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프로이트는 정말로 그런 사람인가? 프로이트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나 프로이트를 잘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이트가 창안한 정신분석학의 학문 범위와 관련 저서는 뜻밖에도 광범위하다. 그런데 우리의 머릿속에 새겨진 프로이트의 모습은 어떤가? 기껏해야 모든 곳에서 남근 상징을 찾는, 강박적으로 성性에 집착하는, 편안하게 조롱할 수 있는, 변태 같은 범汎성욕론자 노인네가 아닌가? 실제로 논의가 이런 방향으로 흐를까 봐 프로이트도 걱정하던 시기가 실제로 있었다. 본능에 관한 이론들을 구성해 가는 과정에서 프로이트는 나르시시즘이 곤혹스런 상황을 만들 수 있음을 깨닫게 되는데, 나르시시즘 논의가 제공하는 이론적인 결과들이 성적 본능과 자아 본능의 철저한 구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동기들은 정말로 모두 성적인 것인가? 프로이트는 정말 성sex만을 외치는 범성욕론자인가? 이 책은 물론 이 책의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은 프로이트의 삶과 그의 주요 개념, 텍스트들을 간결하게 소개할 뿐만 아니라, “19세기 말에 형성된 정신분석학이라는 ‘이상한 사조’가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을 형성하는 데, 21세기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존재로서의 우리 자신에 대한 관점을 형성하는 데 그렇게 중심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을까?”라는 좀 더 광범위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시도이다. 저자는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의 탄생과 발전 과정을 따라가며 정신분석학을 이론적?역사적 맥락에 위치시킨다. 그리하여 우리 주변에 정신분석학적 개념들이 왜 그렇게 만연해 있는지, 대학 서점이나 정신과 진료실뿐 아니라 신문·영화·현대 예술 전시회·로맨스 소설·TV 토크쇼와 자기계발서 등 우리 자신의 이미지를 되비치는 문화와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곳에 왜 그렇게 널러 퍼져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프로이트의 ‘전혀 새로운’ 사유 사실 프로이트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성욕이 아니라 우리의 의식, 사유 그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우리는 어떻게 사유하는가? 그리고 이 ‘어떻게 사유하는가?’란 질문을 어떻게 사유하는가? 이와 관련하여 프로이트가 미친 영향은 정말 엄청나다. 20세기는 프로이트의 세기로 일컬어졌고, 21세기를 사는 사람들 역시 정신 작용과 관련하여 무엇을 믿든지 간에 어떤 차원에서든 프로이트에게 빚을 질 수밖에 없다. 프로이트에 찬성하든 반대하든지 말이다. 프로이트의 이론, 곧 정신분석학은 사랑?증오?유년기?가족 관계?문명?종교?성욕?판타지 등 우리의 일상생활을 구성하는 여러 상반되는 감정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을 제공했다. 오늘날 우리는 혁신적인, 그렇지만 논쟁의 여지가 있는 프로이트 개념들의 그늘 아래 살고 있다. 프로이트의 글은, 그것이 포괄하는 범위나 이후 그것이 끼친 영향의 측면에서 본다면, 한 이론가의 생각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개념과 그 개념의 정수를 구체화하고 있다. 프로이트의 글은 강력한 변형의 과정을 겪어 온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신화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영향 프로이트의 저작 활동 기간이 상당히 길었을 뿐 아니라, 그의 추론적?임상적 사유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프로이트를 읽을 때 강조되어야 할 서로 다른,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입장이 늘 존재한다. 이 책은 서로 충돌하는 입장들을 정신분석학적 사유의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고려하며, 모순이 함축하는 생산성을 염두에 둔 채 프로이트의 글을 읽어 나간다. 프로이트를 적절하게 읽는다는 것은 그를 신중하게 읽어 낸다는 의미다. 프로이트가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우리를 놀라게 한다. 문제는 공포영화에 등장하는 도끼를 든 살인자처럼 오늘날 정신분석학이 더 끈질기게 우리 문화 속으로 되돌아와 우리를 괴롭힌다는 사실이다. “억압된 것은 항상 되돌아온다!”고 말한 사람이 바로 프로이트이다! 그리고 프로이트에 대한 맹공격이 이루어지고 정신 질환의 생물학적 원인들이 새롭게 강조되는 상황은 정신분석학 자체를 우리 시대의 억압된 것으로 만들고 있다. 이 책에서는 특히 프로이트의 ‘읽기’를 검토하고, 이를 후대 비평가들이 어떻게 이용하는지를 살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