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코레오그래피, 무용에 새 숨을 불어넣다
낡은 무용을 비워내고 다시 쓰는 실험적 안무가들
무용 혹은 춤이란 무엇인가? 무용은 아름다워야 하는가? 그것은 우아한 몸짓의 연속이면 충분한가? 춤의 ‘글쓰기’, 즉 안무를 뜻하는 ‘코레오그래피(Choreography)’라는 용어를 전면에 내건 이 책은 춤에 관한 기존의 이해를 장악해온 지배적 관념에 치열하고 엄밀하게 반응하는 무용과 퍼포먼스 분야의 최신 흐름을 소개한다. 1990년대 초 이후부터 현재까지 유럽과 북미의 무용계를 송두리째 뒤흔들며 무용에 새 숨을 불어넣은 동시대 주요 안무가들의 작업에 관한 비평적 개론서.
이 책이 소개하는 예술가들 중 특히 제롬 벨, 자비에르 르 루아, 브루스 나우먼 등은 매년 서울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국제다원예술축제인 ‘페스티벌 봄’과 국제현대미술전시회인 ‘광주비엔날레’, 그리고 ‘아시아문화중심도시 무용원’, ‘백남준 아트센터’에도 주요하게 초청되는 이들이다. 이들 각각의 작업은 결코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며, 각자가 살아가는 사회 깊숙한 곳의 이야기를 가지고 우리에게 말을 건다. 그렇기 때문에 첨예한 문제의식을 지닌 채 동시대와 철학적으로 소통하는 이들의 작업은 국내의 예술 향유자들뿐 아니라 많은 인문학자들에게 중요한 동시대적 텍스트로 자리 잡고 있다.
춤은 언제부터 ‘움직임’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게 되었나?
무용의 ‘낡음’이란 무엇을 뜻하는가? 많은 이들이 춤을 ‘움직임의 연속’으로 정의하는 데 수긍하곤 한다. 하지만 ‘안무’를 뜻하는 ‘코레오그래피’라는 개념의 발생 과정을 들여다보면 춤과 움직임의 관계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조직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코레오그래피는 서양에서 근대성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궤를 같이한다는 것이 이 책에서 저자가 여러 철학자와 문화사가 들의 논의에 힘입어 중요하게 짚어내는 대목이다. 다시 말해 ‘춤’의 개념은 ‘안무’로 전환되면서 근대성의 주체 생산 프로젝트를 담당하게 된다. 춤을 춤답게 하는 데에 끊임없는 움직임이 필수라고 합의되기 시작한 것 또한 이로부터다. 그러나 춤과 움직임의 결합은 사라짐을 숙명으로 떠안게 된다. 무용의 본질이자 태생적 한계로 여겨져온 것은 바로 춤이란 행위와 함께 사라질 뿐 눈앞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움직이는 몸이 필요했고, 또 한편으로는 안무, 곧 춤의 ‘악보’가 필요했다. 이로써 ‘춤orchesis의 글쓰기graphie’를 뜻하는 ‘오케소그래피’ 혹은 ‘코레오그래피’라는 용어가 일찍이 16세기부터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움직이는 주체와 글을 쓰는 주체는 동일시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근대성 프로젝트를 통해 주체는 운동성을 지니도록 훈육되는 한편, 춤은 움직임을 자신의 존재 방식으로 채택하게 되었다. 바꿔 말해, ‘나는 움직인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이 책은 그러한 끊임없는 움직임에 집착하는 근대성의 강박에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예술가들의 작업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주체화, 재현, 기억, 현존 등의 존재론적 문제와 관련해서 퍼포먼스 아트, 시각예술, 비판이론과 적극적으로 대화하며 ‘움직임’이라는 개념을 낱낱이 파헤치고 해체해 당대 무용을 새롭게 정립한 예술가들로 제롬 벨, 후안 도밍게스, 트리샤 브라운, 라 리보, 자비에르 르 루아, 베라 만테로, 브루스 나우먼, 윌리엄 포프엘 등이 소개된다. 저자 안드레 레페키는 기존의 무용학이라는 학제적 테두리를 넘어 이들의 작업을 니체, 하이데거, 들뢰즈, 푸코, 알튀세르, 슬로터다이크, 주디스 버틀러, 호미 바바, 프란츠 파농, 호세 무뇨즈 등의 철학자와 이론가 들의 첨예한 질문들 속에 위치시켜 새로운 비판적 무용학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면서 이들의 작업이 주체화 이론, 후기구조주의 이론, 후기식민주의 이론, 인종 연구, 비판이론의 급진적 정치성을 수행성의 차원으로 확장하는 방식을 읽어낸다.
무용과 미술과 퍼포먼스 사이에서 다시 쓰는 춤!
지난 20여 년 동안 북미와 유럽에서 벌어진 일련의 안무적 실험들은 무용의 개념적 기반을 특히 뒤흔드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춤을 ‘움직임의 흐름 혹은 연속’으로 정의하거나 ‘무용수들이 위아래로 점프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향들이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다. 대체 왜 춤은 움직이는 몸을, 그것도 흥분되거나 고양된 상태로 움직이는 몸을 전시해 보여주는 데 집착해야 했는가? 또한 왜 그러한 경향을 거스르는 안무적 실천들이 춤의 근본적인 정체성을 위협한다고 인식하게 되었는가? 이 책이 던지는 이와 같은 질문들은 르네상스 이후 서양 예술사에서 춤이 자율적인 예술의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쉼 없는 운동성과 스스로를 어떻게 동일시해왔는지 드러낸다. 근대적 주체로 탄생하기 위해 스펙터클한 움직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욕망은 이제 새로운 안무가 세대에 의해 재검토되기에 이르렀고, 그리하여 이제는 이들의 비판적 무용학이 춤을 둘러싼 논의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안무적 실천을 유효한 예술적 실험으로 인정하려는 의지와 능력은 여태껏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 실상이다. 최근의 실험적 안무는 전통적 분류법상의 ‘무용’에 국한되는 법 없이 춤과 회화, 행위예술, 설치미술 사이를 구획 짓지 않은 채 행해진다. 그러한 작업에서 자주 포착되는 다른 종류의 움직임, 혹은 움직임의 ‘없음’은 전통적 무용 공연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물론, 비평계에서조차 제대로 수용되지도 향유되지도 못했다. 그러한 움직임의 변형 혹은 부재는 그저 큰 의미 없는 ‘잠시 멈춤’으로 인식되거나, 때로는 심지어 관람에 방해되는 성가신 요소로서만 인식되곤 했다. 이에 이 책은 새로운 안무가 세대의 작업에 걸맞은 새로운 비평적 개론을 제시한다. 이들의 작업이 새롭다 함은 장르의 경계를 허물기 때문이라기보다 전통적 개념의 움직임이 어느 바탕에 근거하며 어떤 지배적 권위에 봉사하고 있는지를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예컨대 빈방에서 혼자 움직이는 브루스 나우먼의 작업을 통해 댄스 스튜디오가 지닌 남성적 유아론의 속성을 읽어내고, 정체성 혹은 주체성이라는 자기동일성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제롬 벨의 퍼포먼스를 ‘재현’ 비판으로 읽는가 하면, 바닥에 놓인 캔버스 위에서 몸짓의 흔적으로 그려지는 드로잉을 만들어내는 트리샤 브라운의 작업이 비판하는 남근 중심적 수직성을 짚고, 윌리엄 포프엘의 땅을 기어가는 움직임을 인종주의에 타격 입은 흑인 남성이 첨예하게 탐색하는 바닥의 정치성으로 독해하며, 죽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무용가 조세핀 베이커를 자신 안에서 육화하는 유럽의 백인 베라 만테로의 작업을 인종적 지형 위의 멜랑콜리아와 엮어낸다. 코레오그래피라는 개념의 앞뒤와 안팎을 여러 방면에서 살핌으로써 이 책은 공연예술이 지닌 급진적 정치성을, 움직임이 멈추어도 사라지지 않는 춤을 일별해볼 수 있게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