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의 가장 은밀한 지옥,
여전히 건재한 소라넷을 고발하다
2018년 여름, 대한민국은 불법촬영 범죄와의 싸움으로 뜨겁다. 익명의 개인 여성들이 참여하는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시위'에는, 4차 시위(2018년 8월 4일)까지 누적 인원 십팔만 명이 넘는 여성들이 참여했다.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은 '불법촬영 생산소비, 지체 말고 처벌하라' '솜방망이 법원처벌 규탄한다' '몰카실형 구퍼센트, 시정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애초 시위는 홍익대 남성 누드모델을 촬영하고 유포한 여성에 대한 편파수사 논란에서 촉발되었지만, 피해자 대다수가 여성인 불법촬영 범죄를 방관하는 정부에 대한 비판과 여성의 일상을 앗아가는 디지털 성폭력의 카르텔을 고발하고 있다.
여성을 제물로 삼는 디지털 성폭력의 카르텔의 한가운데 소라넷이 있다. 16년 동안 100만 유저를 거느리고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성폭력이 자행되었던 그곳은 2016년 6월 공식적으로 폐쇄되었다. 그러나 제2, 제3의 소라넷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으며, 여성의 몸을 찍고 유포하고 시청하는 불법촬영 범죄는 끊이질 않고 있다. 범죄 수사는 미온적이고 무혐의로 종결되기 일쑤이며 기소조차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남자들은 몰래 찍고 유포하고 퍼 날라도 죄를 추궁받지 않고 심판받지 않는 것이다.
소설 『하용가』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그늘진 성문화를 가장 폭력적으로 향유하던 온라인 공간을 고발한다. 초대남 모집이라는 이름의 집단강간과 지인능욕, 여성 신체의 비하와 조롱, 신상털기 등 여성의 몸을 제물로 삼아 광란의 카니발을 벌이던 소라넷을 여성의 시선으로 중계한다. 그리고 불법촬영 범죄의 피해자가 되어 그 지옥에 내던져진 여성들이 모든 것을 걸고 스스로를 지켜내는 싸움의 과정과, 익명의 개인 여성들의 저항으로 끝내 소라넷을 폐쇄시키기까지의 과정을 한편의 영화와 같은 속도감으로 재현해낸다. 소설 『하용가』는 헬조선의 가장 은밀한 지옥에 관한 참혹한 보고서이자, 그 지옥을 끝장낸 숱한 여성들의 눈부신 승리의 기록이기도 하다.
핵심포인트 1. 미러링은 원본을 따라가지 못한다.
"원본의 참혹함을 알리고 싶었다."
붉은 옷을 입고 거리로 나온 여성들의 분노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남성을 혐오하는 게시글을 올리고 비하와 조롱의 메시지를 던지는 여성들의 발언을 이해하려고 애쓰는 대신, 손쉽게 도덕적으로 단죄하고 사회적으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소라넷을 포함한 남초 커뮤니티와 웹하드 같은 온라인 공간에서 매일 같이 생산되는 여성을 향한 조롱과 혐오의 유희들을 접해본 이들이라면, 여성들의 미러링은 결코 남성들의 원본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그러나 사회는 여성들의 미러링을 비난하면서, 여성들을 그저 살덩어리로 취급하는 원본의 극악함을 도외시한다. 원본으로 눈을 돌리는 순간, 내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지독한지, 내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저지른 짓이 얼마나 잔인한지를 깨달아야 하고, 그건 안전하다고 믿었던 내 삶조차 흔들릴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중이 진실을 외면한 그 대가를 치르는 건 무수한 여성들이다. 소라넷이 그 증거이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소라넷은 대한민국 모든 여성의 창녀화를 꿈꾸었고, 여성의 몸을 저주로 만들어버렸다. 여성의 몸은 찍히고 파헤쳐지고 전유되며 침탈당하고 있었다. 그것을 목도한 여성들이 불법촬영 범죄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를 쏟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거친 목소리를 단죄하면서 '교양 있고 얌전하게 말하라'라고 요구하는 것은 여성들의 저항을 봉쇄하는 아주 오래된 가부장제의 기술일 뿐이다."
핵심포인트 2. 다큐소설
"지금 우리의 친구, 아들, 딸들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하용가』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들은 논픽션, 즉 실제 있었던 일들이다. 『하용가』는 2015년 10월부터 2016년 6월까지의 시기를 설정하여 소라넷의 '초대남 모집'과 소라넷 폐지운동을 재현하고 있다. '골뱅이 여성'을 상대로 집단강간할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초대남 모집 게시글은 지역과 요일, 대상을 가리지 않고 매일밤 1~2건, 많게는 3건 정도 올라왔다. 그 피해자가 자살에 이른 사례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지만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소라넷 폐지운동의 진원지는 메갈리아 사이트였다. 메갈리안 유저들은 소라넷 모니터링과 몰카 판매금지법 제정 캠페인, 공중화장실 몰카 금지 스티커 붙이기, 국제청원사이트 아바즈의 소라넷 폐쇄청원, SNS 소라넷 실상 알리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소라넷 폐쇄를 이끌어냈다.
작가는 이러한 실제 사건을 토대로 스물다섯 살 동갑내기 세 여성 주인공, 동지수와 구희준, 기화영이라는 허구의 인물을 창조해냈다. 이들은 불법촬영물의 피해자와 초대남 모집글의 목격자로서,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가혹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고, 스스로의 삶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에서 소라넷폐지운동에 동참하고 성장해나간다. 이처럼 『하용가』는 소라넷의 실상과 피해 여성의 심리, 소라넷 폐지운동의 동력 등을 섬세하고 재현하면서 우리로 하여금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숨어있는 진실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바람난 여자친구에게 술을 먹여 정신을 잃게 만든 다음, 모텔로 데려가 여자친구를 강간할 남자들을 초대한다는 거였다. 초대, 라는 말이 이렇게 공포스러운 단어였던가, 살의를 불러일으키는 단어였던가. … 그 밑에 댓글을 단 이들은 또 누구인가?
어떤 이는 횡재했다며 그 장소로 뛰어가고 있었고, 다른 이는 여친을 조져달라는 작성자를 쿨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번에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과 다음번엔 함께하겠다는 기대를 남기며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댓글로는 알 수 없었다. 한 가지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 제1장 초대 중
『하용가』의 중심 사건들과 관련된 뉴스
- 초대남 사건 : 2015년 12월 26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위험한 초대남-소라넷은 어떻 게 괴물이 되었나"
- 메갈리아 : 2018년 7월 30일 경향신문 "그들은 왜 빨간약을 먹은 전사가 되었나?"
2018년 1월 발간된 이프북스 『근본없는 페미니즘-메갈리아부터 워마드까지』
-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 : 2018년 8월 5일 국제신문 "불편한 용기 뭐길래 광화문
여성 7만여 명 시위"
[스토리라인]
1. 2015년 시월의 무호역사거리에서 초대남사건 발생.
2. 무호역사거리 초대남사건을 구희준이 메두사를 통해 알게 되고 친구인 동지수에게 전달.
3. 대기업 계열사 MJ 커뮤니케이션즈의 인턴사원 동지수는 동료인턴 기화영의 섹스동영상이 소라넷에 올라온 사실을 남자사람친구 이시형을 통해 알게 된다.
4. 구희준은 반지하 원룸에서 샤워하고 있는 자신을 누군가 몰래 보고 찍는 것을 목격.
5. 4번 사건의 범인은 구희준에게 협박문자를 보내고 구희준은 범인을 잡을 수 있는 단서를 찾기 위해 집 안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다.
6. 동지수는 기화영에게 소라넷에 그녀의 섹스동영상이 올라와 있다는 사실을 알린다.
7. 자신의 섹스동영상이 소라넷에서 베스트를 찍고 남초커뮤니티와 성매매업소 홍보광고 등으로 사용되는 상황에 충격을 받은 기화영은 자신이 기억할 수 없는 하룻밤과 그 하룻밤을 보낸 남자, 김세준을 떠올린다.
8. 동지수는 무호역사거리 초대남사건의 초대남 중 1인이 자신과 같은 회사인 MJ커뮤니케이션즈 사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9. 구희준은 자신을 몰래 찍은 범인을 잡기 위해 설치한 몰래카메라에 몇 년 전 데이트강간의 가해자였던 전 남친이 자신의 집에 침입한 사실을 알게 된다.
10. 메두사 회원이었던 구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