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0년에 옛이야기로 구전될 2019년의 이야기
걷는사람 ‘짧아도 괜찮아’ 시리즈 5
박생강 기담집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
2017년 세계문학 우수상을 수상한 박생강의 초단편 소설집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이 출간됐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 『에어비앤비의 청소부』에 이어 출간된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은 위트 있고 톡톡 튀는 소재들로 주목받는 박생강 작가의 단편 소설집이다.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에는 개성 넘치고 유쾌한 16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헤어진 애인을 떠올리며 찾은 동네 치킨집, 그리고 우연히 치킨집 사장으로부터 음력 2월 22일에 나타나는 차가운 귀신을 통해 옛 애인의 기억을 지울 수 있다고 전해들은 주인공은 먹다 남은 치킨으로 귀신을 잡으러 가기도 하며(「치킨과 차가운 귀신」) 인천공항의 비밀 지하 벙커에서 사육 중인 에일리언의 치아를 닦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여자의 이야기(「에일리언의 청소부」) 등 기이하고 솔깃한 이야기들을 통해 2019년을 사는 현대의 기담을 풀어내고 있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듣던 무서운 이야기에는 귀신, 구렁이, 도깨비, 까치 등이 등장했다면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에는 귀신과 좀비, 편의점, LG, 에일리언과 같은 현대적인 소재와 공간 들이 등장한다. 우리에겐 가깝고 미래의 2190년에는 멀게 느껴질 소재들이다. 무서운 이야기보다는 우화 같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한기 작가는 박생강 작가와의 대담을 통해 “「금순, LG, 로자」가 바로 대놓고 브랜드가 등장하는 경우이다. 이 소설 재밌게 읽었는데, 제 친구가 LG에 다녀서 정말 LG에 로자가 있느냐고 물었다가 무슨 헛소리하느냐고 혼났습니다.”라며 박생강 작가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브랜드나 상품 이름이 그대로 등장하는 것이 신선하고 재미있으며, 작품이 가지는 상상력을 더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박생강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기획하면서 독자들이 소설의 결말 앞뒤에 다른 이야기를 붙이고 놀 수 있는 구조와 틈을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그렇게 되면, 작가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더 풍성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질 테니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옛이야기들이 다양하게 변주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소설의 결말에 새로운 스토리를 엮거나, 소설 시작 전에 다른 서사가 있을 법한 짧은 소설들인 것이다. 그런 부분들까지 상상하며 읽는다면 독자들은 『치킨으로 귀신 잡는 법』의 재미를 얼마든지 증폭시킬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야말로 필자-독자 간의 유쾌한 상호작용이 아닐까.
2005년 장편소설 「수상한 식모들」로 문학동네 장편소설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박생강 소설가는 네 권의 책을 내는 동안은 ‘박진규’로 활동을 해왔다. 이후 2014년 장편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를 출간하면서부터 필명 ‘박생강’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특유의 향과 톡 쏘는 맛이 있는 ‘생강’처럼 그의 소설은 세상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박생강 식’으로 자유자재로 버무려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박생강의 소설들은 처음의 맛과 중간에 음미하는 맛, 그리고 마지막 장을 덮을 때의 맛이 모두 다른데, 그 점 때문에 우리는 계속 박생강의 소설을 기억하며 다시 읽게 될 것이다.
도서출판 걷는사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산문집 시리즈입니다.
최근 가장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의 개성적인
손바닥소설과 에세이를 두루 만날 수 있습니다.
작품의 길이를 초단편으로 구성하여 독자들과의 폭넓은 소통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일상의 짧은 순간순간 휴식처럼, 때로는 사색처럼 책을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