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 그가 부르는 ‘긴긴 노래.’
가수 김창완은 처음부터 빼어난 글쟁이였다. 해맑은 듯 구슬프고 투명한 듯 한없이 쓸쓸한 산울림의 노래들이 김창완이 써내는 탁월한 노랫말에 기대고 있음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결코 나서서 글쟁이를 자처한 적이 없음에도 여러 신문과 잡지들은 심심찮게 그를 불러냈고 선명하면서 동시에 무한한 메타포를 지닌 글들은 그간 많은 독자를 사로잡아 왔다. 그가 써낸 글의 종류는 서정성이 강한 에세이와 칼럼에서 문화비평, 나아가 북리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김창완의 글 솜씨는 그의 주요활동 무대인 방송가에서도 일찌감치 호가 났다. 사소한 멘트 하나까지도 작가와 PD에 의존하는 다른 방송인들과 달리 그는 웬만한 원고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작성한다. 벌써 3년이 넘게 진행하고 있는 SBS 라디오 데일리 방송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그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이 프로그램의 오프닝 멘트를 직접 써왔다(이 프로그램은 청취자의 충성도가 높기로 아주 유명한데 특히 김창완의 오프닝 멘트는 홈페이지 조회 수가 수백 건에 이를 정도로 팬들의 ‘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여러 매체에 발표한 혹은 혼자만의 노트에 가둬놓은 원고가 자그마치 수천 매에 달했다. 흩어져 있는 원고들을 검토한 후 책 출간을 논의했을 때 김창완은 “내 글들이 우리 시대 사람들을 다른 방법으로 위로할 수 있다면…….”이란 단서를 달았다.
이 책 《이제야 보이네》는 바로 그 소망을 ‘성실하게’ 구현한 결과물이다. 사유의 낙차가 큰 여러 유형의 원고들 중 일반에게 친숙한 김창완의 이미지에서 너무 멀리 나가지 않은 소재와 내용을 우선 추려냈다.
꿈, 추억, 사랑, 위로. 김창완 감성의 근원
이 책 《이제야 보이네》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김창완의 음악적 감성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유년기에 대한 회상이다. 물론 가수로 나와 연기자로, 라디오 진행자로 대중에게 알려진 삶을 살았지만, 김창완의 성장기라고 해서 이 땅에서 나고 자란 동시대 사람들과 다를 게 없었다.
이웃동네 아이들과의 패싸움, 떼로 몰려다니며 동네를 순찰하던 일, 어른들의 세계를 엿보는 은밀함, 가난과 불안을 일상처럼 껴안고 살던 기억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어린시절에 각인된 풍경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일상적인 경험을 저장하고 사유하는 방식은 일반인들과 사뭇 다르다. 문제는 경험이 아니라 그것을 이해하는 시선에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그를 ‘김창완’이게 만드는 무기가 된다.
수많은 거짓말들 중에는 눈물겨운 거짓말도 있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자기의 인생이 왜곡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원래는 피아노 연주자가 되었어야 하는데 정치가가 되었다든지, 그때 잘 벌었던 돈을 관리만 잘 했더라면 여생이 편안할 뿐만 아니라 너희들의 유산도 적지 않았으리라든지 하여간 뭔가 잘못된 구석이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눈물 나는 대목은 그 다음이다. 이것도 물론 거짓말이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이 한 마디로 거짓말로 점철되는 생을 정리하는 것이다. - 본문 80~81쪽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는 철망이 있다. 철망 가까이 가서 꿩을 바라보면 철망은 사라진다. 그러나 조금 떨어져서 철망을 보면 그 안의 꿩은 보이지 않는다. 꿩과 철망을 동시에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같은 땅이었지만 철망 안과 철망 바깥은 아주 다른 세상이었다. - 본문 101쪽
풍성한 표현력
김창완의 독특한 사유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풍성한 표현력이다. 자장면을 드시는 어머니의 모습, 등산길에서 만난 사람과의 대화, 재래시장 상인들의 모습이 그의 글에서는 아주 특별한 풍경으로 되살아난다. 자신이 태어난 집을 묘사한 ‘아름다운 집’은 초여름의 분위기와 오래된 한옥이 어우러지는 모습을 한 컷의 흑백 사진처럼 선명하고 경쾌하게 그려냈다.
조 대목이 심어놓고 간 마당의 연상홍은 옹달샘 가의 바위와 어우러져 초여름을 합창하고 처마는 산자락과 하늘이 맞닿는 곳에서 그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바람은 신이 난 아이들처럼 대문을 와락 밀고 들어와 대청마루로 올라타고는 뒷문을 화들짝 열고 달아났다. - 본문 132쪽
또 진흙밭에서 사금파리를 하나 파내고는 ‘고려자기’를 발견했다고 좋아하는 아이들에게서 ‘무엇에고 생명과 역사를 부여하는 특이한 능력’을 포착하고 남편과 다투고 난 후 부엌에서 나는 아내의 밥솥 여는 소리, 화장하는 정도를 통해 부부 사이에 드리워진 이상기류를 감지해내는 모습 등은 작가적 상상력을 넘어 사소한 것들 속에서 삶의 진실을 끌어내는 김창완만의 놀라운 힘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