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영화로, 애니메이션으로 풍성하게 울린 한 한국계 입양인의 목소리
동명 애니메이션,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관객상 및 유니세프상 수상
2007년 1부와 2부를 출간한 , 올해 3부 완간.
국내에서도 3부를 함께 담아 개정증보판으로 출간.
다섯 살, 유럽에 입양되어 갔던 그 아이,
마흔이 넘어 만화와 함께 한국으로 돌아오다
“전정식... 낯선 이름”
한국 만화 팬들에게는 조금 낯선 이름 전정식. 한국에서 2008년에 (구판)이 1부와 2부가 묶여 출간되기 전까지는 완전히, 그리고 어쩌면 3부가 합쳐져 출간된 2013년까지도 그는 얼마간 ‘낯선’ 이름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른바 ‘해외입양아’출신으로 유럽에서 활동해온 만화가였기 때문이다. 1970년, 불과 5세의 나이에 벨기에로 입양된 그에게 한국으로부터 남겨진 것은 ‘정’이라는 한국식 이름과 입양서류 뿐이었다. 입양서류에 따르면 ‘피부색깔’이 ‘꿀색’인 그 아이는, 시간이 흘러 그곳 벨기에와 프랑스 문화권에서 융 헤넨(Jung Henin)이라는 이름으로 왕성히 활동하는 만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입양 후 37년이 지난 2007년에, 그는 만화라는 국경을 초월한 언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어떻게 그 먼 곳까지 보내지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해서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서있는지를 담담히 고백하며 그에 대한 소통을 시도했다. 벨기에-유럽독자들을 향하여. 그리고 2008년에 1부와 2부를 먼저 묶은 한국어 번역판이 출간되었다. 드디어 자신이 떠나온 한국의 독자들을 향하여, 무엇보다 너무도 그리웠던 한국의 엄마를 향하여 조용히 말을 걸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으로 돌아가 펼쳐지는 일들을 책으로 얘기하는 거야.”
오랜 약속을 지키다.
1부와 2부의 출간 이후,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자전적 영화와 애니메이션으로 이어 들려주었다. 작가 자신이 직접 감독이 되어 발표한 애니메이션은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관객상과 유니세프상을 받으며 유럽 전역에서 호평을 얻었다. 이 이야기들 끝에 결국은 작가 자신이 직접 한국에 방문했다. 귀환, 그리고 바로 이 귀환 경험을 담은 3부가 올해 유럽에서 출간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 펼쳐지는 일들을 책으로 얘기하”자던 오랜 약속을 드디어 지킨 것이다. 그리고 이 3부까지를 함께 묶은 이 개정증보판으로 한국에 출간되어 먼 곳에 있는 ‘우리’인 전정식 작가는 다시 한 번 고국의 독자들을 만나게 되었다.
1부와 2부. 유럽에서 2007년에 출간되었고 한국에서는 2008년에 묶여 출간되었다. 출간 이후 애니메이션과 실사 영화가 제작되었고, 이를 계기로 작가의 한국 방문이 성사된다. 그 이야기가 3부에서 이어진다. 3부. 유럽에서 2013년 9월 출간. 한국에서는 1,2부와 함께 묶여 같은 해 11월 개정증보판으로 출간.
남대문 시장 거리, 경찰과 홀트 고아원, 그리고 고아들...
이야기는 남대문 시장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던 꼬마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한다. 닭다리 조각을 찾아 들고 해맑게 웃는 맨발의 어린 작가는 순진하고 낙천적인 태도로 독자들을 부드럽게 끌어 들이고, 어린이 특유의 솔직한 예민함으로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해 보여준다. 단지 그의 개인적인 경험뿐 아니라, 한국의 정치?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해외입양’이라는 사건이 풀려나간다.
경찰에 발견된 아이는 대표적인 해외입양기관인 ‘홀트’로 인도된다. 2개월 머물렀던 그곳에는 2,000명의 또 다른 해외입양 예정인 아이들이 있었다. 이미 전쟁이 끝난 지 17년이 지난 1970년 시점에서 한 기관에만 2,000명... 물론 특수한 상황은 아니다. 공식, 비공식을 아울러볼 때 전쟁이후로 현재까지 한국이 내보낸 해외입양아는 20만이라고 추정되니까. 즉, 당시까지도 한국은 아이들이 대규모로 버려지는 사회였고, 그 아이들을 스스로 돌보길 포기한 나라였다.
이런 상황에 대해 다감한 성격의 5살 꼬마는 고개를 가로 젓지 않는다. 정말 배가 고팠고, 사탕으로 꼬마들의 애를 태우거나 작은 멍 자국 때문에 입양결정을 번복하던 ‘코 큰’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굶어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하지만 결국 덧붙이고야 마는 한 마디.
“20만... 지금도 고마워해야 할지 미워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너무 많다.”
새 나라, 새 부모, 새 형제, 그리고 새 이웃 속에서...
아이는 벨기에로 입양된다. 한국어를 비롯해 한국에서 보낸 첫 번째 삶의 기억은 급속히 지워져갔다. 하지만 단 하나, 그의 남다른 피부색과 한국에서 ‘버려지고’ ‘거부당했었다’는 사실만큼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이는 장차 자라면서 그런 자신의 모습을 쉽사리 긍정할 수 있을까? 또 그런 아이를 새 가족이 얼마나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을까?
작가는 성급한 답 대신 성장기 내내 스스로 경험한 일들을 솔직하고 풍부하게 묘사한다. 유럽에 도착한 후로 밤마다 악몽으로 시트를 적시던 일, 엄격한 새 부모님, 의지가 되었던 형제들과의 관계, 나중에 입양되어온 역시 한국인인 막내 여동생, 학교생활과 친구들, 선생님, 포르노 잡지와 성에 관한 추억들, 같은 마을에 있던 십여 명의 다른 한국인 입양인들에 얽힌 일들, 그 외 여자아이들이나 외모에 대한 것 등등. 수많은 에피소드들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이어지며 독자로 하여금 아이가 지나온 시간을 다시 생생히 경험하게 해준다. 어느새 독자는 아이의 울고 웃는 내면에 깊이 공감하면서, 그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초대받는다.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던 곳, 바로 한국에서 헤어진 친엄마의 그림자가 거니는 마음의 밀밭 한가운데를 고백해 보여주는 것이다.
그곳에서 아이는 얼굴도 모르는 엄마와의 재회를 수도 없이 상상했다. 엄마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오고 마음이 아팠다. 한 순간도 엄마를 원망해본 적은 없다. 단지 그리움과 애정으로 상상할 뿐이다. 한국인 해외입양의 경우 대개가 그렇듯 엄마는 미혼모였을 가능성이 높다. 살아있을까? 죽었을까? 죽는 순간까지 있는 힘을 다해 나를 사랑했을까? 무엇이 엄마로 하여금 나를 버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을까? 악명 높은 한국의 가부장제 때문이었을까? 고즈넉한 밀밭에 숨어서 대답 없는 질문과 상상을 되풀이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독자는 조용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은......
... 엄마가 그를 버린 게 아니라, 한국사회가 그들 모자를 버린 것이 아닐까?
어린 나무가 온 힘을 다해 수액을 빨아올리듯...
“...한국은 21세기 들어서 선진국의 대열에 올랐다. 하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아이들이 매년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그 수는 줄어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본문 중에서)
뼈아픈 얘기지만 사실이다. 한국은 2000년대 들어서도 매해 2,000명 가량의 아이들을 해외로 입양시키고 있다. 다시 말해, 매해 4,000명의 엄마와 아이들이 생이별을 한 채 밀밭 깊숙이 숨겨져 버린다. 그 엄마와 아이들이 그 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입양기관이나 매스컴에 의해 이른바 ‘해외입양인의 성공스토리’라는 드문 경우가 소개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작가는 이 책을 그런 ‘숨겨진’ 사람들에 헌정하고 있다. 그와 같은 마을, 학교에 있던 십여명의 다른 한국인 입양인들은 대부분 자살하거나, 정신병원에 갔다. 작가 스스로도 외로움과 자기부정의 끝없는 악순환속에 갇힌 채, 어쩌면 그들과 같은 길을 갔을수도 있었음을 슬프게 인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