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 주거문화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공사는 1970년 서울에 있는 7가지의 서로 다른 대표적인 아파트를 유형별로 나눠 각 50세대씩 골라 장독의 숫자와 보관 장소, 세탁 장소와 세탁물 건조 장소를 조사했다. 장독의 경우 아파트 유형에 상관없이 평균 9개 이상의 독을 가지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세탁물 건조 장소는 발코니가 압도적으로 많고 옥상, 부엌, 방 등으로 나타났다(98~99쪽). 와우시민아파트가 붕괴되었을 때 붕괴의 주원인이 장독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한신 부동산이니 강남 부동산이니가 바로 복덕방을 의미한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 아무리 내부를 기웃대도 복덕방 영감 비슷한 늙은이도 눈에 안 띄었다.” 박완서의 단편 〈서글픈 순방〉에 나오는 것처럼(200쪽) 동네의 터줏대감으로 동네 사람들과 지리를 꿰뚫고 있는 노인이 “집이나 방을 찾는 사람들의 안내자 역할”을 하던 복덕방이라는 말은 사라지고 언제부턴가 부동산중개업소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016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정봉과 정환, 덕선이가 살던 집을 부르는 ‘불란서식 미니2층’에서 주택 이름에 ‘불란서식’과 ‘미니’가 붙은 이유를 따져보았는가 하면, 최초의 중산층아파트로 탤런트 강부자 씨가 최초의 입주자였던 한강맨션아파트를 포함한 맨션아파트의 탄생 배경과 맨션아파트를 향한 사람들의 욕망을 파헤치기도 했다. 제주의 ‘핫 플레이스’ 이시돌 목장에 남아 있는 테쉬폰이 수유리와 구로동에 국민주택의 여러 유형 중 하나로 지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오래되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강남의 50평 아파트에 살면 나름 성공한 인생”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생 성공의 바로미터로서 강남과 아파트, 선납입주의 필수 코스가 된 모델하우스의 유래와 학습 효과 등을 분석하기도 했다. 《박철수의 거주 박물지》는 우리 주거문화의 거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장독대, 더스트 슈트, 곤돌라처럼 흔적만 남은 주거공간의 사소한 부분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상가주택, 불란서식 2층, 맨션아파트처럼 주거 유형의 변천사와 단지 공화국, 국토건설단, 서울 요새화 계획처럼 법령과 제도에 의해 형성된 거주문화 등 오랜 시간 관심 두고 연구한 연구자가 아니라면 놓치거나 너무 광범위해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들을 담았다. 이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가 바로 한강변 고층아파트 계단실에 만들어진 일종의 군사시설인 ‘총안’이다. 몸을 숨긴 채 적을 향해 총을 내쏠 수 있게 보루?성벽 등에 뚫어 놓은 구멍을 말하는 총안은 포안과 더불어 아주 소극적인 방어용 시설이지만 그것이 한강변에 새롭게 들어서는 고층아파트에 설치되었다니 의아스런 일이다. _211쪽에서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쳤건만 문화촌은 여전히 일제강점기의 그것인양 동경과 욕망의 대상이었다. 서울 불광동이나 우이동과 같은 교외주택지에 새로 들어서는 집들은 소위 개량온돌과 함께 변소나 욕탕 등을 따로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판유리와 색깔 입힌 기와, 방수페인트 등을 사용해 문화촌의 중요한 판단기준을 만들었다. 당연히 문화촌은 상품이 되었고, 아파트에는 문화촌과 함께 ‘문화생활을 누리는 곳’이라는 이름이 붙어 다녔다. _270쪽에서 집을 구할 때도 마치 신도시 외곽의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하듯 칸칸이 나뉜 가짜 집을 들락날락한다. 장화를 신고 아무것도 지어지지 않은 허허벌판을 헤매던 촌스런 시절을 거쳐 깔끔한 주차장과 호화로운 외관을 가진 휘황찬란한 가짜 집을 찾고 그 안에서의 현란한 중산층 생활을 구경하는 시대로 세상은 달라졌다. _355쪽에서 사소한 것에도 존재 이유와 나름의 이야기가 있다 지금 우리를 만든 힘의 원천이 무언가를 찾아낸다는 것이 책을 꾸리게 된 이유였지만 속 시원한 답을 내지는 못하고 말았다. 개인의 취향과 기호가 과연 나로부터 잉태된 것인가, 혹시라도 누군가가 몰래 던져놓은 덫에 걸려들고 만 것은 아닌가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따지려들었다. 그래서 확인한 것이 무력하게도 시장은 곧 우리의 운명이라는 것이었지만 법령과 제도가 개인을 규정하고 말았다는 회의도 더불어 확인했다. 애석하고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벗어날 수 없는 욕망과 힘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꾸려야만 하는 무기력을 탓하기도 했으며 사라졌다고 믿었던 야만이 모양을 바꾼 채 다시 눈앞에 버티고 있다는 점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매일 만나는 사소한 장면에도 녹록치 않은 존재 이유와 얘기가 담겼음을 엿볼 수 있었고, 질시와 배제가 만연한 공간 환경이며 도시를 만나기도 했다. _369쪽에서 이 책은 장 구분을 하기보다는 서로 연관 있는 주제를 네 개씩 다섯 꾸러미로 묶었다. 각 꾸러미 별로 앞선 세 꼭지는 이야기하는 주제의 인과관계, 변화 과정을 신문, 잡지, 국가기록원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기록 자료 등을 바탕으로 집요하게 추적하고 꼼꼼하게 읽어 내려갔다. 그만큼 많은 각주도 달렸다. 뒤이은 한 꼭지는 각주 없이 짧은 글로 비교적 가볍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상가주택, 불란서식 주택, 테쉬폰을 묶은 첫 번째 꾸러미는 “이름에 투사된 정치적 희구와 현실”이라는 꼭지로 갈무리를 했다. 장독대, 식모방, 더스트 슈트를 주제로 한 두 번째 꾸러미에는 “다용도실 소멸의 생활문화사”를 덧붙였다. 세 번째 꾸러미에서는 야외 수영장이나 테니스장과 같은 아파트단지의 운동시설, 선룸이나 테라스가 확장형 발코니로 변질된 사연, 복덕방의 변천사를 이야기하고 한강변 고층아파트에서 볼 수 있는 ‘총안’을 비롯한 서울 요새화 계획에 관한 이야기를 더했다. 단지의 유래부터 고착화되기까지 과정과 전략, 맨션아파트를 향한 욕망, 구별짓기 수단으로 붙인 ‘촌’을 이야기한 네 번째 꾸러미에서는 ‘말’과 ‘단어’에 담긴 허구와 과잉을 덧붙여 사회의 몰염치와 천박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했다. 마지막 꾸러미는 폭력적 국민동원이었던 국토건설단, 인생 성공의 바로미터로서 본 강남과 아파트, 조선 최초의 모델하우스와 새로운 유형으로 진화하고 있는 모델하우스를 이야기하고 유물로 남은 곤돌라 이야기를 더했다. 참고문헌 중 소설을 빼놓을 수 없다. 1930년대의 이태준의 〈복덕방〉과 박태원의 〈골목 안〉부터 2017년 제11회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황정은의 〈웃는 남자〉까지 50편 이상의 소설을 참고하고 인용했다. 소설은 당시 우리 도시, 우리 삶의 공간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좋은 참고서이다. 저자는 “소설이 없었더라면 생각의 지평을 넓히거나 고개를 주억거릴 일이 적었을 것이다.”라는 말로 소설이 큰 도움이 되었음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