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
오늘날은 그야말로 그 무엇이든 ‘예술’이라고 불릴 수 있는 시대다. 괴이하기 짝이 없는 물건이나 글도 미술관에 전시되거나 문학으로 인정되고, 심지어 소음마저도 음악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미술ㆍ문학ㆍ고전음악이 ‘죽음’에 이르렀다는 두려움의 소리도 터져 나온다. 그렇다면 이렇게 혼란스러운 시대에 우리는 예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아니, 그보다 먼저, 대체 이런 혼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래리 샤이너의 역작 『순수예술의 발명The Invention of Art』은 예술에 관한 이런 질문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본다. 즉 예술의 관념이 변천해온 역사를 고찰하는 것인데, 샤이너 교수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한다.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예술이 18세기에 분리되었으며, 이후 우리는 그 분리를 극복하고자 줄곧 모색해왔으나 아직 뜻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따르면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예술에 관한 혼란은 결국 예술의 분리를 극복하려는 모색의 과정이 아직 진행 중이라는 뜻이며, 그 진행 중인 과정을 이해하려면 먼저 예술이 어떻게 분리되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18세기에 예술에는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예술의 분리
고대의 ‘예술(라틴어의 아르스와 그리스어의 테크네)’이란 말 조련, 시 짓기, 구두 제작, 통치술 등 인간의 모든 기술을 뜻하는 말이었다. 당시에 인간의 예술과 반대되는 것은 수공예가 아니라 자연이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개념의 예술은 18세기에 결정적으로 분리되었다. 우아한 기술로 수행된 인간의 모든 활동을 2000년 이상이나 지칭했던 예술 개념이 쪼개져 순수예술이라는 새로운 범주(시, 회화, 조각, 건축, 음악)를 창출했는데, 이 범주는 수공예 및 대중예술(구두 제작, 자수, 만담, 대중음악 등)과 대립되었다. 이제 수공예와 대중예술은 기술과 규칙만을 요구하고 그저 용도와 재미만을 위한 것인 반면, 순수예술은 영감과 천재성이 있어야 하고 작품 자체를 즐겨 정제된 기쁨의 순간을 맛보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예술가와 장인도 분리되었다.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예술가’와 ‘장인’은 바꾸어 쓸 수 있는 단어였다. 현대적 의미의 예술가나 장인은 존재하지 않았고, 오직 테크네 혹은 아르스에 따라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시계와 구두를 만드는 예술가/장인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18세기 말에 이르자 ‘예술가’와 ‘장인’은 서로 반대말이 되었다. 이제 ‘예술가’는 순수예술 작품의 창조자를 의미했고, 반면에 ‘장인’은 유용하거나 재미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단순 제작자였다.
예술의 즐거움 또한 순수예술에 적합한 특별하고 정제된 즐거움과 실용적이고 오락적인 일상의 즐거움으로 구분되었다. 정제된 혹은 관조적인 즐거움에는 ‘미적’이라는 새로운 명칭이 붙었다. 예술을 구축으로 보았던 이전의 광범위한 견해는 기능적 맥락의 즐김과 짝이 되었고, 예술을 창조로 보는 새로운 관념이 요구한 것은 관조적 태도와 맥락으로부터의 분리였다.
그런데 이런 분리는 단지 예술의 정의만 이것에서 저것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개념ㆍ관행ㆍ제도로 이루어진 예술의 한 체계 전체가 다른 체계로 대체된 것이다. 예컨대 16세기와 17세기에는 현대의 미술관 대신 ‘진기품 진열실’이 있었고, 대부분의 음악은 독립된 연주회장 대신 종교의식이나 정치적 행사, 사회적 오락에 수반되었다. 대다수의 장인/예술가들은 후원자들로부터 주문을 받아 작업했는데, 계약서에는 흔히 내용ㆍ형식ㆍ재료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었으며 완성된 작품을 어느 장소에 두고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지까지 미리 정해져 있었다. 게다가 예술의 제작은 여러 사람의 생각과 일손이 필요한 협동 작업이었다. 이에 반해 현대의 예술 체계를 지배하는 규범에서 이상적인 것은 협업을 통한 창안이 아니라 개인적 창조이고, 작품은 특정한 장소나 목적을 위해 제작되기보다 작품 자체로 존재하며, 예술작품은 기능적 맥락에서 분리되었으므로 연주회장이나 미술관, 극장, 독서실에서 조용하고 경건하게 주목하는 것이 이상적이라고 여겨진다.
분리 이후
19세기 초 이후로는 현대 순수예술 체계가 유럽과 미국을 지배했지만, 예술과 수공예를 가르는 이 체계의 근본적인 양극성에 저항해온 예술가와 비평가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호가스, 루소, 울스턴크래프트 같은 이들은 예술의 분리가 일어나고 있던 바로 그 시기에도 예술가와 장인, 미적인 것과 도구적인 것을 따로 가르는 데 반대했다. 이들과 똑같이 에머슨, 러스킨, 모리스도 ‘예술 대 수공예’, 그리고 ‘예술 대 생활’이라는 근저의 이분법을 공격하면서 급진적인 도전을 감행했다. 20세기에도 다다이스트들과 뒤샹에서부터 팝과 개념미술을 이끈 주요 인물들은 예술을 조롱하거나 회의하거나 반어적으로 비꼬았다.
그러나 순수예술 체계에 저항했던 작가들 대부분의 작품은 빠르게 예술로 흡수되어, 지금은 그들이 조롱하고자 했던 바로 그 미술관과 문학 및 음악의 정전 속에 안치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순수예술의 세계 역시 이렇듯 저항의 행위들을 다시 포섭함으로써 한계를 넓혀갔다. 처음에는 사진, 영화, 재즈 같은 새로운 유형의 예술을 받아들였고, 다음에는 ‘원시’ 예술과 민속예술의 작품들을 차용했으며, 마침내는 자해에서부터 존 케이지의 소음까지 모든 것을 포용함으로써 순수예술의 경계선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는 듯하다. 즉 저항과 동화의 과정이 순수예술 체계의 양극성을 심각하게 훼손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라 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은 긴급한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과연 우리가 되돌아갈 수 없는 고대의 체계와 많은 이들이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 현대의 체계 둘 다를 넘어서는 제3의 체계가 있을 수 있을까?
책의 구성
1부 「순수예술과 수공예 이전」에서는 고대의 ‘예술’이란 여전히 어떤 목적에 바쳐진 인간의 모든 제작 혹은 활동을 뜻했으며, 예술가와 장인의 구분도 아직 규범적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예술의 현대적 이상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진전이 르네상스 시대에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미켈란젤로가 활동했던 이탈리아에서나 셰익스피어가 활동했던 영국에서나 모두 예술과 수공예, 예술가와 장인을 하나로 본 과거의 예술 체계가 아직 규범이었음을 제시한다.
2부 「예술의 분리」에서는 18세기를 지나는 동안 과거의 예술 체계에서 일어난 중대한 분열에 대해 서술한다. 이 분열은 수공예에서 순수예술을, 장인에서 예술가를, 도구적인 것에서 미적인 것을 떼어내고 미술관, 세속 음악회, 저작권 같은 제도들을 설립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또한 2부에서는 이 균열과 연관된 사회ㆍ경제ㆍ성 역할의 측면들도 탐구한다.
3부 「대항의 흐름」에서는 미적인 것이란 무관심적이라는 관념에 저항한 세 사례(호가스, 루소, 울스턴크래프트)를 살펴본다. 아울러 옛 예술 체계의 목적 개념을 소생시키려 했으나 예술 그 자체를 추구한 새 체계의 도래를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을 뿐인 프랑스혁명의 대담한 시도들을 검토한다.
4부 「예술의 신격화」에서는 순수예술 체계의 구축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19세기에 예술은 최상의 가치로 격상되었고, 예술가라는 직업은 독특한 정신적 소명이 되었으며, 순수예술 제도가 유럽과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가면서 대중들에게 올바른 미학적 행동거지를 가르쳤다.
5부 「순수예술과 수공예를 넘어서」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걸쳐 순수예술의 범주에 추가된 새로운 예술들과 순수예술 범주에 저항한 새로운 형식들의 몇몇 사례를 살펴본다. 이는 현대 예술 체계가 기본적인 양극성을 변화시키지 않고 어떻게 새로운 예술(사진)과 새로운 저항 형식(예술수공예운동, 러시아 구축주의)을 동화시켰는지 보여준다. 아울러 5부의 마지막 장에서는 20세기에 들어와서도 지속적으로 힘을 발휘하고 있는 ‘순수예술 대 수공예’의 구분과 이 구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