려줄 책이다. 평화주의, 비폭력 시민 저항에 관한 회의론자와의 이 짧은 대화록은 군사주의 아닌 평화주의에, 폭력 수단이 아닌 비폭력 수단에, 지배자의 논리를 따르지 않는 시민 저항에 정말로 힘이 있느냐는 가슴속 깊은 우리의 의심을 하나하나 해소해준다. 어쩌면 우리를 대변할지 모르는, 비폭력에 비관적인 회의론자의 원초적인 의문들에 대해 저자는 현대 평화주의의 주요 쟁점들을 검토하는 식으로 친절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반박한다. 평화주의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의문들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평화주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명쾌한 책이다.
비폭력 저항의 이론적 토대, 역사적 사례,
현재 전쟁상황에 대한 평화주의 관점의 이해,
그리고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 방안까지
200쪽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짧은 책이지만 저자는 이 한 권에 비폭력 시민 저항의 이론적 토대는 물론이고 참고할 만한 역사적 사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평화주의적 관점의 이해, 나아가 이런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 방안까지 압축적으로 담아냈다. 회의론자와 저자의 대화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이라는 현 상황을 배경으로 이뤄진다. 회의론자의 현실적인 의문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이런 시기에 어떻게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까?
우크라이나에 무장 방어가 아닌 다른 대안이 있습니까?
비폭력 저항으로 정말 점령자를 몰아낼 수 있습니까?
실제로 성공한 비폭력 저항의 사례들이 있습니까?
시민 저항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누가 위험을 감수하려고 할까요?
무장 투쟁과 비무장 투쟁을 병행하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습니까?
비무장한 사람들도 폭력을 행사할 수 있고, 그런 폭력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지 않습니까?
무기도 없이, 공격자에게 위해를 가할 의사도 없이 누군가를 보호하겠다는 건 너무 순진한 발상 아닌가요?
만약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폭행을 당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하기만 할 건가요?
회의론자의 질문은 평화주의와 비폭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한 사람의 평화주의자로서 차근차근 답해간다. 두 사람의 대화를 읽다보면 많은 의문이 걷히고 평화주의와 비폭력 시민 저항을 매우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특히나 이 대화가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지점은 도덕주의적 차원에서 비폭력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차원을 벗어나 저항의 성공률 비교 등 매우 실용주의적인 차원의 논의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비폭력 저항이 만드는 현재진행형의 변화
비폭력 시민 저항의 힘은 비단 전쟁상황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내란상황을 맞이한 한국사회에서도 무수히 많은 시민이 비폭력 저항의 힘을 보여주었다. 공무원, 계엄군, 경호처 인원들의 항명, 태업, 의도적 외면은 비폭력 시민 저항의 주요한 사례가 된다. 한국의 평화주의/반군사주의단체 전쟁없는세상의 활동가이기도 한 옮긴이 최정민은 해제를 통해 이 책의 대화를 한국사회의 상황과 아울러 더욱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제3국의 시민들이 이미 비폭력 저항을 실천해왔다. 옮긴이는 그러한 저항의 사례들을 함께 아우르며 이러한 움직임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짚는다. 전쟁이 어떠한 결말을 맞게 될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전쟁을 마주한 당국의 시민들이 아니더라도 비폭력 저항에 힘을 보탤 다양한 연대 활동의 방법들이 있다. 실제로 한국의 평화운동은 한국산 무기의 우크라이나 수출 및 이전에 반대하는 한편,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따른 한국군의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에도 반대 목소리를 높여왔다. 러시아의 병역거부 난민들을 지원하는 활동도 전개 중이다.
전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군사주의에 대한 강한 믿음일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믿음을 차분히 돌아보도록 하며, 비폭력 저항이 만들어낸 과거의 변화는 물론이고 현재진행형의 변화들, 나아가 앞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변화들까지 알려주고 있다. 폭력에는 폭력으로 대응해야 하며 무력으로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오래된 환상에 청쾌한 균열을 일으킬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