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 그 찬란한 이름의 수줍은 고백
마광수 교수의 신작 소설『청춘』은 이 책을 읽는 독자 그 누군가의 일상이 될 수도 있을 수줍은 고백을 통해 우리 인간의 삶 속에서 ‘청춘’이라는 한 시절의 소중한 의미를 되짚어 보여준다. ‘젊음’은 지나가버린 후에야 그 소중함을 알 수 있는 반면, 그 속에 있을 때는 청춘의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전에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하기 마련이다. 젊음은 불안을 잉태하지만, 그 불안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
청춘들이여, 여전히 꿈꾸고 있는가? 이 책은 인생이란 먼 수평선 너머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우리는 기대하면서 살지만, 사실 우리가 지나온, 혹은 지나가고 있는 이 청춘 시절이 가장 빛나는 그 ‘무엇’이라는 것을 깨닫도록 해준다.
인생이란 알고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일상의 조각들이 모인 대상이지만, 청춘이라는 한 조각의 소중한 의미를 되새겨 본다는 것은 인생의 실체적 진실에 우리를 보다 가까이 인도할 것이다. 이 책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홍역처럼 겪어낼 인생이라는 숙제에서 가장 보석 같은 한 순간인 ‘청춘’의 의미를 한번 되새겨 보자는 기획 의도로 탄생되었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봄날의 새순 같은 순수함과 파릇한 생명력 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아프고 어설프지만,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을 이 소설에서 기억해내거나 혹은 거울 속에 현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을 것이다.
◎청춘은 누구에게나 일생에 단 한번밖에 오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딱 한번뿐인 선물이다. 봄날의 신록처럼 파릇한 그 생명력이 화려하게 꽃 피는 시절. 상큼하면서도 애틋한 그 무언가가 이끄는 시절은 현재 그 가운데를 지나가는 사람이나 그곳을 멀리 떠나온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찬란한 그 무엇의 에너지를 뿜어낸다.
마광수 교수의 신작 소설 『청춘』은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불안한 청춘 시절의 한 젊은이의 이야기다. 이 주인공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주인공인 싱클레어의 한국판 청춘의 자화상으로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 책의 표지 사진은 청춘 시절의 마광수 교수이다. 표지의 ‘청춘’이라는 손글씨도 역시 저자가 직접 썼다. 뒤표지뿐만 아니라 본문의 일러스트도 마 교수의 작품이다. 이러한 저자의 작품 이외의 세심한 발자국을 통한 쏠쏠한 재미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 가끔씩 등장하는 낭만적이면서 감상적인 시들을 음미해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묘미이다.
이제까지 ‘성(性)문학의 상징’으로 대표되던 마 교수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격인 『청춘』에서 이 책의 제목이나 표지 사진만큼 풋풋한 작품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 본문 중에 나오는 한 부분을 소개한다.
다미가 계속 다른 청년 쪽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이제 다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아니 그녀 자체를 의식하지 않고, 오직 그녀의 얼굴과 상체만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아까 문득 빠져들었던 애수 어린 질투심에서 벗어나 한결 편안한 마음이 되었다.
청년 손님이 의자에 앉아 기타 줄을 고르고 있었다. 이어서 그가 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젊은이답지 않게 우울하게 가라앉은 음색이었다.
시를 읊듯 중얼거리는 조(調)의 노래가 주막 안에 은은히 울려 퍼졌다. 나는 마치 프랑스의 샹송을 듣는 기분을 느끼며 노래에 빨려 들어갔다.
내 나이 아직 어렸을 때에
나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지
어른만 되면 모든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지
그러나 나는 지금 꿈을 이룰 수 없네
나는 이미 어른이기에.
안쓰럽게 푸른 새싹으로 올라와
한스럽게 다 자란 싹으로 피어났던
애닯고 허무했던 나의 희망이여
어쨌든 내겐 아직 희망이 필요하지만
이 얄미운 목숨을 지탱하기 위한
멍텅구리 같은 희망이라도 필요하지만
그래도 나는 희망을 이룰 수 없네
나는 이제 자라나는 나무가 아니라
점점 죽어가는 나무이기에
나는 벌써 어른이기에.
뒤섞인 나날 속에 지쳐 누운 추억의 그림자
초라한 기억 속에서 안간힘 쓰며 꿈틀대는
이 사랑, 이 욕정, 이 본능!
그러나 나는 사랑을 이룰 수 없네
아, 나는 어른이기에
절망보다 오히려 더 두려운 희망을 믿기엔
이미 너무나 똑똑해져버린
……서글픈 어른이기에.
노래가 끝날 때까지 다미는 계속 무표정한 얼굴로 있었다. 노래가 끝나자 그녀는 역시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를 쳐준다. 노래에 감동했기 때문에 치는 박수가 아니라 그저 의무적으로 치는 박수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가 치는 박수는 두 손바닥을 힘없이 마주치게 하는, 그저 박수 치는 시늉에 가까웠고,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 벙어리 박수였다.
나는 다미가 박수 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녀가 갖고 있는 ‘우울증’의 미학을 확인했다. 그리고 될 수 있는 대로 큰 소리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면서 힘껏 박수를 쳐줬다.
-본문 중에서