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사랑은 기억 속에 있고, 나는 기억을 멈출 수 없었다.” <냉정과 열정 사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의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그려내는 ‘망각의 유혹과 기억의 힘’ 아무도 모르는 먼 옛날의 기억이야. 그 부조리한 계절에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건 그의 기억 속에만 기록되어 있지. 그가 털어놓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져버릴, 덧없는 기억… 1. 츠지 히토나리, 기억으로 사랑을 붙잡다 <냉정과 열정 사이>,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통해 고독하고도 열정적인 사랑을 말하던 작가, 츠지 히토나리가 이번 작품 <태양을 기다리며>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사랑과 기억에 대한 장대한 이야기를 펼쳐낸다. 이 소설은 1937년의 난징, 1945년의 히로시마, 1970년의 도쿄, 세기말의 신주쿠를 배경으로 하여, 기억으로 붙잡고 있는 아픈 사랑 이야기들을 여러 인물들 속에서 엮어나간다. 난징 대학살, 히로시마 원폭 투하라는 부조리한 시대의 아픔 속에서 그래도 놓을 수 없었던 사랑의 기억, 그 상처뿐인 기억을 치유하고 그 사랑을 안고 살아가는 일은 남겨진 자의 몫이라는 소설 속 메시지는 한결 깊어진 눈으로 삶과 죽음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게다가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 번역되어 문학상 후보에까지 오른 걸 보면 츠지 히토나리가 그려내는 세계가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는 인간 의식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태양을 기다리며>에서 츠지 히토나리는 일본의 집단의식을 짓누르는 지난 전쟁의 무게와 현대 인본인의 마음의 심층에 다가서는데, 이 점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와 공통된 동시대성이 느껴진다. 작가는 시대와 문화와 언어를 뛰어넘어 인간의 의식이 다다르는 곳으로 다가가려 한다. ‘빛’은 바로 그곳에 있는지도 모른다. -코린느 아틀랑(일본 문학자) 2. 내용 들여다보기 시로는 영화 촬영 현장에서 세트에 세월의 흔적을 입히는 일을 한다. 시로보다 다섯 살 많은 형, 지로는 머리에 총을 맞고 혼수상태에 빠진 채로 병원에 누워 있다. 지로에게 사고가 있고 한 달쯤 후, 후지사와라는 낯선 남자가 지로에게 맡겨놓은 가방을 내놓으라며 시로를 협박하기 시작한다.(후지사와라는 남자는 크레이그 부샤르라는 미군 파일럿과 일본인 간호사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로, 아버지 크레이그 부샤르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사망했다.)후지사와의 협박에 못 이겨 가방의 행방을 쫓던 시로는 그 가방 안에 ‘루즈 마이 메모리’라는 마약이 들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을 전부 지워 없애는 힘이 있다고 하는 ‘루즈 마이 메모리’……. 시로는 이노우에 하지메 감독의 영화 <태양을 기다리며> 촬영에 참여하면서 스크립터로 일하고 있는 도모코에게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시로 형의 옛 애인이기도 한 도모코는 형에 대한 기억 때문에 시로를 받아들일 수 없다. 한편 이노우에 감독은 1937년 난징에서 보았던 하늘과 똑같은 하늘을 찍기 위해 천 명이 넘는 엑스트라를 몇 주 동안 대기시켜놓을 만큼 이 영화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 어쩌면 그것은 그가 기억하는 1937년 그날의 태양이 훼이팡과 사랑에 빠졌던 그 시절의 태양이기 때문일까. 2000년 여름, 영화 <태양을 기다리며>를 찍으며, ‘루즈 마이 메모리’가 들어 있는 가방을 찾으며, 이야기는 지로의 머릿속, 1937년의 난징, 1945년의 히로시마, 1970년의 도쿄를 넘나들며 이어진다. 그리고 히로시마의 검은 태양, 난징의 붉은 태양으로 기억되던 풍경은 어느새 지평선 끝에서 21세기를 알리며 얼굴을 내민다. 3. 츠지 히토나리가 그려내는 망각의 유혹과 기억의 힘 이 소설의 기본적인 시대 배경은 2000년 여름이다. 소설은 이노우에 감독이 『태양을 기다리며』라는 영화를 찍는 과정과 후지사와가 지로에게 맡겨두었다는 가방의 행방을 찾아가는 과정, 크게 이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는 등장인물들의 회상에 의해 1937년의 난징, 1945년의 히로시마, 1970년의 도쿄를 넘나드는데, 각각의 이야기들을 이어주는 것은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지로의 머릿속 세계이다. 그 속에서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며 전쟁, 사랑, 죽음의 의미를 심화시켜간다. 지로는 가방을 둘러맨 어린 시절 모습 그대로, 1970년의 도쿄에서 1937년의 난징으로 건너가고 1945년의 히로시마로 빠져나온다. 지로의 머릿속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광경들이 뒤섞여 표현되는데, 약간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퍼즐을 맞추는 듯한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소제목 <루즈 마이 메모리>에서는 <태양을 기다리며>라는 영화 촬영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지로의 세계>에서는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지로의 머릿속 세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후지사와의 과거수첩>에서는 후지사와가 그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을 털어놓는다. <크레이그 부샤르의 수기>는 미군 파일럿이었던 후지사와의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엮은 것이며, <훼이팡의 비극>에서는 젊은 시절의 이노우에가 1937년 난징에서 국책 홍보 영화 촬영을 하면서 훼이팡과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빛의 사체>에서는 시로와 도모코가 공유하는, 지로의 빛과 그림자에 대한 기억을 보여준다. 4. 그날의 태양을 볼 수 있다면… 빛은 다름 아닌 절망 속에 존재하는 법 1937년의 난징에서, 1945년의 히로시마에서, 세기말의 신주쿠에서, 그들은 태양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 태양은 서로 다른 시공간을 잇는 것이기도 하고, 기억보다 아름다운 빛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속엔 시대와 이념과 언어를 뛰어넘는 사랑과 인간애, 따스함, 정의와 열정을 회복하고자 하는 염원이 담겨 있다. 시련이라기엔 너무 가혹하고 운명이라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상처뿐인 기억을 치유하기 위해 자신에게 내미는 손, 서로가 내미는 그 손을 맞잡고 세상과 소통하면서 마침내 도달한 빛의 세계, 그 빛은 다름 아닌 절망 속에 존재하기에 더욱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작은 희망의 증거로서 인간의 마음 뿌리에 존재하는 빛, <태양을 기다리며>는 그 빛을 이야기하고 있다. 외로우면 태양을 보거라. 너를 빛내줄 빛의 입자 안에 나는 늘 있단다. 그리고 내 몫까지 행복해지려무나.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지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일러주마. 인생을 최후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는 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장 인간답게 사는 방법이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언젠가 찾아올 죽음 직전에, 너는 지금의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인생이란 마지막의 마지막, 가혹의 끝에, 고난의 끝에, 환희와 깨달음이 있단다. 그것은 헤쳐나온 자만이 볼 수 있는 빛. 태양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