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현대 독일문학을 이끌어가는 대표적인 작가로 “문학적으로 삶을 구원하고 폭탄처럼 터질 듯한 문장으로 눈부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코미디언”(『쥐트도이체 차이퉁』)이라는 찬사를 받는 지빌레 베르크(Sibylle Berg)의 소설이 우리나라에 처음 번역 소개된다. 『그래서 우리는 떠났어』(원제 Habe ich dir eigentlich schon erz?hlt…)는 통일 전의 동독에 살던 열세살짜리 안나와 막스가 따뜻한 보살핌을 주지 못하는 가정과 늘 겨울이기만 한 동독을 떠나 동유럽 각국을 떠돌며 꿈과 자유를 찾는 이야기이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사회의 부조리를 시니컬하게 꿰뚫는 통찰력을 품고 익숙한 것들로부터 결별해 작은 행복을 찾아나서는 열세살 소년소녀의 모험담은 작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같은 정치적 이념을 떠나 자유와 사랑의 중요성이라는 메씨지를 잔잔하게 전하고 있다. 또한 소설 전반에 걸쳐 자신들이 겪은 바를 누군가에게 이야기로, 편지로 들려주듯이 서술하고 있는데, 열세살 소년소녀의 감성을 실감있게 표현하는 데에 성공했다. “내가 벌써 이야기했던가?” 이 소설은 시종 ‘안나’와 ‘막스’가 번갈아가며 누군가에게 자신들이 겪은 이야기를 일기처럼 편지처럼 들려주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매 장의 부제 “내가 벌써 이야기했던가”에서도 알 수 있듯이,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소설 속 이야기들에는 열세살 안나와 막스의 심리가 세밀하고도 진솔하게 녹아 있다. 열세살 시점에서 바라본 동독의 현실, 사랑 없는 가정, 희망도 꿈도 없는 미래는, 엄혹하고 팍팍한 동독에서 아무것도 꿈꿀 수 없는 시절을 보내야 했던 작가 지빌레 베르크 자신의 어린시절을 그대로 투사해놓은 듯하다. 경찰관인 막스의 아빠와 문화부에 근무하는 공무원인 안나의 엄마는 동독에서 비교적 안정된 직장을 가진 계층이었지만 엄혹한 사회현실 못지않게 따뜻한 가정을 꾸리지 못한 어른들을 대표한다. 더 나아가 당시 현재의 동독 사회를 이끄는 기성세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막스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별일없냐고 물어. 그럼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지. 당연히 없어야지. 내 생각에 아버지는 별일없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것 같아. 그런 걸 스스로에게 그저 물어보지도 않아. 나는 아버지를 아주 자세히 관찰했어. 모든 걸 아버지와는 다르게 하기 위해서야. 가령 나는 책을 많이 읽어. 스포츠를 싫어하고 앞으로도 맥주는 마시지 않을 거야. 그리고 동독이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나라라고 절대,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 어떻게 사람들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안나 엄마가 술 마실 때 가장 슬픈 일은, 엄마가 왜 도대체 술을 안 끊는지 내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야. 술 마시면서 엄마가 즐거워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술 마시고 나서 또 뭔가 더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 오히려 엄마는 정신이 오락가락해지면서 화를 내. (…) 아침에 일어났을 때 누가 나를 향해 마구 소리지르는 걸 듣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은 없을 거야. 영문도 모른 채 말이야. 좀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그건 대기에 독을 내뿜는 것과 같아. 아빠와 이혼한 후 홀로 아이를 키우는 안나의 엄마는 술주정뱅이인데다가 휴가지에서조차 안나를 내팽개치고 술에 취해 남자들과 어울린다. 안나는 지금의 엄마는 가짜 부모일 것이고 진짜 부모는 이탈리아인일 거라는 상상까지 한다. 한편 아들과 눈 한번 마주치지 않고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막스의 아버지는 경직된 사고와 권위적인 부모의 전형이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안나와 막스는 각자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법을 터득하고 부조리한 현실을 뚫고 자기 길을 찾는 조숙한 청소년으로 성장한다. 그들의 눈에는 동독의 현실과 학교교육이 모두 부조리하고 답답하게만 보인다. 은밀하게 『말괄량이 삐삐』를 건네주는 거야. 그러더니 이 책도 조금은 금지되어 있단다,라고 말했어. 그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난 눈곱만치도 그전보다 더 오염된 것 같지 않았다고. 도대체 누가 마술쟁이 소녀를 실재라고 믿겠어? 그랬다면 여기 여자애들이라곤 다 사라졌겠지. 내 꿈의 영화는 결코 서독에서 일어나지 않아. 그건 좀 흉하다고 생각해. 좀더 냉혹한 것 말고는 서독도 여기랑 마찬가지일 거야. 우린 나치들은 전부 서쪽에서 왔고 그리로 사라져갔다고 배웠어.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걸 내가 우습게 여긴다는 건 누구도 알 필요없겠지. 나는 서독 전체가 크리스티아네 F양처럼 베를린 초역 근처를 비틀거리며 걸어다니는 마약중독자들로 가득 차 있다고도, 모두들 실업자라고도, 쉼없이 서로 죽고 죽이고 있다고도 생각지 않아. 오히려 나는 서독에도 독일인이 살고 있다고 생각해. 그 사람들은 분명 정상이겠지. 적어도 아이들에게 부모가 바뀌었다는 환상을 머릿속에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은 아닐 거야. 동서독으로 나뉘었지만 안나와 막스는 서독 대신 ‘남쪽’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안나와 막스가 여행중에 지나치는 동유럽 국가들, 헝가리 루마니아 등도 여전히 ‘겨울’이다. 그들이 꿈꾸는 것은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같은 이념적인 환경이 아니라 언제나 춥기만 한 ‘겨울’도 아니고, 자신들과 소통하지 않으려는 부모가 차라리 없는 따뜻한 곳일 뿐이다. 그리고 안나의 말대로 그들이 닿는 곳이 어디든 그들이 떠나온 것보다는 나으리라고 믿는다. 이 역시 스무살 나이에 동독을 떠나 서독에 오지만 퍽 다르지 않은 곳임을 깨달았던 작가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설정인 듯하다. 이 소설의 원제는 “Habe ich dir eigentlich schon erz?hlt… Ein M?erchen fuer alle”로, 직역하면 “내가 벌써 이야기했던가 ― 모두를 위한 동화”이다. 현대판 『헨젤과 그레텔』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찰스 디킨슨의 『올리버 트위스트』를 연상시키기도 하는 이 소설은 어린시절 누구나 꿈꿨던 이상향에 대한 동경을, 자유, 사랑, 따뜻함 등으로 표현되는 작은 행복을 찾아가는 여정을 인상적으로 그려낸 동화 같은 작품이다. 『그래서 우리는 떠났어』 대략 줄거리 열세살 안나와 막스는 동독의 같은 거주지역에서 다세대주택 아래위층에 산다. 안나는 술만 생각하는 술주정뱅이 엄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막스는 자신과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 아빠에게 따스한 보살핌을 받지 못한다. 열세살이지만 그들은 더이상 ‘아이’가 아니며 자신들이 살고 있는 회색빛 나라에 대해 사유할 만큼 충분히 정식적으로 성숙했다. 안나는 따뜻한 집에서 살기를 바라며 옷가게에는 알록달록한 옷들이 진열되기를 바라고 나라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조차 비웃는다. 막스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고 친구 하나 없는 삶을 슬퍼한다. 세상 모든 것에 불만인 사춘기 소년소녀인 이들은 어느날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안나의 엄마를 막스가 도와준 것을 계기로 서로를 알게 된다. 우연히 만난 이들은 친구가 생긴 것에 몹시 기뻐하며 혼자서는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는, 그러나 늘 혼자서 살아야 하는 열셋이라는 나이의 부조리함에 대해 공감한다. 그리고 마침내 가족을 떠나, 어디든 따뜻한 남쪽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모로부터, 우울한 유년시절로부터, 회색빛 나라로부터 그리고 어리석고 답답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안나와 막스는 화물차를 얻어 타고 몰래 폴란드 쪽 국경을 넘는다. 그러다가 아이들을 공장에 팔아넘기는 인신매매 부부에게 잡혀 감금당한다. 이들 부부는 안나와 막스에게 음식을 잔뜩 먹이고 호되게 일을 시켰다. 그러나 영리한 안나와 막스는 꾀를 내서 도망친다. 다시 길에서 만난 친절한 부인을 따라간 집에서, 안나는 잘생긴 이고르에 반하고, 이를 보고 샘내던 막스는 혼자 길을 떠난다. 이고르에게 실망한 안나도 막스의 뒤를 따라 부다페스트로 향하고 다시 만난 안나와 의기투합하여 막스는 위험을 물리치고 계속 남쪽으로 여행하면서 마침내 흑해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정박한 화물선에 몰래 승선한 안나와 막스는 비로소 손을 맞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