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황정은 · 소설
2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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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등장한 작가의 첫 소설집. 수록된 단편들은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 ‘올해의 문제소설’ 등에 발표한 작품들이다. 11편의 소설들은 명랑성과 비애가 결합되어 생겨났다. 일상과 맞닿아 있는 작가만의 환상이 만들어낸 결과물들은 특유의 유머와 명랑함을 무기로 때론 심드렁하고 아무렇지 않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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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문 모자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무지개풀 모기씨 초코맨의 사회 곡도와 살고 있다 오뚝이와 지빠귀 마더 소년 G 해설_서영채 명랑한 환상의 비애 작가의 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_말했던가, 나는 사실 F가 아니야. _그럼 너는 누구냐. _그게 말이지, F의 손톱을 먹고 사람이 되어버린 생쥐야. _그러면 본래의 F는 뭘 하고 있어? _손톱을 깎고 있지. 이것저것 불평하면서 말이야. 하지만 언제까지나 손톱만 깎고 있을 순 없잖아. 이제 본체가 정신을 제대로 가동해줬음 좋겠어. 나는 슬슬 생쥐로 돌아가고 싶어졌다고.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거 말인데, 그다지 즐겁지 않아.(「G」) 황정은의 단편 「모자」의 첫 문장은 이렇다. “세 남매의 아버지는 자주 모자가 되었다.” 아버지가 모자가 된다고? 그럴 수 있다. 소설이니까. 사람이 벌레가 되는 소설도 있었는데 모자가 못 될 이유는 없다. (……) 대체 어떤 사연으로 아버지는 모자가 되는 것일까. 황정은의 소설 속에서, 세 남매는 아버지가 아무 데서나 모자가 되는 바람에 자주 이사를 다녀야 하고,(「모자」) 들어오세요. 아니에요. (……) 우연히 모자를 봤다고 하네요. 댁의 아버님이 마당에서 모자가 되어 있는 것을 그애가 본 모양이에요. 우리 부부가 그 문제에 굉장히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냥 모자가 됐을 뿐인데요. 하지만 애들이 보잖아요. 전혀 해롭지 않아요. 머리 하나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뿐인걸요. 애가 자꾸 물어봐서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고. (……) 모두가 볼 수 있는 장소에서 모자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고, 우리 부부는 생각하고 있어요. m의 등뒤에는 남들이 볼 수 없는 문이 달려 있어 때때로 열리며,(「문」) 할머니가 원두를 갈러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라인더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는데, 등뒤의 문이 슥 열리더니 할머니가 나왔다. m은 깜짝 놀랐다. 열리기도 하는구나. (……) 저게 열리기도 하는구나. 할머니, 거기선 어때. 지내기가. 나쁘지 않다. 눈이 내린다. 눈이 내려? 눈이 내린다. 다른 건 없어. 춥겠네. 춥지는 않다. 일단은 죽었으니까. 심심하겠어, 할머니. 그래서 가끔 걷는다. 뭐가 있어? 없다. 그러니까 조금 더 걸어볼 생각이다. 평범한 동물원 소풍은 어느 순간 낯선 세계로 바뀌어버리고,(「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 근사하다. 내가 첫번째 손님이 될래. 파씨가 말했다 뭐라고 했어? 입에 든 걸 삼키고 말해. 기린이 이마를 찌푸렸다. 파씨가 가고 싶대. 파씨가 그 레스토랑의 첫번째 손님이 될 거래. 나는 말했다. 파씨라고? 파씨. 파씨가 누구야. 파씨가 누구냐니. 나는 내 오른쪽 자리를 돌아보았다. 거기에 파씨는 없었다. 어째서 자기를 파씨라고 불러. 거실을 꽉 채우고도 남는 간이풀장 속의 물놀이는 부조리극의 한 장면으로 탈바꿈한다.(「무지개풀」) 얼마 전에 책을 한 권 읽었는데 (……) 잘은 기억나지 않아. 둘이 뭔가를 기다려. 그런데? 사람들이 등장했다 사라지고 둘은 다시 기다려. 뭘. 나도 몰라. 실은 그 두 사람도 모르는 것 같아. 쓸쓸한데. 쓸쓸한데, 쓸쓸해. 왜 이렇게 조용하지. 엿듣고 있는 거 아냐, 옆집 사람들. 저쪽 벽에 귀를 붙이고 서서. 우리가 뭘 하나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자기를 제외한 세계의 모든 것이 커지기 시작하고, 그러다가 활동성도 사고도 정지하는 순간들이 생겨나다 마침내 오뚝이가 되어버리는 여자가 있고(「오뚝이와 지빠귀」), 하반신 마비가 된 주인공은 갑자기 나타난 (젤라틴으로 되어 있는) 거대한 모기의 몸속으로 푹 잠기기도 또 모기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며(「모기씨」), 사람의 말을 하는 ‘곡도’라는 이상한 애완동물은 오히려 주인을 평가하고 그들의 서비스를 받는다. 주인의 행동이 맘에 들지 않으면 곡도는 전력질주하며 수많은 개체로 증식해버리거나 혹은 “아, 정말이지”라는 말과 함께 조금씩 작아져버리기도 한다. 당당하게 자기 존엄성을 지키는 애완동물, 이 바로 곡도인 것이다. 주인으로부터 버림받으면 곡도는 보통 동물로 변해버리지만 반대급부로 그 주인 또한 무언가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다고 했다.특정한 어휘나 자신감이나 미소나 그림자 혹은 눈꺼풀 같은 것을.(「곡도와 살고 있다」) ……분실의 항목은 개인이나 사정에 따라서 다를 수 있습니다. 특정한 어휘를 잃었다는 보고가 다수 접수된 바 있으며, 자신감이나 미소나 그림자를 읽었다는 내용의 보고 또한 상당량………1) ------- 1) 드물게 눈꺼풀을 분실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할 것. 아, 정말이지…… “아, 정말이지,” 황정은의 환상은 일상의 비애와 슬픔과 혹은 고통을 슬쩍 건드리고 있으면서도 가볍고 경쾌하고 명랑하다. 짐짓 심드렁한 태도로, 무뚝뚝한 얼굴로. “이전 시대 서사의 풍자나 골계, 익살 등이 지니고 있던 강렬함이나 절박함과 구분되는 그것은”, 젊고 발랄한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황정은의 환상이 지니고 있는 독특성은 명랑성과 비애가 결합되어 생겨난 것이라는 점에 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나 깊은 슬픔과는 달리, 비애는 우리가 일상인으로서 살아감에 있어 어떤 식으로건 감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체념의 소산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의 상태로부터, 즉 부조리한 세계 상태에 대해 체념할 수밖에 없고 그 불가피성 때문에 오히려 그런 상태를 적극적으로 수용해버리려고 함으로써 마조히즘적인 명랑성이 만들어진다. 비애와 명랑성이 이런 방식으로 결합되는 지점에서 황정은 특유의 환상성은 생겨난다. 첫 소설집, “황정은풍” 소설의 탄생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한 황정은은, 짧은 필력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곡도와 살고 있다」) ‘올해의 문제소설’(「문」)에 선정되고, ‘이효석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등(「모자」), 발표하는 작품마다 독자와 평단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작가이다. 일상과 맞닿아 있는 황정은만의 환상은, 때문에 실제 세계의 폭력성으로부터 서사의 세계를 방어하는 얇지만 강력한 보호막으로 작용하면서도, 현실의 그것을 날것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작가 특유의 유머와 명랑함을 무기로 심드렁하고 무뚝뚝하게, 아무렇지 않게. 데뷔 삼 년차, 첫 소설집, 11편의 소설로 이미 자기 세계를, ‘황정은풍’ 소설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킨 그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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