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자본주의만이 유일하게 유지 가능한 체계라는 오늘날의 지배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리얼리즘’ 자본주의가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실패한 체계임을 비판하고 체념과 냉소를 넘어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구축하자 독창적인 문화 분석을 통해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자본주의가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균열을 포착한다 [2판 책소개] 2018년에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에게 마크 피셔라는 비평가를 각인한 『자본주의 리얼리즘』 2판이 출간되었다. 2022년 영국에서 발표된 원서 2판에는 마크 피셔의 부인인 조이 피셔의 「서문」, 동료이자 비평가인 알렉스 니븐의 「서론」, 소설가로 피셔와 함께 제로 북스와 리피터 북스를 설립한 타리크 고더드의 「후기」가 수록되었다. 이번 한국어 2판에서도 이 글들을 번역해 실었고, 그 외에 본문 번역과 디자인을 소폭 손질했다. 피셔를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지켜본 이들의 글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애초에 어떻게 구상되었고 어떤 과정을 거쳐 출간되었는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출간되었고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켰는지, 피셔의 사망으로 이들 개개인과 지성계가 얼마나 많은 것을 잃었는지를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이들의 회고를 통해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마크 피셔의 지적 여정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나아가 이 책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21세기 특유의 불만을 분석한 대표적인 선언문으로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는 까닭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으로 피셔는 21세기 들어 훨씬 만연해진 문화적, 정치적 불모와 고갈의 감각을 해부했다. 이제 자본은 대안과 저항을 흡수할 뿐 아니라 우리의 욕망 자체를 ‘사전 구성’한다. 그에 따라 자본주의에 대한 “일관된 대안을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체념이 사회를 뒤덮고 있다. 무자비한 속도로 모든 영역을 유연화하는 자본주의는 현재적인 것과 즉각적인 것을 특권화하며, 다른 한편으로 극심한 사회적, 경제적 불안정성은 지나치게 향수에 몰두하는 문화를 창출한다. 피셔의 문제 의식을 압축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새로운 것이 없다면 하나의 문화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까? 청년들이 더 이상 놀라움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자본이 우리의 희망과 상상까지 빈틈없이 장악했다는 주장 때문에 피셔에게 비관주의자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다시 읽어 본다면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실패하는 지점을 간파하고 정치화하려는 노력이 더욱 두드러지게 다가올 것이다. 그가 전략적 요충지로 삼은 생태 재앙, 정신 건강, 관료주의는 지난 10년을 거치며 훨씬 심한 부작용을 노출하면서 우리를 더는 참을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대고 있다. 나아가 피셔가 주된 분석 현장으로 삼은 분야가 교육이라는 사실도 의미심장한데, 교육이 오늘날 양극화와 차별, 혼란과 무력함의 징후를 가장 뚜렷이 드러내 보이는 영역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신노동당 집권기의 교육 영역에 몸담았던 경험에 주로 기초하고 있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구체적인 시공간의 산물이지만, 그가 강조했던 문제들은 지금도 시의성을 잃지 않고 새롭고도 예리하게 다가온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매우 간결한 책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이 책의 논변들이 피셔가 20여 년간 쌓아 온 문제 의식을 집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 한국어판이 출간된 이후 그의 전반적인 면모가 소개된 덕분에 우리는 그의 문장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의미와 역사가 담겨 있는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또 피셔의 다른 작업들이 번역되면서 점차 분명해진 사실은 그의 호소력이 내용뿐 아니라 문장 수준에서도 발휘된다는 것이다. 피셔는 실제로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 문제들을 식별했을 뿐 아니라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느끼도록 글을 쓴 사람이다. 그는 블로그라는 짧은 포맷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긴요하다고 믿는 문제에 관해 썼고, 그의 글에는 읽는 사람들도 그 믿음을 공유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그는 사태를 단순하게 만들고자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에두르지도 않았고, 복잡함을 축소하지 않으면서 명료하고자 했다. 이렇듯 그는 글이 사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믿음이 그의 글에 일종의 진정성과 참여성을 부여해 주었다. 이후 번역된 그의 다른 작업들과 함께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다시 읽는 독자들은 이 독특하고도 강력한 힘을 더욱 분명히 감지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앞으로도 우리가 거듭 다시 돌아가는 텍스트로 남을 것이다. [초판 책소개] “자본주의가 나쁜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는 동안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자유롭게 자본주의적 교환에 가담할 수 있다.” 우리 다수는 억압과 착취에 분노하고 불평등과 부정의를 주시하면서 바로잡고자 노력해 왔다. 이처럼 자본과 권력에 저항하는 투쟁이 여전히 활발히 펼쳐지고 있음에도 이 반란들에는 한 가지 차원이 누락되어 있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라는 체계 자체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눈에 띄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마크 피셔가 주목하는 상황이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삶뿐 아니라 생각의 지평까지 잠식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는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그런 사회가 오기나 할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이처럼 대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할 수 없는 현재의 상태를 피셔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으로 포착한다. 특히 문화의 측면에서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분석하는 이 책은 자본주의가 우리의 무의식에까지 스며든 이데올로기적 환경을 진단하고, 그럼에도 자본주의가 드러낼 수밖에 없는 균열을 파고들며, 그 균열을 파열로 이끌 수 있는 전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마크 피셔는 21세기 들어 영국의 담론 지형에서 가장 두각을 드러낸 비평가 중 한 명이다. 2000년대 초 블로그라는 새로운 공간에서 젊은 지식인과 비평가들이 네트워크를 이루며 신선한 담론을 생성하고 있을 때 피셔의 블로그 k-펑크가 그 중심에서 비판적 지식을 활성화시켰다. 동료이자 음악 비평가인 사이먼 레이놀즈는 피셔를 블로그를 두고 “영국의 대부분 잡지보다 뛰어난 일인 잡지”며 대중문화, 음악, 영화, 정치학과 추상적인 이론 등이 저널리스트, 철학자, 친구, 동료 등에 의해 나란히 논의되는 “블로그 성좌”의 중심 허브였다고 술회하기도 했다. 2009년 출간된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피셔의 첫 저작이며,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고조된 영국의 학생 시위 정국에서 젊은 세대 공중의 지지를 얻으며 그를 동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 대열에 속하게 해 주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 이후 피셔는 『내 삶의 유령들: 우울증, 유령론, 잃어버린 미래에 관한 글들』과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이라는 두 권의 저서를 출간했고, 그런 뒤 2017년 초에 갑작스레 스스로 목숨을 거두었다. 그는 오랫동안 우울증으로 고통받았고, 우울증 등의 정신 건강 문제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핵심 쟁점 중 하나기도 하다. 비록 개인적인 삶은 불안과 우울로 가득했을지언정, 피셔는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시대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 내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되살리고자 노력한 비판적 지식인이었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 다른 사회를 꿈꿀 상상력마저 잠식한 오늘날의 자본주의 2007~2008년 금융 위기가 터지자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가장 큰 위기가 찾아왔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파국이 임박해 보였고 수많은 사람이 타개책을 요구했다. 그 이후 신자유주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기이하게도 자본주의 자체는 여전히 건재해 보이며, 오히려 더 강하게 우리 상상력의 지평을 장악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이 피셔가 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