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75년 만에 다시금 주목받는 위대한 미국 소설
영국 《가디언》지가 뽑은
‘세상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열 권의 소설책’ 선정
“도스토옙스키를 연상시키는 날것 그대로의 힘.
이 책은 왜 카뮈의 『이방인』 같은 필독도서로 손꼽히지 않는가?”_《워싱턴 포스트》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이 선택한 매혹의 클래식 대작!
휘몰아치는 내러티브, 위험하고 독특한 서정으로, 1946년 첫 출간 당시 세련된 당대 비평가들을 충격에 빠뜨린 미국 작가 윌리엄 린지 그레셤의 매혹의 하드보일드 클래식 『나이트메어 앨리』가 국내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1940년대 카니발 유랑극단의 어둡고 비밀스럽고도 활기 넘치는 세계에 발을 들인 주인공이 독심술로 큰 무대에 오르고 또 몰락해가는 과정을 그린 이 대서사시와도 같은 작품은, 2010년에 ‘뉴욕 리뷰 북스 클래식’으로 재출간되어 ‘세월에 묻혀 있던 고전’으로 주목받았고 최근에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브래들리 쿠퍼·케이트 블란쳇 주연 영화로 제작되면서 출간 75년 만에 다시 화제에 올랐다.
1909년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성장하여 포크가수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던 그레셤이 이 소설을 쓰게 된 것은 스물아홉 살 때 참전한 스페인 내전에서 만난 전직 순회공연단 직원에게서, 술을 얻기 위해 닭과 뱀의 대가리를 물어뜯었다는 알코올중독자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그레셤이 스스로 내면의 고통과 방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파고들었던 정신분석학, 마르크시즘, 종교, 심령술 등 온갖 미로에 대한 경험이 작품 전체에 대담하고도 정교하게 직조되어 있다. 그러나 『나이트메어 앨리』의 주인공 스탠턴 칼라일처럼 그레셤 역시 자신만의 ‘악몽의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 작품은 출간 후 큰 파장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얻어 1947년 타이론 파워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고 미국 클래식 누아르로 자리 잡아 그레셤에게 돈과 명성을 안겨주었으나 나중에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그는 알코올중독과 신경쇠약을 극복하지 못했고 두 번째 소설과 논픽션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1946년 첫 작품을 출판 당시 이 작품을 아내(그의 세 명의 아내 중 두 번째 아내)인 시인 조이 데이빗먼에게 헌정했지만, 1942년에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던 그들은 1953년 이혼했다. (결혼 당시 그레셤과 마찬가지로 무신론자였던 데이빗먼은 남편의 정신적 추락에 절망하여 종교에서 해법을 찾고자 했고 결국 아이들을 데리고 영국으로 떠났다. 이후 『나니아 연대기』의 작가 C. S. 루이스를 만나 1960년 병사할 때까지의 이야기는 1993년 영화 <섀도우랜드>를 통해 알려져 있다.) 1962년, 이미 눈이 멀기 시작했고 설암 진단까지 받은 그레셤은 십여 년 전 『나이트메어 앨리』 집필 당시 드나들던 타임스퀘어의 호텔 방에서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했다. 뉴욕의 가을, 53세로 생을 마감한 그의 소식에 주목한 이들은 거의 없었다. 시신으로 발견된 그의 옷 주머니에는 이렇게 적힌 명함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주소 없음, 전화 없음, 일 없음, 돈 없음, 은퇴.’
2010년 재출간된 이래 『나이트메어 앨리』는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판의 미로>로 전 세계를 마법에 빠뜨렸던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차기작으로 선택되어 또 한 번의 아카데미 감독상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 브래들리 쿠퍼·케이트 블란쳇·루니 마라·토니 콜렛·윌렘 대포 등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하여 전 세계 개봉을 앞둔 <나이트메어 앨리>의 각본을―전작들과 마찬가지로―직접 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원작의 어두운 부분은 영화로 가져오지 않고 남겨두었다’고 말한 바 있다.
『나이트메어 앨리』 재판의 서문을 쓴 작가 닉 토시즈는 날카로운 심리적 통찰이 돋보이는 ‘이 책에서 언어는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그레셤의 차고 푸르스름한 강철 같은 산문과 대화체에 사용된 속어, 내면의 독백은 완전하다. 가식이 없고, 언제나 자연스러우며 효과적이다.’ 그레셤은 ‘Geek(기인)’, ‘Cold reading(마음 읽기)’, ‘Spook racket(유령 사기극)’ 등의 속어들을 이 작품을 통해 최초로 책에 쓴 작가였다. 『나이트메어 앨리』의 언어는 ‘별을 탐구하는 시궁창의 문장, 때로 시궁창을 탐구하는 천상의 문장이다.’ 닉 토시즈는 또한 그레셤이 이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 정신분석에서 잠시 관심을 돌려 타로(Tarot)에 매료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그레셤은 타로를 이용해서 작품의 얼개를 엮어 첫 번째 카드인 ‘바보’로 작품을 시작했고, ‘매달린 남자’로 끝을 맺었다. ‘즐거움과 마술과 수수께끼와 헛소리의 전령사’인 주인공 ‘위대한 스탠턴’이, 그 자신이 비웃던 인간 본성인 두려움의 덫에 스스로 걸려들어 파멸의 길로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반영웅 서사는 이렇게 귀결된다.
《워싱턴 포스트》는 『나이트메어 앨리』를 가리켜 ‘도스토옙스키를 연상시키는 날것 그대로의 힘’, ‘단순한 클래식 누아르를 넘어서 인간 조건의 한 기록’, ‘오싹하고 끔찍한 명작’이라고 찬사를 보냈고, 《가디언》지는 ‘세상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한 열 권의 소설책’에 이 작품을 포함시켰다. 『나이트메어 앨리』는 작가가 마음의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전전한 모든 미로의 골목이 주인공 스탠에게 고스란히 투영된 자전적 소설이자,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인간 본성을 사실적이고도 심오하게 파헤친 매혹의 대작이다.
그레셤의 소설은 많은 것들의 이야기다. 신앙의 어리석음과 이를 이용하는 교활함. 알코올중독과 진전섬망의 파괴적인 공포. 아무런 까닭 없이 필멸의 종착점을 할당하는 운명의 카드. 이 책은 범죄와 처벌, 죄와 응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을 그렇게 읽는 것은 오독이다. 이 골목에는 우리가 범죄와 죄악이라고 간주하는 것들이 만연하지만, 벌과 응징은 여기서 차라리 인생 자체의 대가인 듯하다. _닉 토시즈의 서문 중에서
떠돌이 카니발 한 귀퉁이에서 취한 채 허우적거리며 깜깜한 골목을 달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시대의 맥락 속에서 읽으려고 시도할 때, 이 책은 미국 역사의 두꺼운 단면이자 다채로운 인간의 초상화로서 한결 깊이와 흥미를 더한다. 사회의 변두리, 바닥 중의 바닥으로 떨어진 사람들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포착하고 나와 우리에 대한 이해를 더할 책으로 일독을 권한다. _옮긴이의 말 중에서
“공포는 인간의 본성으로 이어지는 열쇠다.
상대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알면 누구든 조종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마술이 이거야.
뭐 어때. 기분 좋게 해주고, 약속과 희망을 주는 거야.”
“인간은 꿈꾸고 또 두려워하기에 앞으로 나아간다…”
카니발 유랑극단 ‘열 가지 쇼’에서 마술 무대를 담당하는, 영리하고 잘생기고 야심 찬 청년 스탠턴 칼라일. 대중의 이글대는 시선 앞에서 살아 있는 닭을 씹어 삼키는 쇼를 벌이는 기인을 바라보며 그는 어떻게 저런 일이 가능한지 의문을 갖는다. 열 가지 쇼의 주인이자 변사인 클렘, 덩치와 힘을 자랑하는 브루노, 사나운 난쟁이 모기 소령, 성장이 멈춘 다리를 묶어둔 채 손으로 온갖 묘기를 펼치는 조, 온몸의 문신을 전시하는 선원 마틴, 전기가 통해도 죽지 않는 소녀 몰리 등과 함께 이 지역 저 지역을 돌아다니던 그는, 알코올중독자 남편 피트와 속임수를 동원하여 독심술을 하는 ‘모든 것을 아는 여자’ 지나와 내연관계를 맺고 그녀에게서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 요령을 배운다.
“미스디렉션이 전부야. 대단한 속임수 상자나 비밀의 문, 속임수 테이블, 다 필요 없어. 미스디렉션을 배우는 데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주머니에서 뭘 꺼내서 모자 안에 넣었다가 다시 꺼내도 구경꾼들은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없어서 눈을 커다랗게 뜰 거야.”
“마술도 한 적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