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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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분방함에 더해진 깊이, 삶의 굽이굽이를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활력 문학동네 시인선 84권, 김민정 시인의 세번째 시집이 출간되었다. 솔직한 발성과 역동적인 감각으로 ‘시(詩)’라는 것의 남근주의와 허세를 짜릿하고 통쾌하게 발라버린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2005), 더럽고 치사한 세상을 우회하지 않고 직설적인 에너지로 까발려낸 두번째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2009)를 잇는 세번째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에는 총 33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특히 이번 시집에는 “거침없는 시어와 톡톡 튀는 상상력으로 자기만의 독특한 시세계를 펼쳐오며, 많은 후배 시인들에게 강한 영감과,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2016년 현대시작품상을 수상한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산(産)」 외 8편의 시가 함께 실려 있어 7년 만에 출간되는 시집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인다. 혹시라도, 첫번째 시집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두번째 시집은 너무 가벼운 것 같아서, 라는 이유로 미심쩍어한 독자가 있다면 김민정의 최근 시를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앞의 두 시집이 각각 이십대의 무모함과 삼십대의 예리함에 힘입은 것이라면 최근 시는 사십대 전후에 생겨난 깊이의 산물들이다. 특유의 자유분방함에 깊이가 더해지니 이제 새로운 단계가 열렸다는 느낌이다. ‘이게 시가 아니면 뭐 어때?’라고 말하듯이 쓰인 시가 ‘그런데 이게 인생이 아니면 뭐냐!’라고 말하듯 삶의 깊은 데를 툭툭 건드린다. _김민정·신형철 대담( 『현대시』 2016년 5월호) 현대시작품상 특집으로 기획된 한 대담에서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이와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그의 지적처럼 이번 시집에서 유독 또렷하게 느껴지는 특징은 자유분방함에 더해진 깊이와 삶의 굽이굽이를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활력이다. 김민정의 이전 시들이 삶의 표면에 도드라진 무늬들을 솔직한 감각으로 포착해 마치 랩이라도 하듯 거침없는 말투로 쏟아냈다면, 최근 시들은 깊숙하게 내려앉았다가 다시 솟구치는 삶의 곡선을 닮은 타령처럼 구성지면서도 애달픈 데가 있다. 그러니까 그다지 많지 않은 그러나 결코 적다고는 느껴지지 않는 이 33편의 시들은 타령처럼 불리면서 소설처럼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번 시집 역시 이전에 보여주었던 특유의 재치 있는 말장난과 눈치보지 않고 쏟아내는 음담들로 이루어져 있겠거니, 방심했던 마음을 이 시들은 훅 찌르고 들어온다. 네게 던져진 적은 없으나/ 네게 물려본 적은 있는 돌이었다/ 제모로 면도가 불필요해진 턱주가리처럼/ 밋밋한 남성성을 오래 쓰다듬게 해서/ 물이 나오게도 하는 돌이었다// 한창때의 우리들이라면/ 없을 수 없는 물이잖아, 안 그래?// 물은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을 몰라서/ 해도 해도 영 개운해질 수가 없는 게 세수라며/ 돌 위에 세숫비누를 올려둔 건 너였다/ 김을 담은 플라스틱 밀폐용기 뚜껑 위에/ 김이 나갈까 돌을 얹어둔 건 나였다/ 돌의 쓰임을 두고 머리를 맞대던 순간이/ 그러고 보면 사랑이었다(「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음담의 힘은 그 자체로도 센데, 그 음담을 말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참으로 투명해서 그간 김민정의 시에 나오는 음담은 야하거나 민망하다기보다 천진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러나 이번 시들에서 그 음담은, 그리고 이를 전하는 그의 목소리는 바닥에 낮게 엎드려 있는 듯하다. 마치 기가 죽은 것처럼 한껏 줄어든 음성은 음담을 조용히 스쳐지나 보내며 그저 나지막하게 삶에서 맞닥뜨리는 사랑과 죽음이라는 사건을 전할 뿐이다. 주워온 돌을 빈 대야에도 넣어보고 물속에도 담가보며 그 빛깔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우두커니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일. 그래서 그 돌을 모르고 지낸 시간과 그 돌을 주워와 품고 지낸 시간 사이에, 텅 빈 대야와 물이 담긴 대야 사이에, 낮과 밤 사이에 빗금을 치게 만드는 것이 고작 작은 돌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또 그 돌을 어딘가에 둔 채 잊고서 흘러가는 게 아니라 여기저기 옮겨가며 놓아두면서 그 쓰임을 함께 고민하는 삶. 그러한 것들이 “사랑이었다”고 시의 끄트머리에 그 품이 아주 넓은 마침표를 찍는 시인, 그것이 바로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의 김민정이다. ‘죽은 사람 대신 내가 살고 있다’는 의식은 김민정의 시세계 밑바닥을 흐르는 작은 주제가 아닐까. 대야에 담긴 물이 비춰야 할 것이 마땅히 “죽은 사람이 하고 있는 얼굴”이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얼굴을 닦는 일이란 그러므로 죽은 자의 얼굴을 잊지 않는 일, 그리하여 나의 얼굴에서 그의 얼굴을 끄집어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그 죽은 자는 아마도 나를 낳고 기른 부모일 수도, 혹은 내가 지켜주지 못한 모르는 누군가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되었건 바로 그들이 죽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살아 있을 수 있다는 죄책감이 마치 무거운 추처럼 김민정의 시를 잡아놓고 있다, 사랑의 기쁨으로도 그렇다고 손쉬운 슬픔으로도 넘어가지 못하도록. 4월 16일/ 어디서 왔는지 모를 내 새끼가/ 어딘지 모를 그곳으로 갔다/ ……내가 침묵하는 거/ 너 혹시 들었니?……// 5월 6일/ 우리 이모가 죽었는데/ 너희 이모도 죽었구나/ 죽은 이모 둘을 놓고/ 살은 여자 둘이서/담배를 물었다 빤다 (……) 4월 16일/ 네 생일인데 네가 없구나/ 그리움을 드리움이라 썼다가/ 유치해서 빡빡 지운다지만/ 네가 없구나 얘야,/ 네 생일인데 나만 있는 건 성가심이니 대략/ 아주 착한 나쁜 사람들이라 해두자 (……) 4월 20일/ 어쨌거나 네가 갔으니/ 당분간 나는 안 가겠다/ 이 정도로 우리 서로 세계를 나눠 가졌으니/ 그 단어의 그것도 잠시 잠이 들지 않겠나/ 자자, 자, 자……(「엊그제 곡우」) 이모가 죽은 날 앞뒤에 바로 그 일이 일어난 4월 16일과 일 년 후의 4월 16일을 놓아둔 시인. 날짜를 적어놓은 시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누군가의 진짜 일기를 옮겨놓은 것만 같아서, 시인의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죽음이라는 사건이 참으로 잦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누구의 시간이 안 그렇겠냐마는. 그래서 누군가의 시가 나의 일기가 되는 것이겠다마는. 시의 끝자락에 4월 20일, 즉 곡우의 하루를 매달아놓은 시인은 그날 내리는, 곡식을 기름지게 한다는 봄비처럼, 자신의 숨통을 조금이나마 틔워놓고 있다. 아주 많은 죽음 속에서 차라리 안도감을 느끼는 것처럼―왜냐하면 나도 그렇게 죽을 수 있을 테니까―시인은 “어쨌거나 네가 갔으니/당분간 나는 안 가겠다”라고 읊조리며 살아 있음을 그저 “당분간”이라는 시간 안에 한정시켜둔다. 이렇게 다시 한번 확인되는 ‘죽은 사람 대신 내가 살고 있다’는 의식. 하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죄책감의 무게가 삶을 그다지 심하게 옭죄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겨진다. 이 시에서만큼은 죽음이든 죄책감이든 그 어떤 단어가 빗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시 잠드는 듯하니까. 그러니 차라리 다음과 같은 시는 죽음에 대한 일반적이고도 성숙한 거리 감각을 찾은 것 같아 차라리 다행스럽다. 베란다 어항에서 유유자적이던 구피 두 마리가/ 어떻게 거실까지 튀어들었는지/ 나는 잠시 곤한 낮잠에 들었었고/ 꿈을 꾼 것도 없는데/ 덮고 있던 이불을 터는 데서/ 죽은 구피 두 마리가/ 마치 산 것처럼 눈을 부릅뜬 채 튀어나오니/ 얘네 둘을 양손에 하나씩 집고/ 너는 누구니/ 네가 누구이기에 여기로 왔니/ 묻고 있는 대낮 (……) 2008년 그날부터 2016년 오늘까지/ 여직 그 모양 그대로인/ 구피 막사발 그리고 백자주전자 뚜껑/ 자린고비도 아니면서 밥 한술 뜨고/ 백자주전자 뚜껑 열어 구피 한 번 보고/ 누가 시켜서 하는 아낌이 아니니/ 이것이 화두인가 하였다(「삼합」) 절기-시(詩), 그 순환의 힘을 믿으며 이번 시집에서 또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우수의 소야곡」 「춘분 하면 춘수」 「엊그제 곡우」 「망종」 「오늘 하지」 「소서라 치자」 「대서 데서」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산(産)」 「상강」 「동지」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